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직원일까 도구일까? [김문경의 리더십테크](21)
[파이낸셜뉴스] 요즘 팀에는 조직도에 이름도 없는 '직원' 하나가 생겼다. 출근도 하지 않고, 점심도 먹지 않으며, 퇴근 시간도 없다. 그런데 자료를 찾고,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고객 문의에 답한다. 밤새 일을 시켜도 불평 한마디 없다. 문제는 실수했을 때다. 경위서를 쓰게 할 수도,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름은 AI 에이전트다.
마이크로소프트의 '2026년 업무동향지표(Work Trend Index)'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365 생태계에서 활동하는 AI 에이전트는 1년 만에 15배, 대기업에서는 18배로 늘었다. 시장조사기관 IDC는 2029년이면 전 세계에서 가동되는 AI 에이전트가 10억 개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AI 에이전트는 이제 몇몇 기업의 실험실을 벗어나 실제 업무 현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많은 리더는 여전히 AI를 '성능 좋은 소프트웨어' 정도로 생각한다. 엑셀이 계산기를 대신했듯 AI도 기존 도구를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도구와 에이전트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도구는 사람이 손을 떼면 멈춘다. 반면 에이전트는 주어진 목표 안에서 필요한 단계를 계획하고, 여러 도구를 연결하며, 결과물까지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AI는 직원일까, 도구일까? 둘 중 하나로 분류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낡은 질문일지 모른다. AI는 직원처럼 일하지만 직원처럼 책임지지 못하고, 도구처럼 사용되지만 단순한 도구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한마디로 '책임은 질 수 없지만 실행은 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이 책임 없는 실행자를 조직의 책임 있는 성과로 바꾸는 일이 AI 시대 리더에게 새롭게 주어진 과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10개국의 AI 사용자 2만 명을 조사해 AI 효과와 관련된 요인을 분석한 결과, 조직문화와 관리자 지원, 인재 운영 같은 조직 요인이 차지한 비중은 67%였다. 개인의 역량과 태도는 32%에 그쳤다. 인과관계를 단정할 수 있는 수치는 아니지만, 직원 몇 명에게 AI 교육을 시킨다고 조직의 성과가 저절로 달라지지는 않는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관건은 개인의 활용 능력보다 그 능력을 받아낼 수 있도록 조직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는 데 있다.
그 변화 설계의 첫 장은 '권한'이다. 신입사원에게 입사 첫날부터 회사의 모든 자료와 고객 메일 발송 권한을 열어주지는 않는다. AI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조회할 수 있는지, 무엇을 작성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실행할 수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 시장조사와 보고서 초안은 맡기더라도 외부 발송은 사람이 승인하게 하고, 인사정보나 고객의 민감한 데이터에는 접근 범위를 제한해야 한다. 특히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자금 집행, 인사 의사결정에는 반드시 인간의 검토 지점을 남겨두어야 한다.
권한 다음에는 '책임'이 온다. AI가 만든 결과물에는 반드시 인간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 누가 사실을 확인하고, 누가 품질을 평가하며, 누가 최종 사용을 승인할 것인지 명확해야 한다. 조사에서도 AI 사용자의 86%는 AI의 결과물을 최종 답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고, 사고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답했다. 실행은 위임할 수 있어도 판단과 책임까지 위임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AI가 초안을 백 번 만들 수 있게 된 만큼, 인간이 승인 버튼을 누르는 한 번의 판단은 더 무거워졌다. 초안 한 건의 오류는 고치면 되지만, 자동화된 오류는 순식간에 백 번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하버드대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말한 '심리적 안전감'을 이제 AI를 실험하고 실패를 공유하는 장면까지 넓힐 필요가 있다. 직원이 AI의 오류를 발견했다고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자신이 만든 AI 업무 방식이 실패했을 때도 숨기지 않고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전 세계 근로자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 연구에서는 관리자가 직접 AI를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 조직에서 직원의 AI 신뢰도가 30%포인트 높아졌다. 관리자가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을 때는 AI 준비도와 체감 가치가 최대 20%포인트 상승했다. 직원들에게 'AI를 활용하라'는 공문을 보내는 것보다, 리더가 회의에서 "나도 이 결과가 이상해서 3번을 다시 검토했어요"라고 말하는 편이 훨씬 강력한 교육이 될 수 있다.
그런데 현실의 조직에서는 변화하라는 요구와 성과를 내라는 압박이 충돌하고 있다. AI 사용자의 65%는 변화에 뒤처질까 두렵다고 답하면서도, 45%는 AI로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보다 당장의 목표에 집중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말했다. 새로운 업무 방식을 시도하다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그 시도를 인정받는다고 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전환의 역설'이라 부른다.
이것은 직원들이 변화를 싫어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조직 내에서도 서로 다른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혁신하라고 말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기존 방식으로 만든 단기 성과만 평가한다. 실패하면 손해를 보는데 누가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겠는가? 시스템의 문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풀리지 않는다. 누군가 평가와 보상, 권한과 책임의 구조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 사람이 바로 리더다.
이번 주에는 팀의 업무 하나를 골라 한 장짜리 'AI 업무기술서'를 작성해 보자. AI에게 맡길 목표, 자율적으로 실행할 범위, 인간이 검토할 지점, 최종 책임자를 적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에게 먼저 쓰라고 하기 전에 리더가 자신의 업무로 작성해 보여주는 것이 좋다.
AI가 직원인지 도구인지 논쟁하는 사이, AI는 이미 일을 시작했다. 이제 필요한 질문은 AI의 정체가 아니라 일의 설계다.
"책임질 수 없는 AI의 실행력을 어떻게 우리 팀의 책임 있는 성과로 바꿀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 AI 시대 리더의 새로운 직무가 되었다.
/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