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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재정건전화 지우고 370조엔 투자…'다카이치표 적극재정' 시동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AI·반도체 등 17개 전략산업 집중 육성
25년 만에 '재정건전화' 문구 삭제
日銀 압박 논란에 국채금리 2.9% 급등
시장 경고 속 '책임 있는 재정' 시험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출처=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 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정부가 21일 인공지능(AI)과 반도체 등 전략산업에 2040년까지 민관 합계 370조엔(약 3358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다카이치표' 성장전략을 확정했다. 매년 기초재정수지(PB) 흑자를 달성하는 기존 재정운영에서 벗어나 성장투자를 위해 일시적인 재정수지 악화도 허용하기로 했다. 장기간 이어진 투자 부족과 저성장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 지출을 마중물로 민간투자를 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장기금리 급등과 엔화 약세를 동반한 '후네부토(骨太·골태)' 쇼크가 발생하면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책임 있는 적극재정이 출발부터 시장의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7개 전략산업에 370조엔 투자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각의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 출범 이후 첫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 이른바 '후네부토(골태) 방침'을 확정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도한 긴축 지향과 미래 투자 부족의 흐름을 끊고 국내 투자를 철저히 끌어올리겠다"며 "강한 경제와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함께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가능한 한 이른 시기에 실질 경제성장률 1%, 명목 성장률 3%를 웃도는 성장 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정부 투자를 마중물로 민간투자를 끌어내 기업 수익과 세수를 함께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AI와 반도체, 양자기술, 차세대 에너지 등 17개 전략 분야, 62개 제품·기술에 대한 집중 투자다.

정부는 2040년까지 민관 합계 370조엔 이상의 투자를 추진해 민간 설비투자를 연간 250조엔(약 2269조원),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약 1100조엔(약 9983조원)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일반 세출과 별도로 '강하고 풍요로운 일본 투자 틀'을 신설한다. 성장 분야에는 각 부처의 예산 요구 상한을 두지 않고 다년도 계획에 따라 예산을 배분한다.

2027회계연도는 '책임 있는 적극재정 원년'으로 규정했다. 상시 정책은 본예산에 반영하고 추가경정예산은 재해나 경제위기 등 긴급 상황에 한정해 추경 의존도도 낮추기로 했다.

■PB 단년도 흑자 목표 사실상 폐기
이번 골태방침에서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은 재정운영 목표다.

일본 정부는 국가와 지방의 PB를 "여러 해에 걸쳐 관리한다"고 규정하고 경기 변동이나 성장투자 필요성에 따라 일시적인 악화도 허용하기로 했다. 단년도 PB 흑자를 기계적으로 추구하던 종전 목표를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대신 국가와 지방의 채무 잔액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안정적으로 낮추는 것을 핵심 목표로 삼았다. 지출을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성장투자로 경제 규모를 키워 부채비율을 낮추겠다는 접근이다.

2001년 첫 방침부터 사용해온 '재정건전화'라는 표현도 25년 만에 사라졌다. 정부는 이를 '재정의 지속 가능성 확보'라는 표현으로 바꿨다.

■관저 주도 초안이 '골태 쇼크' 촉발
이번 골태방침은 작성 과정부터 이례적이었다.

다카이치 내각은 재무성에 초안을 맡기지 않고 총리관저와 다카이치 총리의 경제 브레인들이 직접 문안을 작성했다. 재무성이 사실상 주도해온 경제·재정 정책의 권한을 관저로 가져오겠다는 의도였다.

문제는 지난 6월 말 공개된 초안이었다. '재정건전화'라는 표현이 빠진 데다 "'강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금융정책 운영이 이뤄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문구가 새로 들어갔다.

시장은 이를 적극재정에 따른 국채 발행 확대와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을 견제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채 매도가 확대되면서 장기금리의 지표인 일본 신규 발행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9일 한때 연 2.9%까지 치솟았다. 1996년 이후 약 30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엔화 가치도 함께 떨어졌다.

일본 정부는 처음에는 시장의 해석을 "오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불안이 가라앉지 않자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

가타야마 재무상은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와 스즈키 슌이치 간사장 등 재무상 출신 당 지도부를 잇달아 만나 BOJ의 독립성을 명시하는 방안을 설명했다.

결국 최종안 각주에는 "일본은행법 제3조에 따라 금융정책의 구체적인 수단은 BOJ에 맡겨진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초안에 없었던 중앙은행 독립성 원칙을 막판에 명문화한 것이다.

■금리 상승 땐 성장투자 효과 반감
문구 수정 이후 장기금리는 2.7%대로 낮아졌지만 시장의 경계감은 여전하다.

금리가 상승하면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이 높아져 민간투자를 끌어내려는 정부 구상이 흔들릴 수 있다. 국채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 성장투자에 투입할 수 있는 정부 예산도 줄어든다.

민관 합계 370조엔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려면 민간기업의 대규모 자금 조달이 필수적이지만 높은 금리가 장기화하면 정부가 기대하는 투자 유발 효과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구고 쇼타로 국제통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후네부토 쇼크는 다카이치 정권의 재정운영에 대한 금융시장의 경계감이 높아졌다는 증거"라며 "정부가 이 경고를 앞으로의 재정운영에 어떻게 반영할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다카이치 내각이 총선 공약으로 내건 식료품 소비세 인하와 환급형 세액공제 도입은 이번 골태방침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초당파 기구인 사회보장국민회의의 중간보고를 토대로 8월 초까지 구체적인 방침을 정하기로 했다.

전국 평균 최저임금 1500엔 달성 시점도 사실상 늦춰졌다. 지난해 골태방침은 2020년대 안에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을 담았지만 이번에는 "2030년대 초 가능한 한 이른 시기"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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