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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꾼 '반도체 거래판'… LTA로 슈퍼사이클 길어진다

정원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삼성, 생산력 70% 다년계약 채워
선수금·가격하한으로 구속 강화
SK하닉도 10여곳과 협상 마무리
MLCC·기판 등 공급망 전반 확산

AI가 바꾼 '반도체 거래판'… LTA로 슈퍼사이클 길어진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메모리와 핵심 부품의 공급 부족이 장기화하면서 장기공급계약(LTA)이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거래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객사는 수년 치 물량을 선점하고 공급사는 안정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구조다. 최근에는 선수금과 예치금, 가격 하한 등 중도 계약 파기나 주문 축소를 막는 이행 장치까지 함께 두면서 계약의 구속력도 높아지고 있다. 단기 주문과 시황에 따라 급등락을 반복했던 메모리 업황의 변동성을 낮춰 슈퍼사이클의 장기화를 뒷받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메모리, 사이클 산업서 변모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최근 2·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글로벌 고객사와의 LTA 확대를 중장기 성장 기반으로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5대 데이터센터 고객사와는 이미 계약을 완료했고 추가 5개 대형 고객사와도 협상 완료 단계"라며 "LTA를 요청하는 추가 고객사가 다수 존재하고 이미 계약을 완료한 고객사도 공급 물량 증대를 요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계약구조의 경우 기간은 5년이 기본이며 매년 협상을 통해 추가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방식이 거론됐다. 진행 중인 협상이 마무리되면 중장기 생산계획 기준 전체 메모리 생산능력의 60~70%를 다년 계약 물량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고객사의 중도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의 구속력을 높인 점도 눈에 띈다. 계약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공급대금 일부를 선수금으로 미리 받는 식이다. 삼성전자는 향후 수취할 전체 선수금 가운데 약 4분의 1을 이미 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격 하한선을 설정해 향후 메모리 가격 급락하는 경우에도 변동성을 줄일 수 있도록 했다.

SK하이닉스도 핵심 고객을 포함한 10여개 고객사와 LTA 협상을 마무리하고 추가 계약을 논의 중이라고 밝히며, 견조한 중장기 성장 기반을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당사의 LTA는 고객과 제품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다양한 형태로 설계하고 있으며, 통상 5년을 기본으로 계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밝히진 않았지만, 삼성전자와 마찬가지로 중장기 물량에 대한 고객의 구매 약정과 함께 예치금 등 계약 이행력과 수요 가시성을 높일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 SK하이닉스의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계약 구조가 확산하는 배경에는 수요 폭증과 함께 메모리 산업의 사업모델 변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같은 제품을 수년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객사의 차세대 제품 로드맵과 연계한 맞춤형 협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확정된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증설이 이뤄지면서 과잉투자 가능성은 낮아지고, 반도체 업황도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완만해지는 방향으로 재편될 수 있다.

■메모리 넘어 MLCC·기판까지 확산

AI발 LTA 확산 흐름은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패키지기판 등 반도체 부품업계로도 번지고 있다. 삼성전기는 2·4분기 콘퍼런스콜에서 "탑티어 하이퍼스케일러와 주요 반도체 업계 등 10여 개의 고객과 LTA를 체결했다"며 "추가 주요 고객의 LTA 요청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LG이노텍 역시 상황이 비슷하다. 플립칩 볼그리드 어레이(FC-BGA) 등 고부가 기판 사업으로 LTA를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LTA 확산으로 가격과 단기 주문에 따라 움직였던 반도체 공급망이 고객사의 구매 약정과 선수금을 기반으로 한 장기 수주 산업으로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다년 계약은 반도체 사업의 안정성과 가시성을 높일 뿐 아니라 고객 수요에 기반한 투자 집행으로 과거 사이클에서 반복되던 공급 과잉의 재현 가능성을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원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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