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재도전하는 美 클래리티법…60표·트럼프 윤리조항이 관건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해온 미국 가상자산 제도화의 마지막 퍼즐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의 8월 처리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가상자산 업계가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워싱턴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2억2500만달러 이상을 쏟아부었지만 은행권과의 이해충돌과 트럼프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을 둘러싼 윤리 논란 등에 막혀 상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다만 공화당 지도부가 9월 본회의 처리를 위한 절차에 착수하면서 법안이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결국 민주당 일부를 포함한 60표 확보를 위해 핵심 쟁점에서 여야가 얼마나 양보할 수 있느냐가 9월 통과 여부를 가를 전망이다.
클래리티법은 미 상원의 여름 휴회가 시작된 8일(현지시간)까지 본회의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8월 처리가 무산됐다. 클래리티법이 8월 처리되지 못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상원에서 필요한 60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상원을 장악하고 있지만 필리버스터를 끝내고 법안을 처리하려면 민주당 일부의 협조가 필요하다.
쟁점 중 하나는 스테이블코인 보상과 이자 지급이다. 은행권은 가상자산 플랫폼이 스테이블코인 보유자에게 사실상 예금 이자와 비슷한 보상을 지급하면 은행 예금이 빠져나가 대출 재원이 감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가상자산 업계는 은행들이 규제를 이용해 새로운 경쟁자를 막으려 한다고 반발한다. 가상자산 규제를 둘러싼 논쟁이 미국의 예금과 결제시장을 놓고 벌이는 전통 금융과 가상자산 업계의 주도권 싸움으로 번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가상자산 사업도 걸림돌이다. 민주당은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가 가상자산 사업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지 못하도록 강력한 윤리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의 친가상자산 정책이 산업 성장의 동력이 된 동시에 초당적 합의를 어렵게 만드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가상자산 사업으로 14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클래리티법은 가상자산을 누가, 어떤 규칙으로 감독할 것인지를 처음으로 연방법에 명확하게 규정하는 '시장 구조법'이다. 지니어스법에 이어 클래리티법까지 통과되면 미국 가상자산 시장의 기본적인 법적 틀이 사실상 완성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가상자산 제도화는 빠르게 진행됐다. 지난해 7월 스테이블코인 규제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이 제정되고 하원에서 클래리티법까지 통과됐지만, 상원에서는 올해 1월 한 차례 처리가 좌절됐다. 이후 재협상을 거쳐 5월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핵심은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역할을 명확히 나누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동안 어떤 가상자산이 증권이고 어떤 자산이 상품인지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어 규제기관 간 관할권 논란이 이어졌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SEC는 가상자산에 우호적인 방향으로 규제를 대폭 전환했지만 이는 행정부 정책에 불과하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뒤집힐 수 있다. 의회가 SEC와 CFTC의 관할권과 거래 규칙을 법률로 확정하면 차기 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규제 방향을 뒤집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8월 처리는 무산됐지만 법안 자체가 좌초된 것은 아니다. 존 튠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휴회 직전 클래리티법의 절차적 표결을 위한 조치를 시작했다. 상원이 복귀하는 9월 본회의에서 다시 법안을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결국 관건은 공화당이 민주당 일부를 설득해 60표를 확보할 수 있느냐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권과 가상자산 업계가 스테이블코인 보상 문제에서 최종 절충점을 찾고, 트럼프 대통령과 고위 공직자의 가상자산 이해관계를 제한하는 윤리조항에서도 타협해야 한다.
시간도 변수다. 11월 중간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여야가 상대방에 정치적 성과를 안겨줄 대형 법안에 합의하기는 어려워진다. 이에 따라 9월 이후 중간선거 정국이 본격화하기 전까지가 클래리티법 처리의 중요한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법안이 다시 좌초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임기 중 가상자산 규제 완화가 당장 중단될 가능성은 낮다. SEC와 CFTC가 자체 규칙을 통해 제도화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상자산 업계가 원하는 것은 친가상자산 행정부가 아니라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