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붉은 여왕'의 경고
"제자리를 지키려면 전력을 다해 뛰어야 한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앨리스' 속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건넨 말이다. 여왕의 세계에서는 주변의 모든 것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겨우 같은 자리를 지킬 뿐 조금이라도 멈추는 순간 뒤처진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야만 살아남는 냉혹한 생존의 법칙, 이른바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다.
오늘날 마약범죄와 이를 쫓는 수사기관의 대응은 붉은 여왕의 경주를 방불케 한다. 수사기관이 SNS 마약 광고를 차단하면 판매상은 은어를 바꾸고, 계정을 폐쇄하면 새로운 대화방을 만든다. 계좌 추적이 강화되면 결제수단을 가상자산으로 교체하는가 하면 판매조직은 광고와 판매·자금세탁·운반을 점조직 형태로 세분화한다. 수사망이 좁혀질수록 범죄는 더 빠르게 새로운 통로를 찾아 움직이는 구조다.
파이낸셜뉴스 취재진이 2주 동안 텔레그램 마약 판매상 7명과 대화하고 최대 7000명이 참여한 공지방 등 10곳을 잠입 취재한 결과 판매방식도 온라인 소비 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다. 판매상들은 구매 가이드와 후기방·단골 할인·사후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초보자에게 마약을 추천했다. X와 구글에서 마약 은어를 검색하자 '24시 약국' '안식처' 등을 내건 홍보글과 텔레그램 판매 계정도 어렵지 않게 확인됐다.
경찰은 온라인 전담팀과 가상자산 분석·수사 인력을 보강하고 SNS 마약채널 첩보시스템과 위장수사를 도입하는 등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진화하는 범죄를 막기엔 한계가 있다. 수사기관이 플랫폼의 수사 협조를 이끌어내는 동안 범죄자는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마약 판매 통로가 우후죽순 생겨난다. 게시물 신고가 들어오면 삭제하는 방식의 대응으로는 발전하는 범죄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그렇기에 온라인 사업자들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는 마약 정보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관련 정보를 수사기관과 신속히 공유할 수 있도록 제도를 확립하는 것이 급선무다. 전문적인 치료·재활 시스템 구축을 통한 재범 방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마약은 단속만으로 일망타진이 가능한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얼굴을 바꾸는 마약범죄는 한 축의 대응만으로 따라잡을 수 없다. 수사기관과 플랫폼,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야만 비로소 국경을 넘나드는 마약범죄의 변화에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던 거울 나라처럼 말이다.[email protected] 김예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