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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⑥공자를 찾아서 : 곡부와 태산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곡부 공묘(孔廟) 대성전 앞에서 펼쳐지는 팔일무(八佾舞)
곡부 공묘(孔廟) 대성전 앞에서 펼쳐지는 팔일무(八佾舞)

황하를 따라 산동성에 들어와 처음 찾은 도시는 제녕(濟寧, 지닝)이다. 공자의 고향 곡부(曲阜)와 맹자의 고향 추성(鄒城)이 모두 제녕에 속해 있어 예로부터 유가문화의 중심지였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곡부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공자를 모신 공묘(孔廟)의 대성전에 이르니 마침 공자에게 올리는 팔일무(八佾舞)가 한창이다. 붉은 예복을 입고 꿩 깃털을 든 무용수 64명이 8열로 늘어서 춤을 춘다. 본래 팔일무는 천자에게만 허용된 춤이었다. '논어·팔일'에서 공자가 노나라의 실권자 계손씨가 자신의 뜰에서 팔일무를 추게 한 것을 보고 "이런 짓을 차마 한다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는가"라고 분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팔일무가 공자 자신에게 바쳐지고 있다. 후대의 황제들은 공자를 '만세사표(萬世師表)', 만세의 스승으로 높여 모셨기 때문이다.

생전에 신분 질서를 어긴 팔일무를 그토록 못마땅해했던 공자가 오늘날 자신에게 올리는 팔일무를 본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공자와 후손들이 살았던 공부(孔府)를 지나 공자의 무덤이 있는 공림(孔林)으로 갔다. '지성림(至聖林)'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는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무덤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공자의 무덤 가까이에는 아들 공리(孔鯉)와 손자 공급(孔伋), 곧 자사(子思)의 무덤도 있다. 공자의 무덤 앞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는 거창한 존호가 새겨져 있다. 시대가 흐르면서 황제들이 공자를 높이 받들며 덧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그런 거창한 이름보다 이곳에서 더 마음에 와닿는 것은 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남긴 말이다.

'지성림'으로도 불리는 공림(孔林).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소가 모여있는 가족묘지다.
'지성림'으로도 불리는 공림(孔林).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소가 모여있는 가족묘지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에 자립하였다.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 쉰에는 천명을 알았다. 예순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에는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 마지막 경지가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다.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아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경지. 욕망을 억지로 누를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욕망이 절제의 한계를 넘어가지도 않는 원융무애의 삶이다. 공자는 어떻게 그런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어쩌면 '논어'의 맨 처음에 이미 제시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움 자체에서 기쁨을 찾고, 좋은 벗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며,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는 삶이다. 생각해보면 공자의 생애는 바로 이 세 문장을 평생에 걸쳐 실천해간 과정이 아니었을까. 곡부를 흘러가는 사수(泗水)의 저녁 강가에서 큰 스승의 삶을 떠올리며 '논어·학이' 첫 장을 천천히 읊어보았다.

곡부 사수(泗水)의 저녁 풍경
곡부 사수(泗水)의 저녁 풍경
태산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몽산(蒙山)
태산 가는 길에 잠시 들른 몽산(蒙山)

다음날 태산으로 가는 길에 먼저 잠시 몽산(蒙山)에 들렀다. 산동성 임기(臨沂) 서북쪽에 있는 몽산은 주봉 구몽정(龜蒙頂)이 해발 1156m로, 태산에 이어 산동성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이다. 옛날에는 노나라 동쪽에 있다 하여 동산(東山)이라고 불렀다.

몽산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맹자·진심상'의 한 구절이다. "공자등동산이소로(孔子登東山而小魯), 등태산이소천하(登泰山而小天下)"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를 작게 여겼고,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겼다. 산 아래로 펼쳐진 산동의 평원을 바라보니 과연 노나라가 작게 보일 만하다. 북쪽으로 아스라이 구름을 뚫고 태산 정상이 보인다.

공자가 동산에서 다시 태산으로 향했듯 우리도 몽산을 내려와 태산으로 향했다. 태산 아래에서 버스를 타고 중천문(中天門)에 이른 뒤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남천문(南天門)에 올랐다. 남천문 아래로는 태산에서 가장 험하기로 유명한 십팔반(十八盤)의 돌계단이 까마득하게 이어진다. 이 문을 들어서면 인간세계에서 천계로 들어서는 듯 정상부의 풍경이 활짝 열린다.

태산 십팔반(十八盤). 사진 가운데로 태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구간인 '십팔반'이 보인다.
태산 십팔반(十八盤). 사진 가운데로 태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계단 구간인 '십팔반'이 보인다.

정상을 향해 걷다 보면 태산을 상징하는 네 글자와 마주친다. 오악독존(五嶽獨尊). '오악 가운데 홀로 존귀하다.' 동악 태산, 서악 화산, 남악 형산, 북악 항산, 중악 숭산 가운데 왜 태산만이 '독존'을 자처하는가. 높이로 따지면 태산이 가장 높은 것도 아니다. 태산의 특별한 지위는 무엇보다 중국 제왕들의 봉선(封禪)과 관계가 있다. 천자가 태산에 올라 하늘에 자신의 공업을 아뢰고 천하를 다스릴 정당성을 확인받는 봉선의식이 이곳에서 거행되었다. 태산은 단순히 높은 산이 아니라 인간세계의 최고 권력자인 천자와 하늘을 연결하는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태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높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1300년 전 젊은 두보도 그랬다. 스물다섯 살 무렵 과거에 응시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제나라와 조나라 지역을 유람하며 태산을 찾았다. 아직 세상에 이름을 얻지 못한 청년 두보가 태산을 바라보며 쓴 작품이 바로 유명한 '망악(望嶽)'이다.

태산은 대저 어떠한가
제와 노에 걸쳐 푸름이 끝이 없구나
조물주는 신령하고 수려한 기운을 모았고
산의 남북은 어둠과 새벽을 갈랐구나
가슴을 씻으며 층층 구름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돌아가는 새를 바라본다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꼭대기에 올라
자그마한 뭇 산들을 한눈에 굽어보리라

岱宗夫如何, 齊魯靑未了
造化鍾神秀, 陰陽割昏曉
蕩胸生曾雲, 決眥入歸鳥
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이 시가 천고의 명작이 된 것은 마지막 두 구 때문이다. "회당능절정(會當凌絶頂), 일람중산소(一覽衆山小)". 언젠가는 반드시 정상에 올라, 뭇 산이 작아지는 것을 한눈에 바라보리라.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젊은 시인이 언젠가는 자신의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겠다는 선언이다. 과거시험에서 실패한 좌절도 태산을 바라보는 순간에는 더 이상 그를 짓누르지 못한다. 층층이 피어오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가슴속의 답답함을 씻어내고, 눈이 터질 듯 힘껏 정상과 그 너머를 바라본다. 지금은 산 아래에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저 꼭대기에 서리라. 그 젊은 날의 호언은 결국 현실이 되었다. 두보는 중국 시의 역사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에 올라 '시성(詩聖)'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태산 곳곳의 암벽에 새겨진 이 두 구절은 두보 개인의 포부를 넘어 높은 곳을 꿈꾸는 모든 사람의 말이 되었다.

태산 공자소천하처비
태산 공자소천하처비

태산 정상 옥황정(玉皇頂)에는 옥황상제를 모신 도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옛날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던 곳임을 알리는 '고등봉대(古登封臺)' 비석도 보인다. 예부터 "태산이 평안하면 사해가 모두 평안하다(泰山安 四海皆安)"고 했다. 천자들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빌었던 것도 결국 나라가 평안하고 백성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국태민안(國泰民安)이었으리라.

옥황정을 내려와 일관봉(日觀峰) 쪽으로 가다보면 공자의 태산 등정을 기념하는 비석이 서있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기셨다"는 뜻의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를 새긴 비석은 최근에 새로 조성된 것이다. 예전에는 옥황정 오르는 길 한쪽에 아주 작은 표지석으로 서있어서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이제는 태산에 오르는 사람이면 누구나 볼 수 있게 산 아래의 풍광이 한 눈에 들어오는 높은 바위 위에 큼지막하게 비석을 세웠다. 공자가 태산에 올라 천하를 작게 여긴 것의 상징적 의미를 알리고자 한 것이니, 광대한 세상을 작다 여길 정도로 넓은 흉회와 높은 이상을 가질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이 비석 옆에 일출을 감상하는 일관봉이 있다. 태산의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한밤중 7000여개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그리고 동쪽으로부터 힘차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새기고 다짐한다. 오악독존의 암벽 글씨도 선명히 떠오르고, 두보의 시구도 귓가에 쟁쟁하다.

[김성곤의 중국한시기행] ⑥공자를 찾아서 : 곡부와 태산

김성곤 방송통신대 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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