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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들의 쇼핑몰' 강지영 "서늘한 이야기 끝엔 결국 사람이 남아요" [인터뷰]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강지영 작가.
강지영 작가.
디즈니 제공
디즈니 제공

[파이낸셜뉴스] 잡화점을 운영하던 무뚝뚝한 삼촌은 알고 보니 거대 무기밀매상 보스였다. 와인 오프너와 순간접착제를 쇼핑 카트에 담던 말끔한 남자는 연쇄살인범이었고, 인심 좋고 수다 많던 정육점 아주머니는 업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칼잡이였다. 강지영 작가의 소설은 늘 익숙한 얼굴에서 출발해 독자들을 낯선 세계로 데려간다.

'살인자의 쇼핑몰', '살인자의 쇼핑목록', '심여사는 킬러' 등을 써온 강 작가는 한국 장르 문학 안에서 미스터리와 스릴러, 범죄, 액션, 호러의 경계를 넘나들어온 작가다. 특히 '살인자의 쇼핑몰'은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로 영상화되며 더 넓은 대중에게 알려졌다. 살인과 범죄의 외피를 두른 작품들이지만, 그가 끝내 바라보는 것은 생존과 성장, 책임과 인간성의 문제다.

"서늘한 이야기에 특화된 장르문학 작가로 흔히 소개되지만, 저는 이상하고 아름다운 이야기, 감동적이고 따뜻한 이야기, 삶과 죽음의 폐곡선을 다양한 경로로 보여주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의 소설의 출발점은 대개 일상이다. 마트, 쇼핑몰, 동네, 가족, 직장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공간이 그의 작품 안에서는 범죄와 복수, 생존의 무대로 바뀐다.

강 작가는 2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저는 생활밀착형 소재를 제법 잘 사용하는 작가"라며 "가족, 가정, 직장을 배경으로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인물이 실은 거대한 위력을 갖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강 작가의 말대로 그의 작품들의 배경은 익숙한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뒤집는 감각은 그의 호러적 상상력과도 맞닿아 있다. 돌이켜보면 호러 소설로 데뷔한 강 작가가 떠올린 것은 한 도시 괴담이었다.

한밤 중 귀가하던 학생이 귀신을 피해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을 기다리던 엄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그때 엄마가 묻는다. "내가 아직도 네 엄마로 보이니?" 강 작가는 이 괴담의 핵심이 '엄마라는 가장 우호적이며 믿음직한 존재가 공포의 대상으로 뒤바뀌는 순간의 절망과 상실'에 있다고 봤다.

그는 "그래서 저는 일상적인 공간을 전쟁터로 재구성했다"며 "가족 관계를 여러 방식으로 해체해 재조합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믿고 기대는 공간과 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살인자의 쇼핑몰'은 그런 상상력이 가장 대중적으로 확장된 작품이다. 출발은 농담에 가까웠다. '살인자의 쇼핑목록'을 쓴 뒤 친구에게 "굳이 마트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뭐든 인터넷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인데 킬러들을 위한 쇼핑몰도 없으리란 법은 없지 않나"라고 이야기한 것이 발단이었다.

작품 속 정진만은 '더헬프닷컴'이라는 잡화점을 운영하다 사망한다. 조카 정지안은 삼촌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의 몸에 문신으로 새겨진 '머더헬프닷컴'을 발견한다. 몇 글자 차이지만, 그 이름 뒤에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다크웹의 거대 상점이 숨어 있다.

강 작가는 이 설정에서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악의 세계가 낭만적으로 소비되지 않도록 경계했다. 그는 "악의 이면을 상상해 독자들에게 전달하되, 그것이 낭만적이거나 멋있어 보이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고 강조했다.

살인의 도구를 사고파는 쇼핑몰이라는 설정은 모든 것이 거래되고 시스템화되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과도 닿아 있다. 강 작가는 민간 무기 창고가 적발되고 총기류가 SNS로 거래됐다는 해외 뉴스를 접한 뒤, 상상만 하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했다.

3D프린터로 조립 가능한 총기, 자금 흐름을 숨길 수 있는 가상화폐의 등장은 기술의 진보가 인간성의 경계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 묻게 한다. 그는 "'살인자의 쇼핑몰' 3권 결말부에 제가 드리고 싶은 답안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귀띔했다.

강 작가는 처음부터 '살인자의 쇼핑몰'을 3부작으로 기획했다. "여성 독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범죄 액션물을 써보고 싶었다"고 밝힌 그는 여성인 지안이라는 인물을 만들었다.

1권에서는 대학 신입생, 2권에서는 인턴십, 3권에서는 취업과 경쟁의 단계가 펼쳐진다. 머더헬프라는 거대한 던전만 걷어내면 지안은 공교육을 마치고 가족의 품을 벗어나 자립의 길로 뛰어든 평범한 20대다.

강 작가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거나 겪어낸 사회적 성취감, 실망감, 자괴감, 현실 자각 등을 통해 고된 세상살이에 길들여지는 과정을 담았다"며 "지안의 성장은 우리의 성장기였고, 또 참회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삼촌 진만은 보호자이자 스승이지만 단순한 '강한 어른'은 아니다. 전투용병이었던 그는 악의 한 축에 서 있으면서도 나약하고 인간적인 면을 지닌 인물이다. 1권부터 3권까지 그는 모두 4명의 소녀를 구한다.

강 작가는 "지안이 20대 여성의 성장기를 표현했다면, 진만은 중년 비혼 남성의 일과 삶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관계에 서툰 진만이 지안에게 생존법을 가르치는 방식은 수상하고 코믹하지만, 그 안에는 자기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려는 인물의 결핍과 애정이 담겨 있다.

소설은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로 영상화되며 또 다른 생명력을 얻었다. 강 작가는 "시사회에서 1화를 처음 봤을 때 이권 감독이 설명했던 구성이 오차 없이 선명하게 구현돼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원작과 다른 캐릭터 해석도 흥미롭게 받아들였다. 민혜는 원작의 차분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에서 드라마 속 화려하고 광기 어린 인물로 확장됐고, 원작의 중국 협력자 잉잉은 태국인 파신으로 바뀌어 지안에게 직접 무술을 가르치는 인물이 됐다.

각색에 대한 강 작가의 태도는 열려 있었다. 그는 "원작자는 원작의 매력과 아이디어를 감독과 작가에게 제공했고, 연출진은 이를 여러 방향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지금의 제 역할에 만족하고, 그걸 업으로 삼는 분들께 다른 창작의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강 작가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축은 '맞서는 여성'이다. 그의 작품 속 여성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죽지 않기 위해 싸우고, 복수하고, 때로는 직접 판을 뒤집는다. 지난해 출간한 '기린 위의 가마괴'는 그런 문제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 작품이다. 183㎝, 80㎏의 유도 선수 출신 여성이 가정폭력에 내몰린 약자들을 대신해 악인을 응징하는 이야기다.

강 작가는 "당하는 여성 캐릭터의 소설은 수백년간 무수히 많았다"며 "그래서 강인하고 주체적인 여성상을 써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강함은 단순한 폭력의 크기가 아니다. 끝내 무너지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지켜내려는 생존의 태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범죄와 폭력의 소재를 다룰 때의 기준도 분명하다. 그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려 애쓴다"면서도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가해자의 가족에게까지 2차 가해를 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즉,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심각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기 때문에 소설에서 사건을 다룰 순 있지만, 실제 사건을 편의적으로 재구성하는 일은 경계한다는 의미다.

강 작가는 이달 선보이는 신작 '프린츠하우스'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이 작품은 정통 로마식 구마 의식을 소재로 한 오컬트물이다. 한국 오컬트물이 주로 귀신이나 무당·퇴마를 다뤄왔다면, 이 작품은 부마자를 사제가 구마하는 이야기다. 강 작가는 "킬러물로 많이 알려졌지만, 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에 도전하고 싶다"며 "저의 신작이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믿고 열어보는 미스터리 박스 같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독자들에게 책을 꺼내 읽어달라고 당부했다. 초창기에 강 작가와 함께 장르소설을 쓰던 문우들 중 많은 이들이 생계의 문제로 문학계를 떠났다고 한다. 책을 읽는 사람이 줄어든 시대지만, 그는 여전히 책의 힘을 믿는다.

"책은 당장 느껴지는 도파민이 아니라, 오랜 행복감을 주는 옥시토신과 비슷합니다. 나라는 작은 우주가 또 다른 우주와 잠시 만나 탐험하는 신비로운 체험이 되기도 합니다. 묵혀 둔 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꺼내 읽으시길 바랍니다. 무더운 여름, 서늘한 소설이면 더 좋고요."
강 작가의 소설은 살인과 범죄의 세계를 통과하지만, 그 끝에 남는 것은 죽음보다 삶에 가깝다. 낯선 장르의 문을 열고 들어간 독자들은 결국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자기 힘으로 버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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