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모드는 옆 사람이 말린다"...530마력 삼지창,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기똥찬 모빌리티]
네튜노 기반 530마력, 제로백 3.8초
스포츠 모드선 동승자가 손사래 칠 정도
컴포트로 내리면 장거리도 무난히 소화
다만 연비·터치식 조작은 감수해야
[파이낸셜뉴스]시동 버튼을 누른다. 잠들어 있던 V6가 깨어난다. 웅장하고, 거칠다. 배기음 하나만으로도 어떤 차에 올라탔는지 알 수 있다. 마세라티의 고성능 SUV, 그레칼레 트로페오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로 고속도로를 포함한 장거리 구간을 시승했다. 그레칼레는 '일상 속 특별함'을 내건 마세라티의 럭셔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다. 그중 트로페오는 최상위 트림이다. GT와 모데나가 4기통 마일드 하이브리드, 폴고레가 순수 전기 모델인 것과 달리, 트로페오는 슈퍼카 MC20의 네튜노(Nettuno) 엔진을 기반으로 한 530마력 V6를 얹었다.
외관은 한눈에 마세라티임을 드러낸다. 전면에는 브랜드의 상징인 삼지창 엠블럼과 세로 창살 그릴이 자리한다. 트로페오는 이 그릴을 다른 트림보다 앞으로 돌출시켜 공격적인 인상을 더했다. 사다리꼴 C필러와 삼지창에서 영감을 받은 알로이 휠, 부메랑 형상의 테일라이트가 스포티한 실루엣을 만든다. 전장 4859mm, 전폭 1979mm(사이드미러 제외), 전고 1659mm, 휠베이스 2901mm. SUV지만 낮게 깔린 비례가 스포츠카에 가깝다.
문을 열고 앉으면 분위기가 또 달라진다. 시승차에는 레드 컬러 시트가 적용돼 스포티한 성격을 먼저 드러냈다. 대시보드에는 총 4개의 스크린이 들어간다. 클러스터와 중앙 12.3인치 디스플레이, 그 아래 공조 등을 다루는 8.8인치 컴포트 패널, 그리고 대시보드 한가운데의 디지털 시계다. 마세라티의 상징이던 아날로그 시계는 디지털로 바뀌어, 시간 표시를 넘어 음성 명령까지 수행한다.
멀티미디어는 마세라티 인텔리전트 어시스턴트(MIA)가 담당한다. 안드로이드 오토 기반으로, 12.3인치 화면에 1500만 화소 해상도를 구현한다. 여러 탭으로 구성돼 자주 쓰는 기능에 한 번의 터치로 닿고, 최대 5개의 사용자 프로필을 저장해 시트와 온도 설정을 맞춤화할 수 있다. '헤이 마세라티' 음성 인식으로 주행 중 조작도 가능하다. 이탈리아 사운드 전문 업체 소너스 파베르의 21개 스피커(총출력 1285W)가 실내 음향을 담당한다.
본격적인 주행에서 이 차의 성격이 드러났다. 3.0리터 V6 트윈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30마력, 최대토크 620Nm를 발휘한다. 마세라티의 이중연소(트윈 컴버션) 기술을 바탕으로, F1에서 유래한 프리 챔버 연소 구조가 슈퍼카 MC20의 네튜노 엔진에 처음 적용됐고, 그 엔진을 SUV에 맞춰 옮겨 왔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3.8초, 최고속도는 285km/h다.
고속도로 합류 구간에서 가속 페달을 깊게 밟자, 2톤이 넘는 차체가 등받이로 몸을 밀어붙이며 나아갔다. 여러 차를 몰아봤지만 이 정도로 거침없는 가속은 손에 꼽는다. 속도계 바늘이 빠르게 올라가는데도 차체는 노면에 붙어 흔들림이 적었다. 회전수가 오를수록 배기음도 굵고 사납게 변했다.
주행 모드는 다섯 가지다. 컴포트, GT, 스포츠, 코르사, 오프로드로 나뉜다. 시동을 걸면 GT 모드가 기본으로 잡힌다. 일상과 스포츠 주행의 균형이 맞아 장거리에서 가장 편안했다. 스포츠 모드는 성격이 확연히 달랐다. 전환하는 순간 엔진 반응이 날카로워지고 서스펜션이 단단해진다. 가속 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튀어 나가는 통에, 옆자리 동승자가 컴포트 모드로 바꾸자고 말할 정도였다. 트로페오에만 주어지는 코르사 모드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반응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 서킷을 염두에 둔 세팅이라, 공도에서는 그 성능을 다 쓸 일이 없었다.
반대로 컴포트 모드로 내리면 성격이 눈에 띄게 누그러진다. 서스펜션이 부드러워지며 노면 충격을 걸러내고, 실내도 조용해져 장거리 주행에 어울리는 쪽으로 돌아온다. 한 대의 차 안에 이렇게 다른 얼굴이 공존한다는 점이 트로페오의 특징이다. 이 성격 변화의 중심에는 차체 제어 자세 모듈(VDCM)이 있다. 주요 시스템을 통합 제어해 주행 조건에 맞는 반응을 끌어낸다고 마세라티는 설명한다.
고성능 SUV지만 실용성도 챙겼다. 2901mm의 휠베이스 덕에 2열 공간이 여유롭고, 뒷좌석 탑승자는 별도의 터치스크린으로 공조를 조절할 수 있다. 트렁크 용량은 570L다. 평평한 적재 바닥과 그 아래 카고 박스, 트렁크에서 버튼으로 접히는 2열 시트를 갖춰 레저나 여행에도 무리가 없다.
대가는 연료로 치른다. 유럽 기준 복합 연비는 리터당 9km 안팎이다. 고성능 V6에 2톤이 넘는 차체를 감안하면 예상 범위지만, 스포츠 모드를 즐기다 보면 연료 게이지가 빠르게 내려간다.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254g/km로 높은 편이다. 효율을 우선하는 운전자에게 맞는 차는 아니다.
아쉬운 점도 있다. 럭셔리카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대시보드 시계가 디지털로 바뀐 점, 비상등 같은 기능이 터치식으로 들어간 점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중앙 패널과 컴포트 패널의 조작 체계도 처음엔 익히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레칼레 트로페오를 정리하는 말은 결국 '폭'이다. 슈퍼카의 엔진을 옮겨 담아 주행의 재미를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모드를 한 칸 내리면 장거리를 조용히 소화한다. 평일에는 가족과 짐을 싣고 무난히 움직이다가, 주말이면 스포츠카의 감성을 꺼내 쓰고 싶은 사람. 남들과 겹치지 않는 이탈리안 감성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시승 목록에 올려볼 만하다.
[email protected] 김동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