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시급한 전력산업 혁신
2026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32강 진출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지만 결과는 본선 진출 실패였다. 비판은 감독과 선수 개인을 넘어 대한축구협회의 운영 시스템으로 향하고 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이번 실패를 개인이 아닌 거버넌스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20년 전 스마트그리드는 전력산업의 '인터넷 혁명'을 약속했다. 정보통신기술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와 기업이 등장하고, 전력산업 역시 혁신 생태계로 진화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우리나라도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등 대규모 사업을 추진했고, 그 결과 스마트미터 보급과 수요반응(DR),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등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력망은 스마트해졌다. 그러나 기대만큼 산업은 달라지지 않았다. 스마트그리드는 전력망을 디지털화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력산업을 혁신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인공지능(AI) 시대는 전력산업의 의미 자체를 바꾸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와 분산에너지의 확산으로 전력망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가 되었다. 이제 경쟁력은 발전소를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그 위에서 얼마나 다양한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그렇다면 왜 전력망은 스마트해졌는데도 전력산업 혁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기술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기술보다 거버넌스에 있을지 모른다. 여기서 말하는 거버넌스는 전력망의 소유 구조가 아니라, 누가 참여하고 어떤 규칙 아래 경쟁하며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시장에 진입하는지를 결정하는 제도와 운영체계를 의미한다.
인터넷 혁명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고 경쟁할 수 있는 개방형 생태계였다. 그 위에서 생성형 AI를 비롯한 수많은 혁신이 탄생했다. 반면 전력산업은 데이터의 무한 확장이 가능한 인터넷과 달리 송전망이라는 물리적 인프라의 제약을 강하게 받는다. 작은 운영 오류도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어 안정성과 공공성, 사이버 보안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이러한 특성은 새로운 사업자의 참여와 혁신을 제약해 왔다. 안정성과 혁신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전력망 자체를 무분별하게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다양한 사업자가 혁신할 수 있는 제도와 시장을 설계하는 일이다. 이것이 AI 시대 전력 거버넌스의 핵심이다. 축구도 좋은 선수 몇 명을 더 선발한다고 강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 선임과 유소년 육성, 의사결정 체계가 함께 발전할 때 지속적인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전력산업도 마찬가지다. 더 많은 스마트 장비를 구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좋은 기술이 산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좋은 거버넌스 안에서 기술은 혁신으로 이어진다.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새로운 전력기술을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가 아니다. 망 안정성을 담보할 공적 책임과 민간의 혁신을 촉진하는 시장 메커니즘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즉 AI 시대에 걸맞은 전력 거버넌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이다. 미래 경쟁력은 기술보다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에 달려 있다. 그것이 대한민국 전력산업의 최우선 과제이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