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내일 체포하러 갑니다"…수사 무력화하는 '검은 공생' 실태 [기로에 선 보완수사권 2회]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판결문 25건 전수 분석
정보 거래한 전현직 경찰 43인의 유착 생태계
불법 게임장·조폭·성매매 업주와 공생 관계
'수사 타임라인' 공유, 정보 흘려 도주 돕기도
허위문서·시스템 조작…지능화된 수사 무력화
사법신뢰 훼손 엄벌 기조 속 처벌 수위 온도 차
분석 대상 피고인 76%, '집행유예 이상' 처벌
"내부 전산 접속 감시망 실시간으로 구축해야"
[파이낸셜뉴스] 범죄를 척결해야 할 경찰관들이 도리어 범죄자와 결탁해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뇌물을 수수하고 사적 관계를 이용해 단속 정보를 유출하는가 하면, 증거 인멸과 수사 시스템 조작까지 감행했다. 최근 불거진 '장윤기 사태'는 이 거대한 유착을 둘러싼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14일 파이낸셜뉴스가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최근 10년간 선고된 전현직 경찰 공무원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관련 판결문 25건을 심층 분석한 결과, 이들의 범죄 행태는 단순 정보 유출을 넘어 사법 당국의 강제수사 기능을 무력화할 만큼 지능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특히 혈연이나 지연 등 '끈끈한 사적 관계'가 범죄의 온상이 됐다. 지난 2021년 5월 인천지법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지구대 순찰팀장 A씨는 아들의 음주운전 의심 신고를 접수한 직후, 해당 차량이 본인 소유이며 아들이 만취 상태로 운전 중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그는 즉시 아내와 아들,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연락해 신고 접수 사실을 알렸으며, 음주운전 사실이 적발되지 않도록 주거지 근처에 주차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팀원들에게는 정상적인 수색을 진행했으나 차량을 발견하지 못한 것처럼 보고했고, 내부 시스템에 '불발견'이라는 허위 정보를 입력해 수사망을 따돌렸다.
'수사 타임라인'을 공유하며 사법 기능을 무력화한 사례도 있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수사과에서 근무하던 경찰관 B씨는 후배로부터 인계받은 성매매 사건의 수사 정보를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선배 경찰관에게 전달했다. 유출된 정보에는 경찰 수사 진행 상황은 물론, 검찰의 재수사 지휘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법원은 "검찰 수사지휘서나 내부 보고서 유출은 피의자에게 '맞춤형' 증거 인멸과 진술 조작 기회를 제공해 사법 기능을 무력화하고, 수사의 종국적 목적인 국가 형벌권 실현을 저해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일부 경찰은 단속 정보를 흘려 피의자를 도피시키는 역할까지 자처했다. 인터넷 도박사이트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던 한 지방경찰청 소속 경위는 총책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26만원 상당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 그는 체포영장 집행 전날 "내일부터 잡으러 간다"고 체포 계획을 흘렸고, 총책은 도주 끝에 붙잡혔다. 압수수색 정보를 미리 알려줘 업주가 사행성 오락기 60대를 빼돌리도록 도운 경찰관도 있었다.
범행은 정보 유출에 그치지 않고 증거 조작과 은폐, 즉 직무유기와 공전자기록위작 등 사법 방해로 이어졌다. 지난 2023년 비위가 적발돼 직위에서 해제된 30여 년 경력의 경찰관 C씨는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가짜 임시 사건을 만들어 타인의 개인정보를 무단 조회한 뒤 유출했다. 이밖에 사적으로 친구들의 수배 여부를 조회하며 시스템 목적란에 '보이스피싱 수사' '절도 용의자 특정' 등 허위 사유를 입력해 공적 시스템을 사유화한 사례도 판결문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심지어 법원의 사법 판단을 왜곡하는 '공적 조작' 행위도 포착됐다. 실형을 선고받은 한 마약 전담 수사관은 실적을 위해 필로폰 판매책 등 마약 사범들과 사적 여행을 다닐 정도로 유착됐다. 그는 정보원인 마약범이 구속되자 선처를 받아내기 위해 "결정적 제보로 기소에 기여했다"며 허위 사실조회 회보서를 법원에 제출했다가 덜미를 잡혔다. 수원지법에서도 영장 발부 사실을 흘리고 가짜 공적조서를 작성해 준 수사관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비위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변명은 판박이였다. 재판에 넘겨진 경찰관들은 하나같이 "정보원 관리를 위한 정상적인 첩보 활동"이라거나 "더 큰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피의자를 달래려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린 일종의 위장 수사 기법(기망)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단호했다. 재판부는 "결과적으로 다른 범죄자를 잡는 성과를 냈거나,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았더라도, 수사 기밀을 발설한 순간 직무상 비밀누설죄는 즉시 성립한다"고 못 박았다. 직무 수행이라는 명목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특히 범행 은폐를 위한 공문서 위조나 시스템 조작은 국가의 형사사법 기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중범죄라고 지적했다.
형법 제127조에 규정된 공무상 비밀누설죄의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 정지'로 벌금형 규정은 없다. 다만 허위 사유를 입력해 전산망을 조회한 '공전자기록위작 및 행사죄' 등이 함께 경합하면 법원이 최종 형량으로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낮은 법정형에도 불구하고 사법부는 기밀을 누설한 경찰관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고 있었다. 본지가 판결문 25건의 피고인 43명을 분석한 결과, 33명(76.74%)이 징역형의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았다. 유형별로는 징역형 집행유예가 19명(44.19%)으로 가장 많았고, 실형 14명(32.56%), 선고유예 6명(13.95%), 벌금형 4명(9.3%) 순이었다. 처벌 수위는 유착의 깊이와 부정행위의 가담 정도에 따라 온도 차를 보였다.
하지만 사법부의 엄벌주의 기조 속에서도 실적 지상주의와 폐쇄적인 정보원 관리 관행이 유지되는 한 비위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마약이나 사행성 범죄 수사의 특성상 음성적인 제보에 의존해야 하는데, 승진·성과 압박 속에서 더 큰 범죄를 잡으려면 정보원의 리스크를 눈감아주거나 기밀을 넘겨줄 수 있다는 위험한 결과주의적 인식이 싹텄다는 분석이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등 내부 전산망의 보안 허점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로 거론된다. 비위 수사관들은 조회 목적란에 허위 사유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스크리닝 시스템을 손쉽게 우회했다. 시스템에 로그 기록은 남지만, 사후에 별도의 비위 혐의로 수사받기 전까지 실시간 모니터링이나 실무 차원의 제동이 걸리지 않아 누구나 손쉽게 타인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내부 직원들 사이에서조차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무단 조회가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투명한 내부 통제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경찰권은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는 만큼, 모니터링 체계 구축에 상당한 자원과 비용이 들더라도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호한 비밀 정보 분류 기준의 구체화와 내부 감찰 개혁 필요성도 제기됐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진 수사 경찰의 무단 조회를 차단하려면 '최소 권한 원칙'에 맞춰 접근권을 세분화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며 "모호한 대외비 지정에서 벗어나 단계별 비밀 기준을 구체화하고, 독립적인 감사와 외부 견제 체계를 갖춰 온정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