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1만건 해킹된 '외교 대참사'

파이낸셜뉴스
김경수 정치부 부장
김경수 정치부 부장

전현직 외교관들과 관련된 정보 1만건이 통째로 해킹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해 외교가가 발칵 뒤집어졌다. 외교관 정보 해킹사태를 두고 외교부의 늑장 대응과 애매모호한 해명들까지 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립외교원 온라인교육시스템에서 일어난 이번 해킹 사건으로 외교부 퇴직자는 물론 다른 중앙부처에서 재외공관으로 파견된 직원들 정보까지 더해 최대 1만건의 정보가 새어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자의 접속 횟수에 대해 외교부가 명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수시로 해킹이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해커들이 제집 드나들듯 외교망을 접속한 셈이다.

외교부는 보안점검을 계속해 왔다고 밝히고 있지만, 해킹 사실을 무려 9~10개월 동안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 도둑 침입을 막기 위해 경비를 섰지만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킹을 막지 못한 해명도 궁색하다. 해킹기술이 너무나 고도화되고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밝혔다.

해킹사실을 국가 정보기관으로부터 통보받은 직후 외교부의 대처도 논란이다. 국내외에서 활동한 외교부 전현직 직원들의 정보가 통째로 해킹에 노출됐음에도 당사자들에게 즉각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대국민 공개도 한참 늦었다. 해킹 인지 시점에 해당 시스템을 차단한 이후 무려 5개월이 지나서야 국민에게 공개했다. 외교안보 중대기관인 만큼 신중을 기했다고 외교부는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 중 한강 다리를 끊고서 국가안보상 어쩔 수 없이 국민에게 뒤늦게 알렸다는 것처럼 들린다.

재외공관에는 외교관뿐 아니라 정보·보안·국방 분야 타 부처 직원들도 근무하는 만큼, 국가정보원 요원이나 국방부 무관 등의 정보도 빠져나갔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외교 일선에서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취급해왔다. 이들의 정보가 북한, 중국 해커 등에 유출될 경우 악의적으로 활용될 우려가 크다.

유출된 외교부 공무원들의 정보를 사칭한 피싱 등에 사용될 수도 있다. 외교부조차 이번 유출은 유례가 없는 경우로, 국가안보와도 무관하지 않은 사안이라고 시인했다. 이번 해킹사고는 국방부 내 군함, 전투기 등 무기정보가 빠져나간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외교부 내 가장 중요한 제1 자산은 국가안보 정보를 다루는 외교관들이기 때문이다.

외교 정보요원들 명단이 국외로 유출될 경우 사안은 더욱 심각하다. 외교부 직원 상당수는 국가안보실 업무뿐만 아니라 해외 파견근무 등 다양한 일을 해왔다. 국가안보 기밀사항을 취급해왔던 해외 정보원들에 대한 정보가 적대국에 넘어갔을 우려도 있다. 정부도 북한이나 중국 등의 해킹 조직에 의한 공격일 가능성까지 고려하고 있다.

일반 기업이었다면 국회에 총수를 소환해 조사해야 할 중대한 사고가 연이어 터진 것이다. 이번 해킹은 이재명 정부 출범 직후였던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외교부 장차관 누구도 이번 사태에 대한 별다른 사과나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외교부는 사건 직후에 검찰과 경찰 등 수사당국에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외교부의 신고가 없어서 그동안 수사를 못했다는 입장이다.

외교부는 그동안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미국 정치권의 차별대우 주장에 대해 법대로 처리해왔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정작 외교부 내 해킹사고에 대해선 사법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으면서 미국 정치권이 주장하는 형평성 지적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됐다.

외교부의 찜찜한 해명들로 인해 의혹과 국민 불신만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사법당국과 국정원의 공조를 통한 수사가 시작돼야 한다. 또한 명명백백하게 해킹사고의 원인과 보안사고 책임을 가려야 한다.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참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또 다른 제2의 외교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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