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겪는 청년들 기성정치에 불만… 곧 세대교체 일어날 것" [논설실의 뉴스 진단]
강원택 교수에게 들어보는 한국 정치 현실과 나아갈 길
진보 이념이 386세대 결합하며 갈등 심화
현재 지역주의는 의미 없는 소모적 갈등
승자독식 시스템의 대통령제가 문제 근원
개헌보다 선거제도 개혁이 변화 위해 시급
탈이념 청년층, 386세대를 기득권 인식해
노조 혁파해야 청년 일자리 생긴다고 봐
진보 지향 민주당 개혁 열망 없어 변화 필요
보수는 시대 변화 거부하지 말아야 살아나
李대통령, 호남반도체 등 선택과 집중해야
갈등보다 분명한 업적 남기려는 노력 중요
이념·지역·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취업난 등으로 청년층이 겪는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청년들은 기성 정치에 반발하며 세대교체를 원하지만 세력화하기에는 힘이 모자란다. 이달 말로 정년퇴임하는 한국 정치학계의 거두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나 한국 정치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한 견해를 들어보았다.
―이념적 갈등과 분열이 심각한 상황인데.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는 이념 갈등이 거의 없었다. 노무현이 등장하면서 진보 이념이 나와 386세대와 결합하면서 힘을 받게 됐다. 당시에는 진보의 가치가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 같은 의미였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대북 관계 개선, 미국에 대한 의존 등의 문제가 제기됐다. '효선·미선양 사건' 등이 겹치면서 갈등이 커졌다. 지금은 의미 없는 지역주의적인 갈등과 노무현 죽음 이후의 분노나 적개심이 문재인 때 적폐 청산으로 이어졌다. 정치적인 입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런 적개심이나 적대감이 계속 재생산될 필요가 있는 거다.
―의미 없는 지역주의라고 했는데.
▲지방 소멸이 문제인데 경상도와 전라도가 무슨 의미가 있나. 다 못사는데. 그래서 의미 없는 갈등이다. 지역적 이해관계, 그러니까 중앙권력을 통해 지역적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정도 이상의 의미는 없다.
―갈등을 해소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
▲승자독식 시스템이지 않나. 대통령, 국회의원도. 그것을 장악하려면 지역적·정파적으로 결집해야 한다. 지금 PK(부산·경남) 지역은 (양당 지지율이) 이미 5대 5이거나 6대 4 정도로 변화됐고 대구도 달라졌다. 호남도 젊은 20대, 30대는 민주당 싫어한다. 선거 제도가 더 비례성이 있거나 다른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대표될 수 있으면 더 달라질 수 있을 거다. 대통령이 a부터 z까지 틀어쥔 구조에서는 타협, 협력의 여지는 없다.
―그러자면 제도가 바뀌어야 하지 않나. 개헌 얘기도 나오고 있다.
▲절차가 굉장히 중요하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여야 의석수 차이가 2대 1이었는데 4대 4로 8인 회담을 했다. 당시 민정당 입장에서는 기득권을 버리고 대등한 입장에서 타협을 했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은 다수파가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결국은 수에 의한 정치를 하겠다는 거다. 국민적 설득도 없고 연임 여부에 대한 명확한 언급도 없다.
―분권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외교·안보나 장기적인 국가발전 과제를 맡는 형태로 역할분담을 하자는 거다. 중앙정부에 불필요한 권한들을 지방으로 이관해야 한다. 중요한 건 지방도 1당이 장악해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정치적 다원성이 보장되지 않기에 정치제도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 개혁을 전제로 과감한 지방분권을 통해서 수직적·수평적으로 나눠야 장관들도 제 역할을 한다.
―양당제 중심의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
▲사실 개헌보다 선거제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 민주당은 진보, 개혁을 앞세우면서 실제로는 하지 않는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세대교체다. 제3의 정당이 등장할 공간이 열려야 하는데 어렵다. 민주당의 주축이 386이다. 젊은 세대는 불만이 많다. 현재 겪는 어려움도 크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다. 특히 지금은 전환기 아닌가.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바뀌는 격변기다. 젊은 층은 자기들을 대표하고 이해해 줄 리더가 필요한데 그런 존재가 없다. 잠실의 투표소 문제로 20대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386 시대와 지금은 다른데 변화가 수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가 표출될 수 있는 새 시대를 향한 격한 변화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난 6·3선거에서 보여주긴 했는데 세력이 미약하지 않나.
▲그들이 말하는 자기들의 문제는 386보다 머릿수가 적다는 거다. 나는 좀 생각이 다른데 2년 후 총선 때부터 변화가 표출될 거다. 누군가 격발을 하고 불꽃이 나오면 불만을 가진 중산층들이 모여든다. 20·30대의 숫자나 역량만이 아니라 새로운 변화를 기다리는 중간층이 있다고 본다. 결집된 형태로 등장을 할 가능성이 있다.
―학생운동은 어떤 변화가 있었나.
▲학생들이 개별화돼 총학생회를 구성하기도 힘들다. 모두 공감할 거대한 악이 없지 않나. 지금 한국은 민주화됐다. (젊은 층의 현실이) 정책에 반영돼야 하는데 안 맞다. 386세대는 한 세대 차이지 않나. 젊은 층은 386을 기득권으로 알고 있다. 태국에서도 젊은 세대가 만든 정당이 제1당이 된 적이 있다. 우리도 노무현 등장 이후 24년, 한 세대가 흘렀는데 새로운 힘이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때가 됐다.
―사실 청년세대가 10년, 20년 있으면 곧 나라의 주축이 되지 않는가.
▲물론이다. (새로운 변화가 있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2002년 3김 시대, 지역주의가 끝났을 때 전혀 예상치 않았던 노무현이 등장했는데 그게 흐름이다. 2년 뒤든 아니면 대통령 선거 때든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본다. 2030세대의 결집된 힘과 변화에 대한 동력을 이끄는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젊은 세대는 이념에 대한 관념이 약하지 않나.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이념이 있겠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매우 실용적이다. 이념은 산업사회의 산물이다. 공장이 없어지고 있거나 로봇이 대신하는 상황에서 옛날 패러다임이다. 탈이념화돼 가고 있다. 유럽에서도 좌파 정당이 몰락하고 있다. 우리도 비슷한 단계에 와 있다. 한국은 노동자 이념은 아니었다. 반공 이데올로기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은 의미 없다.
―노조는 이념적으로 보면 좌파 아닌가.
▲386세대의 생각이다. 노동자는 약자고 보호해야 되고 자본가는 나쁜 놈, 그런 생각이다. 지금은 안 맞다. 노란봉투법 등이 다 그 시절 생각이다. 시대에 안 맞는 정책이 계속 나온다. 만약에 현대차에서 로봇을 투입하면 국가가 막을 건가. 젊은 친구들이 볼 때는 답답한 거다. (그들에게) 노조는 기득권이다. 노조를 혁파해야 일자리가 생기고 젊은 애들도 들어갈 거 아닌가. 그게 실용 아닌가.
―제도적으로 이미 멍석을 깔아줬지 않나.
▲80년대식 사고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세상 환경은 특히 AI나 피지컬 AI 로봇이 등장하면서 어마어마하게 빨리 변하고 있다. 옛날과 전혀 다른 환경인데 생각은 그대로니까 오히려 약자가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득권 노조가 보호받는다. 삼성전자 (성과급) 문제가 가장 상징적이다. 그 사람들이 무슨 약자인가. 변화에 맞춰서 정책적 혁신이 이루어져야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을 텐데 담당자들은 여전히 '꼰대'들이니까 갈등이 생긴다.
―민주당 독주 체제를 만든 건 결과적으로 국민이지 않나.
▲1차적으로는 (원인을) 보수의 몰락으로 본다. 보수는 조금 더 먼저 망했다. 새 이야기를 못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때부터 옛날로 돌아갔다. 젊은 친구들 등의 힘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게 수도권이다. 박근혜 후반부터 수도권에서 보수가 의석을 많이 얻지 못했다. 현실 문제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대안으로 민주당이 선택됐던 거다. 그런데 민주당이 똑같아지고 있다. 새로운 이야기가 없어졌고 자칭 진보인데 개혁이 사라졌다. 같이 '꼰대'가 된 거다. 거대한 변화가 있어야 우리 정치가, 우리 사회가 제 갈 길을 가고 정치도 깨어날 것이다.
―건전한 보수를 살리려면.
▲일단 미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부정선거도 옛날 이야기다. 어떻게 집권을 바라는 당 대표의 주장이 부정선거밖에 없나. 말이 안 된다. 미래 이야기가 없다. 중도를 향한 메시지도 없다. 호남에는 보수적인 사람들이 왜 없겠나. 오죽 못하면 이렇게 바닥을 쳤겠나. 보수의 원천은 유능함이다. 그 덕목이 박근혜, 윤석열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이 시대의 문제를 치유하고 고쳐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주겠다는 비전을 줘야 하는데 없다.
―보수가 젊은 층을 끌어들일 수는 없나.
▲먼저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느낌을 줘야 한다. 사람도 젊어져야 되고 내용도 젊어져야 한다. 진심으로 젊은 층의 고민을 대표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공감하고 시대 변화의 방향도 읽어야 한다. 영국 보수당 역사에 대한 책('보수 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을 쓰고 내린 결론은 보수는 기존 것을 지키려고 하면 무조건 망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보수는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변화를 선도적으로 받아들이고 양보할 건 양보한다. 그러면서 세상이 질서 있게 변화한다. 질서 있는 변화를 하려면 권력을 가져야 한다. 권력을 가지려면 이 시대의 문제에 답해야 한다. 영국 보수당은 끊임없이 유권자의 의견이나 고민을 듣고 반영한다.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신흥 산업가들이 나오니까 지주 계급인 부르주아들이 받아들였다. 1930년대에도 보수당이 먼저 노동자들 집도 지어주고 노동환경도 개선해 줬다. 1945년 이후 노동당이 집권해 복지정책을 지향했는데 보수당이 다시 권력을 잡았을 때 이어받았다. 그런 유연함이 보수당을 살려놓았다. 시대적 변화에 저항하지 않는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무엇이 있나. 아무것도 없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중하층민들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되지 않을까.
▲필요하면 가야 한다. 여전히 강남·노인·경상도 정당 아닌가. 보수에서 추앙하는 박정희는 경제성장 전략으로 재벌들을 육성하고 키우긴 했지만 전반적인 생활 수준이 다 올라갔다. 지금은 보수의 스피릿(정신)을 잃었다. 보수는 오래전에 영혼을 잃었고, 진보는 더 이상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이 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역사적 평가와 관련된 고민을 해야 한다. 호남 반도체 프로젝트는 잘만 하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애썼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해서 분명한 업적을 남기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다 기억나는 게 없지 않나. 잃어버린 10년 이상 지금 지나고 있다. 업적을 남긴 대통령은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다. 박정희 연설문을 보면 근대화를 이루고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메시지를 계속 냈다. 불필요한 갈등이나 논란을 일으키지 말고 업적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email protected] 손성진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