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증산해도 안 늘어난다"…호르무즈에 발목 잡힌 OPEC+

이병철 기자
파이낸셜뉴스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의 핵심 7개국이 2023년부터 이어온 자발적 감산을 모두 되돌리는 마지막 증산에 나섰지만 국제유가는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9월부터 하루 18만8000배럴을 추가 생산하기로 했지만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중동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실제 공급 증가 효과가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공급 정책보다 지정학이 유가를 결정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공격 계획을 철회하고 협상에 나설 뜻을 밝히자 국제유가는 4% 넘게 급락했다.

증산하지만 시장은 '공급 부족'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이라크, 쿠웨이트, 알제리, 카자흐스탄, 오만 등 OPEC+ 핵심 7개국은 지난 2일(현지시간) 화상회의에서 9월부터 하루 18만8000배럴을 증산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결정으로 2023년 합의했던 하루 165만배럴 규모의 자발적 감산은 모두 철회됐다. OPEC+는 성명에서 이번 조치가 과거 초과 생산분에 대한 회원국들의 보상 이행을 앞당길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숫자만큼의 실제 공급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란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걸프 지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의 원유 수출이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올해 이어진 OPEC+의 월간 증산은 대부분 실제 시장 공급 확대보다 생산 할당량만 늘린 '서류상 증산'에 그쳤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도 여전히 정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협 재개방과 이란 핵프로그램 축소를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이란은 이를 협박으로 규정하며 방어적 대응 태세를 재확인했다. 선박 보험료와 운항 위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탱커 선사들도 협상이 최종 타결되고 안전이 검증되기 전까지는 운항 정상화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실제 브렌트유는 지난 4월 말 중동 전쟁 격화 당시 장중 배럴당 126.41달러까지 치솟으며 공급보다 지정학적 위험이 가격을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줬다.

이런 배경 속에 OPEC+는 9월을 끝으로 4·4분기 추가 증산에는 일단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 로이터통신과 CNBC는 복수의 OPEC+ 관계자를 인용해 9월 이후 연말까지 증산을 일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르헤 레온 리스타드에너지 애널리스트는 로이터통신에 "OPEC+는 자발적 감산 철회를 마무리한 만큼 이제는 수출 정상화 이후 나타날 수 있는 공급 과잉을 관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4·4분기에는 증산을 일시 중단하고 2027년 생산 쿼터 협상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유가 향방은 결국 호르무즈에

이번 결정 이후 기관별 유가 전망이 크게 엇갈리는 것도 결국 지정학적 위험을 얼마나 반영하느냐의 차이로 귀결된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다시 지연되거나 휴전이 무너지는 강세 시나리오에서는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 골드만삭스는 해협 통항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브렌트유가 120달러를 웃돌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중동의 원유 생산과 수출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세계 원유 재고 감소 폭이 확대되면서 공급 부족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중동 원유 생산과 수송이 점진적으로 정상화되는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유가가 하향 안정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중동 생산 회복과 세계 원유 재고 증가를 전제로 브렌트유가 올해 4·4분기 평균 배럴당 70달러 수준까지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골드만삭스도 긴장 완화를 전제로 4·4분기 브렌트유 전망치를 80달러 수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앞서 레온 애널리스트가 언급한 '수출 정상화 이후 공급 과잉' 가능성은 시장에서도 일부 반영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 계획을 철회했다고 밝히면서 국제유가는 하루 만에 4% 넘게 급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중동 국가들의 요청으로 협상의 큰 틀이 마련됐다며 공격을 보류했다고 설명했고, 이에 중동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빠르게 축소됐다.

다만 공급 과잉이 당장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원유 수출이 정상화되더라도 산유국들의 생산 확대와 물류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히 재개방되고 중동 원유 수출이 본격적으로 정상화된 이후에야 공급 과잉이 새로운 변수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오펙 로고. 사진=뉴시스
오펙 로고. 사진=뉴시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석유수출국기구 #OPEC+ #자발적 감산 #국제유가 #증산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