"원고가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다시 등장한 '쉬운 판결문'
지적장애 원고 대상 쉬운 말 판결...'IQ지수'만으로 판단 안 돼
직접 당사자 신문 통해 일상 제약 확인..."사회법원 첫 선고"
[파이낸셜뉴스]"원고가 재판에서 이겼습니다."
"법원은 당신을 지적장애인으로 인정합니다."
지난 25일 오후 2시 서울행정법원 지하 2층 220호 법정.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가운데 행정7부 재판장인 강우찬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는 판결 주문을 읽은 뒤 "원고가 재판에서 이겼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지적장애가 있는 A씨가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구청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점을 당사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이다. 이날 강 수석부장판사는 약 10분간 이어진 다른 사건 선고에서도 "원고가 졌습니다", "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원고가 이겼습니다" 등 쉬운 표현으로 판결 결과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지적장애가 있는 원고가 일반적인 판결문을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해하기 쉬운(Easy-Read) 판결문'을 함께 제공했다. 판결문에는 결과와 이유를 쉬운 문장으로 풀어 쓴 설명과 함께 사건 내용을 요약한 그림이 담겼다. 해당 이미지는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제작됐다.
이번 사건은 A씨가 양천구청에 지적장애인 등록을 신청했지만 장애 정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받자 처분 취소를 구한 사건이다.
A씨는 최근 수년간 시행한 복수의 지능검사에서 모두 지능지수(IQ) 70 미만의 결과가 나왔고, 복수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부터 '주의나 처치가 필요한 심각한 행동의 장애가 있는 경도 정신지체(F70.1)'라는 진단을 받았다.
또 중학교 무렵부터 강박 증상과 폭력적 성향, 우울증, 뇌전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을 겪었고, 오랫동안 정신병원에서 생활해 왔다. 그러나 구청은 A씨가 검사 과정에서 쉽게 포기하는 태도를 보였고 어린 시절 검사에서는 IQ가 70을 넘었던 점 등을 이유로 지적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구청이 지능지수에 지나치게 의존해 판단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직접 A씨에 대한 본인신문을 진행하고 법정에서 관찰한 결과 언어 구사 능력과 인식 작용, 대인관계 등에서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반복된 검사에서 IQ 70 미만으로 나타나 경험적·의학적 기준을 충족했음에도 구청이 특별한 전문적 근거 없이 서류심사만으로 사회생활에 제약이 없다고 단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지능지수가 70을 넘어가더라도 일상과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며 "지적장애는 단순히 지능지수만으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고, 결국 그 지적 능력 손상으로 인해 일상 및 사회생활에서의 상당한 제약이 있는지 여부로 판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복수의 정신장애가 함께 작용해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에도 획일적인 기준만으로 장애 여부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판단도 쉬운 문장으로 다시 설명했다. 판결문에는 "법원은 구청의 결정이 틀렸다고 판단합니다.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라며 "오랫동안 당신을 직접 만나고 치료한 의사들의 말은 믿을 만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또 "당신은 오랫동안 생활이 많이 힘들었습니다"라며 "판사도 법정에서 당신을 직접 만났고, 당신이 보통의 사회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당신은 지적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고, 법이 정한 장애인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이번 사건이 '한국형 사회법원' 모델을 추진한 이후 전문합의부에서 처음 선고한 '쉬운 판결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이번 판결이 법 해석에서도 개인의 결함을 중시하는 '의료적 모델'에서 사회적 장벽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사회적 모델'로의 이행 가능성을 제시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scottchoi15@fnnews.com 최은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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