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게 된 아시아 34개국… 수명 연장 가로막는 '뜻밖의 적' 나타났다 [언박싱 연구실]
<54>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연동건 교수팀
글로벌 보건 빅데이터 활용해 세계 최초 30년 추적
한국은 심장병·뇌졸중 치료 발전 덕분에 수명 연장
고혈압·당뇨병 위험 같은 만성질환이 장수 걸림돌
[파이낸셜뉴스] 지난 30년 동안 아시아 사람들은 모두 더 오래 살게 됐다. 하지만 오래 살게 만든 이유는 나라마다 달랐고, 이제는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이 새로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일본이 속한 고소득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심장병과 뇌졸중 치료 발전 덕분에 아시아에서 가장 긴 기대수명을 기록했다. 반면 남아시아는 예방접종과 식수 및 위생 환경 개선이 수명 연장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는 전 세계 인구의 60%가 거주하는 아시아 34개국에서 각국 국민의 수명을 결정지은 주요 원인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국제 보건 통계가 주로 서구권이나 고소득 국가 위주로 분석되어 온 한계를 보완한 연구다.
이번 분석 결과는 아시아 각국 보건당국이 자국 현실에 맞는 맞춤형 건강 정책을 세우는 데 지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저소득 국가의 경우, 필수 의약품 보급과 위생 및 백신 프로그램을 확충하는 데 보건 자원을 우선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와 만성질환 증가 지역은 고혈압 관리와 금연, 대기질 개선 등 예방 중심의 보건정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번 연구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연동건 교수팀이 주도하고 디지털헬스센터 김현진 연구원이 제1저자로 참여했다. 고려대학교 강지승 교수와 연세대학교 신재일 교수 연구팀을 비롯해 하버드 의대, 게이츠재단, 워싱턴대 보건계량평가연구소 등 전 세계 900여 명의 연구진이 국제 공동연구로 수행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연구팀은 전 세계 질병과 사망 원인을 동일한 기준으로 조사하는 '세계질병부담연구(GBD)' 데이터를 활용했다. 1990년부터 2023년까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아시아 34개국의 기대수명 변화를 추적하고, 어떤 질병과 위험 요인이 수명을 늘리거나 줄였는지를 분석했다.
지난 30년간 기대수명이 가장 빠르게 늘어난 남아시아는 1990년 58.6세에서 2023년 71.2세로 수명이 12.6세 증가했다. 연평균 수명 증가율은 라오스가 0.80%로 가장 높았고 네팔 0.71%, 캄보디아 0.69%, 방글라데시 0.67%가 뒤를 이었다. 이들 지역의 수명 연장에는 식수와 위생 환경 개선, 예방접종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에 따라 5세 미만 아동 사망률이 줄었고, 설사병과 호흡기 감염, 결핵 사망이 감소했다.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등이 포함된 고소득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기대수명이 77.5세에서 84.1세로 늘어나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2023년 기준 이 지역 여성의 기대수명은 87.1세, 남성은 81.0세다. 이 지역에서는 뇌졸중과 심장병 치료 기술의 발전과 의료 접근성 향상이 수명 연장에 기여했다. 중앙아시아 역시 뇌졸중과 심장질환 사망률이 낮아지고 하부 호흡기 감염 치료가 개선되면서 기대수명이 6.3세 늘어났다.
하지만 기대수명 상승 흐름을 방해하는 요인도 포착됐다.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동남아시아는 약 0.327년, 동아시아는 약 0.275년의 기대수명 감소가 나타났다. 팬데믹 첫해에는 일부 지역에서 기대수명이 약 2년 감소하기도 했다.
또한 지난 30년간 아시아 전역에서 고혈압, 혈당이 높아지는 당뇨병 위험, 건강하지 않은 식습관, 대기오염, 흡연 등이 수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주요 위험 요인으로 파악됐다. 특히 고혈압과 당뇨병 위험 같은 만성질환 요인은 중앙아시아, 동아시아, 남아시아 등에서 지난 30년간 지속해서 증가해 향후 보건정책의 중점 관리 과제로 제시됐다.
한편 아시아 전역에서 5세 미만 어린이 사망자는 30년 전보다 대폭 줄어든 반면, 동아시아와 남아시아에서는 65세 이상 노인 사망자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2016년 기준 세계 평균 1인당 보건 지출은 1077달러였지만 남아시아는 59달러, 미얀마는 5달러 수준으로 집계되어 지역 간 보건 재정 격차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동건 교수는 "지난 30년간 아시아의 보건 수준은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됐지만 지역과 국가 간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기대수명 불평등은 여전히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 인프라가 취약한 저소득 국가에는 필수 의약품 보급과 위생·백신 프로그램 확충이 필요하고, 한국을 비롯한 고소득 국가와 만성질환 증가 지역에서는 고혈압 관리, 금연, 대기질 개선 등 예방 중심의 맞춤형 보건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