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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국 이란에 때아닌 '주유소 웨이팅'…무슨 일이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美 해상봉쇄에 정제연료 공급 급감
하루 휘발유 1500만L 부족
전쟁·가격인상 우려에 주유 행렬
초저가 기름 보조금 재정 압박
가격 올리자니 민심 폭발 우려

연료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란에서 아직 운영 중인 주유소를 향해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선 모습. 뉴스1
연료 부족 사태가 발생한 이란에서 아직 운영 중인 주유소를 향해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선 모습. 뉴스1

[파이낸셜뉴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이란의 '연료 동맥'이 막히면서 수도 테헤란 주유소마다 기름을 확보하려는 시민들이 몰리고 있다. 산유국인 이란이 휘발유 부족에 시달리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정부가 막대한 보조금으로 눌러온 기름값까지 흔들릴 경우 전쟁과 물가 급등에 지친 민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현지시간) 테헤란 곳곳의 주유소에 차량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해상 봉쇄로 연료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는 가운데 전쟁 재개와 가격 인상을 걱정한 시민들이 미리 휘발유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헤란의 한 주유소 직원은 FT에 "운전자들이 전쟁이 다시 시작되거나 기름값이 오를 것을 걱정해 연료통이 비기도 전에 주유소를 찾는다"고 말했다. 한 번에 넣을 수 있는 휘발유는 20L로 제한된다.

세계적인 산유국인 이란이 휘발유 부족을 겪는 것은 원유 생산 능력과 별개로 이를 휘발유와 경유 등으로 가공할 정유 능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족분을 수입에 의존해왔지만 지난 7월 14일 재개된 미국의 해상 봉쇄로 공급망이 좁아졌다. 전쟁 초기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일부 정유 시설까지 피해를 입었다.

이란 석유부 산하 에너지최적화기구에 따르면 이란의 하루 휘발유 수요는 1억3500만L에 달하지만 현재 공급량은 이보다 1500만L 부족하다. 하루 소비량의 11%가량이 모자라는 셈이다. 당국은 국민들에게 연료 소비를 줄여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문제는 휘발유 부족이 공급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란 정부가 민심 안정을 위해 성역처럼 관리해온 품목이 빵과 연료이기 때문이다.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두 품목의 가격이 오르면 전쟁과 고물가로 악화한 민심이 더욱 흔들릴 수 있다.

이란은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해 휘발유 가격을 억누르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조금 적용 단계에 따라 소매가격은 L당 1만5000~5만리알(약 10~36원)에 불과하다.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외화로 환산한 가격은 세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다.

싼 기름을 유지하는 대가로 정부 재정은 압박받고 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달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게 공급되는 휘발유에 재정을 쏟으면서 식량과 노동자 지원 등에 사용할 돈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FT도 이란 정부 내부에서 현재와 같은 초저가 연료 공급을 장기간 지속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가격 인상 카드를 꺼내기도 쉽지 않다. 이란 정부는 이달 케르만주에서 고급 휘발유 가격을 올렸다가 시민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불과 몇 시간 만에 철회했다. 과거 연료 가격 인상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의 도화선이 된 전례도 있다. 미국의 압박에 협상보다 저항을 택한 이란 지도부로서는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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