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가치투자시대 열릴 것… 테마株보다 저평가株 주목" [논설실의 뉴스 진단]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
'급등락' 한국증시 이대로 괜찮을까
한국증시 14개월만에 3.9배 급등
저평가·정책·기업 호실적 등 영향
상승 폭이 가팔라 속도조절 필요
'이사의 충실의무' 등 상법개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오명에서 탈출
배당소득세·상속세 개편 뒤따라야
반도체 슈퍼사이클 상당기간 지속
반도체 주가, 올해 내 정점 가능성
삼전닉스 쏠림현상 점차 완화될 것
대한민국 주식시장이 천지개벽하고 있다.
코스피는 지난 40년 가까이 한국 경제성장에 훨씬 못 미치는 상승곡선을 그려오더니 요즘은 하늘을 뚫을 기세다. 상승세가 가팔라질수록 오히려 아찔한 공포가 밀려온다.
이제 증시는 어디로 갈까.
최근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언론과 시장 참가자들이 유독 찾는 이가 있다. 이직이 잦기로 소문난 증권가에서 39년을 버텨온 사람이다.
그것도 모멘텀·추세추종 투자가 각광받는 시장에서 한결같이 가치투자를 고수해왔다. 스스로 소심하고 겁이 많다고 한다.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에게 지금의 한국 증시를 물었다.
―39년차 증시 주요 플레이어, 특히 가치투자자로서 지금의 시장을 어떻게 보나.
▲가치투자자를 떠나 한 사람의 시장 참여자로 감회가 새롭다. 1988년 한신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할 때 코스피는 900~1000선이었다. 작년 4월 7일 코스피가 2300선으로 연중 저점이었으니 그동안 겨우 두 배 남짓 상승한 셈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에 크게 못 미치는 성과다. 그래서 최근 반전이 더 놀랍다. 불과 14개월 만에 3.9배 급등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저평가,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반도체 등 기업실적 호전이 원인이다. 가치투자자로서 코스피가 현재 주가수익배율(PER) 8배 수준에 거래되는 만큼 여전히 저평가 영역에 있다고 본다. 다만 상승 속도나 폭이 지나치게 가팔랐기 때문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또 기업들의 호실적이 이어지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완전히 해소돼야 지금 코스피 수준이 정당화된다.
―한국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오명에서 벗어나는 듯한데.
▲극도로 저평가돼 있던 한국시장은 작년 대선 후 정치적 리더십 회복과 적극적인 경기부양,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등으로 물꼬가 터졌다. 특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인 후진적 거버넌스와 투자자 보호장치 미흡이 상법 개정으로 해소돼 비로소 한국주식에 내재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전까지는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보호되지 않았다. 1%의 주주는 1%만큼, 10%의 주주는 10%만큼 보호돼야 한다. 하지만 20~30%를 보유한 지배주주가 70~80%를 가진 일반주주의 이익을 합병, 분할 또는 터널링 등으로 편취해가는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는 이사의 충실의무가 기존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돼 이런 문제가 없어졌다. 상법 제382조의 3 개정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핵심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완전히 해소하려면.
▲배당소득세와 상속세 개편이 필요하다. 대주주는 배당세 최고세율이 지방세 포함 49.5%인 데 비해 주식 양도소득세는 27.5%였다. 그나마 특정 요건을 맞추면 분리과세가 가능해 33%로 낮아졌다. 그래도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식 양도가 이익이다. 대주주가 배당에 소홀해지는 이유다. (양측 세율을) 일치시켜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상속세 측면에서 보면 대주주는 주가가 오르는 게 불편하다. 가업승계가 어려워진다. 상속세율을 낮추지 않고도 제도개편만으로 가업승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독일은 고용승계 등 특정 조건만 충족하면서 7년간 사업을 유지하면 상속세를 탕감해준다. 일본도 상속세를 이연해주는 제도가 있다. 다만 부의 세습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개편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한다.
―워런 버핏은 금융시장이 점점 투기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며 "지금처럼 사람들이 도박 기분에 빠진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경고가 한국에도 유효하다고 보나.
▲유효하다. 특히 국내 개별기업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빚투 등은 매우 걱정된다. 장기투자 문화를 육성하고 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반도체주 급등락의 배경에 AI 투자가 정점을 지난 것 아니냐는 전망이 있는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주가가 선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 정점은 올해 내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이익이 올해 갑자기 엄청나게 불어났다. 이것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보인다. 반도체 사이클이 대체로 2, 3년 정도인데, 내년이나 내후년 정점일 가능성이 있다. 대체로 주가는 실적에 1년6개월 선행하는 만큼 올해 정점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만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시장 참여자도 있지만 증권시장은 지난 200년간 바뀌지 않았다. 인간의 본성, 즉 욕망과 두려움이 존재하는 이상 바뀌지 않는다. 물론 주가 앞에서는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삼전닉스' 쏠림이 해소될 수 있나.
▲늘 그랬듯이 시장의 쏠림현상은 점차 완화될 것이다. 살 사람 다 사고 주가가 오를 만큼 오르면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것이다. 삼성전자는 작년 매수에 들어갈 때 6만원이었다. 실적이 좋은 때가 아니었다. 비관적인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삼성전자에 투자한 것이 가치투자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9년을 이어온 투자철학은 어떻게 형성됐나. 성공도 실패도 맛봤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았다. 많이 벌기보다는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자연스럽게 잃지 않는 가치투자자가 됐다. 1997년 외환위기 때 큰 폭의 펀드 손실을 경험하면서다. 코스피를 벤치마킹하기보다 최대한 투자원금을 지키면서 절대수익을 중시하는 운용으로 돌아섰다. 1998년 12월 한국 최초의 가치투자 전용펀드 '동원밸류 이채원 1호'를 탄생시켰다. 가치투자자도 힘들 때가 있다.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성장주에 유리한 저금리 상황이었다. 새 기술을 가지고 사업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당시 기업들이 '제로 금리'로 자금을 조달했다. 당연히 주가가 크게 상승하지만 가치투자자 입장에서는 절대 살 수 없다. 그때 수익률이 좋지 않아서 마음고생을 했다. 다만 직전 3년 수익률이 1400%로 워낙 좋아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정든 직장을 떠났다. 그때 후배들이 찾아와서 명예회복도 하고 진정한 가치투자 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해 함께 라이프자산운용을 설립했다. 대표 펀드인 '라이프한국기업ESG향상'(2021년 7월 말 설정)은 지난달 말 기준 누적 수익률 46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 상승률(162%)을 크게 웃도는 성과다. 운용자산(AUM) 규모도 빠르게 성장해 5조원을 넘었다.
―자신만의 주식(종목) 선정 방법이 있는지. 매수·매도 타이밍은 어떻게 잡나.
▲시장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내재가치 대비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한다. 정량분석을 통해 주가순자산비율(PBR)이나 PER이 낮은 기업을 찾아 기업탐방을 한 후 정성분석을 한다. 정성분석은 기업 거버넌스, 경영자의 자질, 비즈니스모델 등을 고려한다. 가슴이 뛸 정도로 저평가된 종목이 나타나면 즉시 매수한다. 그리고 적정 주가에 도달하면 매도한다. 실적은 그대로인데 주가가 많이 올라도 판다. 이런 주식 운용은 일반인도 가능하다. 단순하게 말해 보유주식 가격이 과열됐다고 느끼면 팔면 된다. 주식은 조용할 때 샀다가 폭등해서 뉴스에 나오고 화제가 되면 파는 게 맞다.
―직장에서나 식당에서나 모두 주식 얘기만 한다. 이런 투자자에게 조언한다면.
▲상법 개정으로 이제 모든 주주가 보호받기 때문에 본격적인 장기 가치투자시대가 열릴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는 PER, PBR 같은 전통 가치지표가 중요한 시대다. 테마주보다는 저평가된 주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펀드 가입을 권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요즘도 운용하는 펀드에 본인 자산을 넣나.
▲그건 당연한 것이다. 일반인이 전문투자자를 이기는 방법이 없지는 않다. 잘하는 분야, 예를 들어 의사나 약사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이해가 전문투자자보다 낫다. 여기에 '빚투'가 아닌 여윳돈으로 투자한다면 금상첨화다. 그렇지 않다면 펀드 투자가 맞다. 펀드에 내 자산을 넣는 것은 2006년부터 해왔다. 그래야 책임운용이 가능하다. 아직 운용펀드에 자신의 자산을 투자하는 관행이 미국처럼 보편화된 것은 아니다. 라이프자산운용은 외국인 자산이 2억달러 정도 있다. 이들은 투자할 때마다 매니저의 자금도 함께 운용하는지 묻는다.
―은퇴세대에 자산 관리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이들에게도 조언한다면.
▲자산관리에 왕도는 없다. 기본적으로 부동산, 주식, 현금성자산(채권)을 3분의 1씩 균형 있게 배분해야 한다. 기대수익률이 높은 쪽으로 수시로 비중조절도 해야 한다. 현재 부동산은 임대율 기준으로 5% 수준이고 금리는 3~4% 수준이다. 주식은 12%(PER의 역수) 수준이다. 따라서 주식 40%, 부동산 30%, 예금(채권) 30% 수준이 적정하다.
■이채원 의장 약력 △중앙대 경영학과 △국내 최초 가치투자펀드(밸류 이채원 1호) 설정 및 운용 △한국투자증권 자산운용본부장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이사 △라이프자산운용 이사회 의장(현)
sangsoo123@fnnews.com 임상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