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토지보상금, 이제 아파트로 간다
해마다 수십조원의 토지보상금이 풀리면 부동산 시장이 들썩인다는 신화가 있었다. 보상금을 받은 땅 주인이 인근 논밭이나 임야를 다시 사들이는 대토(代土) 수요 때문이었다. 과거 경기도 파주에서 풀린 보상금이 연천까지 흘러 들어가 주변 땅값을 끌어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토지보상금이 인근 토지시장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공식은 오랫동안 유효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보상금 수령자의 고령화다. 국토교통부의 '2025년 말 기준 토지소유 현황 통계'에 따르면 60대 이상 고령층이 전체 개인 소유 토지의 67.1%를 차지한다. 실제로 요즘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보상을 받는 상당수가 60~80대 고령자다. 이들에게 대토는 더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취득세 감면 혜택이 있어도 다시 땅을 사서 농사를 짓는 건 큰 부담이다. 고령의 지주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농지가 아니라 안정적인 노후자금일 것이다.
점포 겸용 주택(상가주택)의 인기가 시들해진 점도 주목할 변화다. 한때 신도시 이주자 택지의 점포 겸용 주택은 은퇴자들의 로망이었다. 상가 임대수익을 얻으면서 위층에 거주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소비침체와 공실 증가로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세탁소, 편의점 등이 들어서던 1층 상가의 수익성은 예전만 못하다. 한때 수억원씩 붙던 이주자 택지 프리미엄도 뚝 떨어졌다. 상가 용지를 공급받은 이들의 한숨도 깊어진다. 자금조달이 어려운 데다 시장마저 위축돼 분양이 쉽지 않아서다. 결국 토지나 수익형 부동산 대신 아파트 특별분양분(이주자 주택)으로 눈을 돌린다. 최소한 큰 손해는 보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현장에서 "차라리 아파트나 받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백억원의 보상금을 손에 쥐고 도심 빌딩을 찾던 이들도 발길을 돌리고 있다. 경기침체로 공실이 늘고 건물 관리마저 까다롭기 때문이다. 돈이 있어도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온다.
자연스럽게 보상자금의 물줄기도 바뀌었다. 예금, 채권, 주식 등 금융상품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에는 토지보상금의 70%가 부동산으로 재유입됐지만, 지금은 30% 수준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시장 환경 변화가 자금의 이동 궤적을 바꿔놓은 것이다.
본래 토지보상금은 땅이나 건물을 다시 사들이는 공격적인 '재투자의 실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산의 안전한 보존과 자녀 증여를 위한 유산의 성격이 강해졌다. 보상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든다 해도 인근 논밭이 아닌 도심 아파트 시장으로 향하는 이유다. 부모의 보상금이 자녀의 도심 내 집 마련 밑천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단순히 보상금이 많이 풀린다고 해서 모든 부동산 가격이 뜀박질할 것으로 믿는 건 지극히 단편적인 시각이다.
토지보상금은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아니라 전체 경기 흐름에 종속된 '하위 변수'일 뿐이다. 부동산 시장의 향방을 읽으려면 보상금의 액수만 따질 게 아니라 그 돈이 누구 손에 들어가고 그들이 무엇을 갈망하는지 봐야 한다. 지금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거대한 돈의 액수가 아니라 돈을 쥔 사람들의 달라진 욕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