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실 지키려다 민심 잃은 다카이치" 출범 이후 지지율 '최저'
여성천황 외면한 '남계 고집' 역풍
아사히 "국민 60% 이해 못해"…마이니치선 내각 지지율 10%P 급락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정부가 황족 수 감소를 막겠다며 황실전범을 개정했지만 오히려 민심 이탈이라는 역풍을 맞고 있다. 여성 황족은 결혼 후에도 황실에 남을 수 있도록 하면서도 여성과 여계(女系) 후손의 황위 계승은 계속 막고 36~38촌 떨어진 구 황족 가문의 남계 후손에게는 황위 계승의 길을 열어줬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지난 18~19일 실시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이번 황실전범 개정이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해를 얻었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여성은 천황이 될 수 없다는 현행 제도에 대해서도 62%가 "납득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같은 기간 실시된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도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10%포인트 떨어진 41%로 출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비지지율은 44%로 처음 지지율을 앞질렀다. 아사히 조사에서도 내각 지지율은 53%로 7%포인트 하락했다. 두 조사 모두 황실전범 개정에 대한 설명 부족과 고물가 대응 실패를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일본 황실, 후계자는 사실상 한 명뿐
일본 황실은 오래전부터 후계자 부족 문제를 안고 있었다.
현 나루히토 일왕에게는 외동딸 아이코 공주가 있지만 현행 황실전범은 남성에게만 황위 계승권을 인정한다. 현재 왕위를 이을 수 있는 인물은 일왕의 동생인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과 그의 외아들 히사히토 친왕뿐이다. 특히 히사히토 친왕은 현재 20세로 사실상 유일한 젊은 남성 후계자다.
황족 수도 급격히 줄었다. 1994년 26명이던 황실 구성원은 현재 16명으로 감소했다. 여성 황족이 결혼하면 황적을 이탈하는 제도와 고령 황족의 사망이 겹친 결과다. 현재 미혼 여성 황족은 아이코 공주와 가코 공주 등 5명으로 각종 공식 행사와 제례 등 황실 공무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다.
■여성은 안 되고 36촌 남계는 된다?
이 같은 위기감 속에 일본 국회는 지난 17일 황실전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여성 황족이 일반인과 결혼한 뒤에도 황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남편과 자녀는 일반 국민으로 남고 여성과 여계 후손에게는 여전히 황위 계승권이 없다.
반면 1947년 황적을 이탈한 구 11개 황족 가문의 남계 남성은 황족의 양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양자 본인에게는 계승권이 없지만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황위 계승 자격을 갖는다.
결국 현 일왕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와 그 자녀는 왕위를 이을 수 없지만 약 600년 전 무로마치 시대에 갈라진 구 황족 가문의 남계 후손은 황위 계승 대상이 될 수 있는 셈이다. 현 일왕과 이들 구 황족 가문의 혈연관계는 36~38촌 정도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황족 수 확보가 아니라 남계 남성 계승을 제도적으로 고착하기 위한 개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관련 논의는 2017년 상황의 퇴위를 허용한 특례법에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 국회는 정부에 안정적인 황위 계승 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성·여계 천황 논의 대신 여성 황족의 신분 유지와 구 황족 가문 양자 도입에 초점을 맞췄다. 올해 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뒤 다카이치 내각과 일본유신회가 양자 방안을 우선 추진하면서 법 개정은 급물살을 탔다.
개정안은 지난 10일 중의원 심의 당일 통과됐고 15일 참의원 심의를 시작한 지 이틀 만인 17일 최종 가결됐다. 입헌민주당은 양자 관련 조항 삭제를 요구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전문가 "황족 확보 아닌 황위 계승 손댄 것"..유엔도 우회 비판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이 황족 수 확보를 넘어 남계 중심의 황위 계승 체계를 더욱 공고히 했다고 지적한다.
가사하라 히데히코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지난 17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인터뷰에서 "양자 본인에게는 계승권이 없지만 그 아들에게 계승권을 준 것은 황족 수 확보를 넘어 황위 계승 자체에 개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양자 선정의 자의성과 위헌 논란 가능성도 제기했다.
오치아이 에미코 교토산업대 교수는 "남계 남성 계승이 일본 고유의 전통이라는 주장 자체가 역사와 다르다"고 반박했다. 일본에서는 직계 남성이 없을 경우 여성을 후계자로 인정한 사례가 적지 않았고, 황위의 정통성 역시 부계뿐 아니라 모계 혈통도 함께 중시됐다는 설명이다.
도미나가 노조무 정치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양자의 서열과 교육, 친부모의 처우 등 제도 설계가 충분하지 않다"며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남계 계승을 계속 유지하기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도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정책을 장려한다"고 밝혀 일본 제도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도 2024년 남성에게만 황위 계승권을 인정하는 일본 황실전범이 여성차별철폐협약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개정을 "국민과 상징천황의 유대를 훼손한 제도 변경"이라고 평가했고 아사히신문은 "여성 천황을 지지하는 다수 여론을 정치권이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황족 수를 늘리기 위해 추진된 개정이 오히려 상징천황제의 정당성과 국민적 합의를 흔드는 새로운 논란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