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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리센느의 규칙

파이낸셜뉴스
김태일 금융부 기자
김태일 금융부 기자

K팝 시장에는 정해진 공식이 있었다. 대형 기획사, 거대자본, 방송사 네트워크. 세 가지 모두 갖췄다면 어느 정도 성공은 보장됐다. 안타깝게도 이 함수는 셋 전부 미흡한 중소기획사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좋은 음악, 뛰어난 춤 실력은 대중에게 가닿지도 못한 채 증발했다.

이 문법을 흔든 건 유튜브라는 무대의 등장이다. 주요 음악방송 출연은 더 이상 흥행의 신호탄이 아니게 됐다. 알고리즘은 회사의 재무제표와 인맥을 묻지 않았다. 시청자의 관심은 소속사가 아닌 콘텐츠로 향했다. 자본과 연줄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지만, 핵심은 공식에 난 균열이다. 최근 걸그룹 리센느의 부상은 이 변화가 빚어낸 대표적 현상이다. 실력과 음악성, 꾸준한 노력이 입증됐기에 단기간에 김이 빠지지 않고 오히려 한층 도약했으나 당초 빛을 볼 수 있었던 건 이를 드러낼 경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창문을 여러 번 두드릴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반면 우리 경제 시스템은 과거의 규칙에 머물러 있다. 산업 구조와 성장의 원천이 달라졌음에도 대규모 설비, 자본집약적 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오래된 믿음을 고집한다. 그 결과가 '가격발견' 기능의 상실이다. 가능성을 가진 기업이 시장에서 적정 가치평가를 받을 기회 자체가 적다는 것이다.

소위 '잘나가는 곳'만 잘나가게 된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3.0%대까지 점쳐지지만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귀엔 다른 나라 얘기다. 그 틈을 겨우 비집는 창업과 혁신을 위한 성장 사다리는 허술하다.

양극화의 모양은 소문자(k)를 넘어 대문자(K)가 되고 있다. 'K'를 양쪽이 모두 올라가는 'Y'로 바꾸려면 새로운 방정식이 요구된다. 이미 경쟁력을 탑재한 산업에만 투자와 지원이 몰리는 구조로는 불가능하다. 인공지능(AI), 플랫폼, 데이터 등 차세대 산업은 공장과 자본뿐만 아니라 인재와 아이디어, 시장 선점이 필수다.

착실히 내실을 다진 기업들이 최소한 그 저력을 증명할 길은 마련해줘야 한다. 혁신기업이 제대로 기술과 성장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금융 시스템, 한번 넘어진 창업자가 재도전할 수 있는 환경, 중소기업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그 밑바탕이 된다.

가깝게는 '반도체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2~3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현재 모습을 꿈꾸지 못했다. 누가 될지 모르는 '그들의 시간'이 왔을 때 세계무대에서 한걸음 빠르게 치고 나가려면 '제2의 리센느'를 탄생시킬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taeil0808@fnnews.com 김태일 금융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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