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여름밤 밝힌 선우예권의 베토벤…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섬세하고 단단한 선율로 감동 선사…한스 그라프 지휘로 개막공연 내달 2일까지 '계승과 혁신' 주제로 다양한 연주회 선보여
평창의 여름밤 밝힌 선우예권의 베토벤…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
섬세하고 단단한 선율로 감동 선사…한스 그라프 지휘로 개막공연
내달 2일까지 '계승과 혁신' 주제로 다양한 연주회 선보여
(평창=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올해로 23회를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가 23일 저녁 강원 평창 대관령 야외공연장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베토벤 선율로 화려한 막을 올렸다.
'계승과 혁신'을 주제로 열린 이번 음악제는 수백 년에 걸쳐 인류가 쌓아온 음악의 유산이 오늘날 새로운 창작의 토양이 되는 과정을 조명하는 행사로 마련됐다. 11일간의 대장정으로 펼쳐질 음악제는 첫날부터 그 상징성을 무대 위에 오롯이 드러냈다.
개막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PFO), 지휘자 한스 그라프가 함께 그려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었다.
이 곡은 베토벤의 다섯 개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도 가장 시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를 자랑한다. 1808년 초연 당시에는 피아노 독주로 시작하는 파격적인 구성 탓에 관객의 선택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날에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가장 조화로운 선율을 자아내는 곡으로 꼽힌다.
선우예권의 연주는 1악장의 조용한 피아노 솔로 도입부에서부터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는 섬세하면서도 단단한 연주로 베토벤이 의도한 오케스트라와의 '상상력 풍부한 대화'를 구현해냈다.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연주와 피아노의 서정적 선율이 교차하며, 고전적 균형미와 서사적 비장미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2악장에서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화가 인상적으로 펼쳐졌다. 선우예권의 노래하는 듯한 피아노 소리와 한스 그라프의 절제된 지휘가 어우러지면서 악장의 주제인 '폭력과 온화함의 대화'가 극적으로 드러났다.
마지막 3악장에서는 선우예권의 탁월한 연주 기교와 오케스트라의 기민한 움직임이 시너지 효과를 내며, 작품의 또 다른 주제인 '환희로 치닫는 피날레'를 완성했다.
선우예권의 여유로운 무대 위 매너도 인상적이었다. 완벽한 테크닉과 절제된 감정 표현으로 연주를 이어가던 선우예권은 관객의 돌발적인 악장 간 박수에도 당황하지 않고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연주를 마친 뒤 객석의 기립박수에 앙코르곡으로 사티의 '그로시엔느 5번'을 연주했다.
이날 공연의 또 다른 백미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음악 '불새'(1910년 버전)였다.
20세기 음악 혁명의 신호탄이 된 이 작품은 러시아 민속 설화와 현대적 작곡기법이 결합한 명곡이다. 평창페스티벌오케스트라는 한스 그라프의 지휘에 맞춰 '불새의 신비로운 도입부'부터 '카셰이의 지옥의 춤과 피날레'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색채감과 이국적 정취를 거침없이 표현해냈다.
현악 글리산도(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빠르게 올리거나 내려서 연주하는 방식)와 관악기의 점묘적 연주, 클라이맥스에서의 폭발적 에너지는 관객들에게 '혁신'이라는 올해 음악제의 주제를 충분히 느끼게 했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는 이날 개막공연을 시작으로 다음 달 2일까지 다양한 연주회를 선보인다. 대관령 야외공연장과 알펜시아 콘서트홀 등에서 진행되는 19차례의 콘서트, 월정사 등 도내 명소에서 공연되는 10회의 찾아가는 음악회, 젊은 연주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멘토십 프로그램 등이 준비됐다.
개막공연이 열린 이날 대관령 야외공연장은 오후 늦게까지 내린 비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로 가득 찼다. 가족 단위 관람객부터 젊은 음악 지망생, 지역 주민까지 다양한 이들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음악제는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과 연주자들의 무대를 이어간다. 24일 저녁 '노래에서 화려한 기교로' 연주회에서는 바로크와 고전의 다채로운 기교가 펼쳐진다. 25일에는 '친밀함에서 춤으로', '투명함에서 찬란함으로' 등 실내악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연주회가 열린다. 이어 26일에는 강릉시립교향악단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을 연주한다.
이외에도 30일 아벨 콰르텟의 베토벤 '현악 사중주 11번' 연주, 8월 1일 소프라노 다니엘라 쾰러와 바리톤 김기훈의 오페라 아리아 무대, 8월 2일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르눙의 폐막공연 등도 기대되는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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