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광장] 2030이 버럭 화를 낸 진짜 이유

파이낸셜뉴스

투표용지 부족사태에 분노한 2030
이들이 화난 진짜 이유는 공정 가치
정치권 선택적 분노에 매서운 비판
기성세대 오만과 위선에도 경고장
일자리·자산격차에 깊어진 박탈감
청년 세대의 절박한 외침 경청해야

정순민 문화대기자
정순민 문화대기자

대학에 다니는 20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가끔 있다. 1960년대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소위 '86세대'인 내가 보기엔 정치적 입장이 다소 보수적이지 않나 싶을 때가 종종 있어서다. 그중 하나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부정선거까지는 아니더라도 부실선거가 명백한 이번 사태를 대하는 기성세대의 상대적으로 차분한 대응에 아들은 화가 좀 난 듯했다. 특히 스타벅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일 격앙된 언어를 쏟아냈던 이들이 선거 부실 앞에서는 침묵하는 듯한 모습을 두고 '선택적 분노'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아들의 분노는 소셜미디어와 잠실 올림픽공원 거리로 쏟아져 나온 2030세대의 목소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과거 이들은 정치적 무관심층이나 '사회에 무심한 개인주의자'쯤으로 치부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해 이들은 확실한 캐스팅보터로 존재감을 드러냈고, 특정 조직의 지휘 없이 자발적으로 "참정권 보장"을 외쳤다. 이를 두고 기성세대의 일각, 혹은 일부 진영론자들은 "청년층이 우경화되었다"라거나 "보수화되었다"라며 손쉽게 재단하려 든다. 늘 그렇듯 현상의 본질을 놓친 단편적 진단이자, 기성세대의 관성적 시선이 낳은 오독이다.

2030세대가 분노하는 진짜 이유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과 생존'의 문제에 있다고 보는 게 맞다. 과거 86세대에게 자유가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집단적 개념이었다면, 지금의 청년들에게 참정권은 내 삶을 규율하는 최소한의 규칙이자 개인의 권리다. 사기업의 실책에는 정부와 사회가 나서 매섭게 책임을 묻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정작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이 침해당한 사태에는 절제된 언어로 유감을 표하는 기성 권력의 이중적 태도에 그들의 공정 감각이 요동친 것이다. '스타벅스보다 못한 참정권'이라는 자조 섞인 외침은 기성세대의 진영 논리와 선택적 분노를 거부하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청년들의 목소리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평창올림픽 남북단일팀 논란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 파동, 조국 사태는 물론, 최근 여당의 공소취소 특검 발의와 대한축구협회의 독단적인 감독 선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자신들이 마주한 현실이 불공정하고 불투명하다고 느낄 때마다 거침없이 의사를 표출해 왔다. 한때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던 '90년생이 온다'의 저자는 2030세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정직함'을 꼽은 바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직함이란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의미의 '어니스티(Honesty)'가 아니라 시스템의 진실성과 온전함을 뜻하는 '인티그리티(Integrity)'에 더 가깝다. 청년들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는 채용시스템인 9급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는 '공시족'이 되었던 배경에도 정직하고 온전한 시스템에 대한 갈구가 자리 잡고 있다. 이들에게 공정은 단순한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날로 좁아지는 기회의 문턱에서 자신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인 셈이다.

지금의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가혹한 경제적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간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도입으로 일자리는 급감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신입 공채마저 줄여 청년들을 '인턴 무한 루프'로 내몰고 있다. 여기에 자산 양극화와 주거 불안정이라는 가혹한 현실이 더해지면서 청년들은 깊은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기성 정치권은 기존 노동자만 보호하는 법안을 밀어붙이거나 일회성 지원금 같은 단기 처방으로 이들의 표심을 살 수 있다고 믿는다. 2030이 보수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역대 최저의 지지율을 보내는 것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득권이 되어버린 세대의 오만함과 위선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청년이 미래를 선도하는 사회를 전망하며 "이제 청년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이 이룩한 과거의 성취에 취해 청년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그들의 분노를 해묵은 이념의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기존 방식만 고수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꼰대'로 전락하는 길이다. 이들이 던지는 돌은 위선적인 진보와 탐욕스러운 보수 모두를 향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기득권의 안일함을 버리고 청년들의 누적된 분노와 요구를 직시해야 한다. 삶과 직결된 공정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 2030세대의 생생한 외침에 온전히 귀를 기울여야 할 때다.

jsm64@fnnews.com 정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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