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I 훔쳤다" 베선트 작심 발언…9월 미중 담판 초읽기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미국이 중국 인공지능(AI) 모델의 기술 탈취 여부를 정조준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21일(현지시간) 조사와 제재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미·중 AI 패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쟁점은 '증류(distillation)'다. 대형 AI 모델의 출력값을 활용해 상대적으로 작은 모델을 학습시키는 기법이다. 모델을 경량화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정상적인 용도로 활용될 수 있지만, 경쟁사의 이용 약관을 위반하거나 출력 결과를 대규모로 수집하면 기술 탈취와 지식재산권(IP) 침해 논란으로 번질 수 있다.
베선트 장관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해외 AI 모델이 미국의 위대한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훔친 사실이 확인된다면 그 절도 행위를 이유로 제재를 가할 권한이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중국 AI 모델에서 미국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워터마크가 발견되고 있으며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앞으로 며칠 또는 몇 주 안에 이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이 언급한 워터마크가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 증거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미국 AI 모델의 출력값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남은 특유의 응답 패턴이나 디지털 흔적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의 AI 개발 방식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조사를 예고했다. 그리어 대표는 강제 기술 이전과 IP 침해, 에너지 보조금 문제를 거론하며 "미국 기업들이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중국이 AI 개발을 어떤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는지 매우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기업들이 증류 의혹을 제기하는 배경에는 중국 AI 기업들의 빠른 추격이 있다. 중국 스타트업 문샷AI가 공개한 '키미 K3'와 알리바바의 '큐원 3.8 맥스' 등 중국 오픈 웨이트 모델은 일부 산업 벤치마크에서 미국 선도 모델과 대등하거나 앞서는 성적을 내며 주목받고 있다. 오픈 웨이트 모델은 이용자가 모델의 핵심 매개변수를 내려받아 자체 데이터나 업무 환경에 맞게 수정할 수 있도록 공개한 AI 모델을 말한다.
이 성능 도약은 미국 내 찬반 논쟁에 불을 지폈다. 오픈AI·앤트로픽 경영진은 저렴하고 빠르게 향상되는 중국 오픈 모델이 국가안보와 자국 AI 산업을 위협한다고 본다.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는 사이버보안 능력이 뛰어난 모델의 무료 배포가 심각한 위험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행정부 일각도 핵심 기반시설 공격이나 생물무기 개발 악용 가능성을 우려한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걸려 있다. 오픈AI·앤트로픽은 데이터센터·AI 반도체에 수십억달러를 투입했지만, 중국이 비슷한 성능을 훨씬 싸게 공급하면 수익 기반이 흔들린다. 실제로 딥시크·문샷AI 모델은 저렴한 가격과 자체 서버 운영을 통한 데이터 통제권 확보라는 장점으로 미국 기업들의 일상 업무 도구로 자리 잡고 있다.
반대 진영은 오픈AI·앤트로픽이 안보를 내세워 값싼 경쟁자를 배제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데이비드 색스 백악관 AI·암호화폐 특별보좌관은 이를 '규제 포획' 전략으로 규정했다. 행정부 내에서도 안보파(블랙리스트·보안 경고 검토)와 시장파(오픈소스 생태계 위축 우려)가 엇갈린다.
미국 기업의 저작권 문제도 명분을 약화시킨다. 앤트로픽은 불법 도서 학습 관련 작가 집단소송에 15억달러 지급을 합의했고, NYT는 오픈AI·MS를 저작권 침해로 제소한 상태다. 중국의 증류를 '절도'로 규정하려면 같은 잣대가 미국 기업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 내 온도차 속에서도 미중은 9월 AI회담을 연다. 이번 조사 결과가 회담의 협상 카드로 쓰일 가능성도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는 지난 5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 합의 사항 중 하나로, 시 주석의 9월 24일 방미에 앞서 열릴 전망이다. 미국 대표단은 베선트 장관이 이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첫 공식 미중 AI 대화로, 2024년 제네바 실무회담에서 합의한 '핵무기 사용은 AI가 아닌 인간이 결정한다'는 원칙 이후 처음이다.
의제는 프런티어 모델 정의와 출시 기준, 비국가 행위자로의 확산 방지, 사이버·군사 위험, 중국 오픈 웨이트 모델 규제 가능성 등이다. 미국은 증류·IP 침해를, 중국은 앤트로픽의 신규 최상위 모델 '미토스'와 미국 프런티어 모델 출시 통제·접근 제한 가능성을 각각 주요 관심사로 보고 있다.
다만 첫 회담에서 실질 합의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DGA-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 폴 트리올로 파트너는 로이터에 "첫 회담에서 주요 문제 해결은 어렵다"며 "양측은 프런티어 모델 정의 같은 기본 용어에 합의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pride@fnnews.com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