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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는 오르는데 왜 다 지쳐 있을까? [김문경의 리더십테크](22)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월간 실적회의가 끝났다. 보고서 작성 시간은 줄었고, 고객 응답은 빨라졌으며, 처리한 업무량은 늘었다. AI 도입 효과를 보여주는 지표마다 초록불이 들어왔다. 그런데 회의실을 둘러보니 웃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프는 초록색인데 사람들의 얼굴은 회색이었다. 요즘 여러 조직에서 마주하게 되는 낯선 풍경이다. 일의 속도는 빨라졌고 결과물은 늘었는데, 정작 일을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바닥이다.

지난 회에서 살펴본 마이크로소프트의 '2026년 업무동향지표'에서도 AI 사용자의 66%는 AI 덕분에 더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게 됐다고 답했다. 58%는 1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일까지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적어도 사람들이 체감하는 일의 효율과 가능성은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발표된 또 다른 조사에서는 반대 방향의 선이 그려졌다. 인재자문사인 DHR 글로벌이 북미·유럽·아시아의 사무직 종사자 1,500명을 조사한 '2026 워크포스 트렌드 리포트'에 따르면, 자신이 업무에 매우 또는 극도로 몰입하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1년 만에 88%에서 64%로 급락했다. 서로 다른 조사이므로 수치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두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한 가지 질문은 분명해진다.

일은 더 잘되고 있는데, 사람은 왜 더 빠르게 힘들어가고 있을까? 단순히 번아웃이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진을 느낀다는 응답은 83%로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었다. 달라진 것은 소진의 '양'이 아니라 '파괴력'이었다. 번아웃 때문에 업무 몰입도가 떨어졌다는 응답이 34%에서 52%로 뛰었다. 예전에는 버틸 수 있었던 피로가 이제는 일에 대한 열정까지 무너뜨리고 있다는 뜻이다.

단서는 번아웃 원인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과중한 업무는 48%, 지나치게 긴 근무시간은 40%로 여전히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더 눈여겨볼 수치는 '보상과 인정의 부족'이다. 이를 번아웃의 원인으로 꼽은 비율이 17%에서 32%로 한 해 만에 거의 두 배가 됐다. 사람들은 일이 많아서만 지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애써 일했는데도 자신의 기여가 보이지 않을 때 더 깊이 지친다.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의 자기결정성 이론에 따르면, 사람이 일에 몰입하려면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내가 선택하고 있다는 '자율성', 잘 해내고 있다는 '유능감', 그리고 누군가와 의미 있게 연결돼 있다는 '관계성'이다. 이러한 욕구의 충족은 직장인의 몰입과 성과, 웰빙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성과는 오르는데 왜 다 지쳐 있을까? [김문경의 리더십테크](22)

AI는 일의 속도를 높여주지만, 내가 잘하고 있다는 감각까지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AI가 실행을 대신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일은 문제를 정의하고, 오류를 걸러내고, 최종 판단을 내리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이다. 그런데 이 노동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AI가 만든 보고서는 남지만, 그 보고서에서 잘못된 내용을 찾아낸 사람의 판단은 기록되지 않는다. 결과가 좋으면 'AI를 활용한 팀의 성과'가 되고, 문제가 생기면 승인한 사람의 책임이 된다. 성과는 측정했지만, 그 성과를 가능하게 한 인간의 판단과 기여는 측정하지 않은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몰입의 붕괴가 리더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DHR 조사에서 번아웃 때문에 몰입이 떨어졌다는 응답은 신입·초급 직급에서 61%였지만, C레벨 임원은 38%에 그쳤다. 리더의 자리에서 내려다본 조직은 생각보다 멀쩡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지쳐 있는 사람은 실제 업무를 떠받치는 실무자들이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책상을 뒤엎지 않는다. 회의에서 말이 줄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지 않으며, 부탁받은 일까지만 한다. 마음을 조용히 거둔 뒤 떠날 준비를 한다. 조사 응답자의 91%는 고성과 동료의 이탈이 조직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몰입의 붕괴는 결국 인재 유출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리더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먼저 인정이 우연히 발생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리더의 기분이 좋은 날 나오는 칭찬이나 연말 시상식만으로는 부족하다. 회의에서 결과만 보고받지 말고, '이 결과를 만드는 데 누구의 어떤 판단이 결정적이었는가'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단순히 "수고했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 "고객의 요구를 다시 정의한 당신의 판단 덕분에 재작업을 막을 수 있었어요"라고 말할 때 사람은 자신의 기여가 보였다고 느낀다. 인정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말이 아니라, 조직이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는지 알려주는 신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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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의 총량도 다시 설계해야 한다. AI가 두 시간을 아껴주면 조직은 그 자리에 3시간짜리 새 업무를 집어넣는다. 그렇게 되면 생산성 향상은 여유가 아니라 더 많은 일을 담는 그릇이 된다. AI를 도입했는데도 아무 일도 줄어들지 않았다면, 직원에게 AI는 혁신 도구가 아니라 업무 증폭기일 뿐이다.

몰입을 지키는 리더는 일을 계속 얹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을 멈추고, 무엇을 덜어내며, 무엇에 집중할지를 결정해주는 사람이다. 일을 줄이지 않은 생산성 향상은 조직에는 성과일 수 있지만, 사람에게는 과속이다. 성과와 몰입은 원래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 둘이 갈라졌다면 직원의 정신력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조직의 성과 시스템이 사람의 에너지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주 회의에서는 실적을 보고받기 전에 두 가지를 먼저 물어보자.

"지난달 우리 팀에서 가장 값진 기여를 한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람의 어떤 판단이 좋은 성과를 만들었나." "AI 덕분에 빨라진 만큼, 우리가 실제로 멈추거나 덜어낸 일은 무엇인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AI가 만든 생산성은 아직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성과가 오르는 조직은 많다. 성과와 함께 사람까지 살아나는 조직은 리더가 만든다.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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