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AI 시대 '호모 콰렌스'

파이낸셜뉴스
임상수 논설위원
임상수 논설위원

인류는 스스로를 도구를 쓰는 존재, '호모 파베르'(Homo faber)라고 불렀다. 이어 생각하는 존재,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했다. 최근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새 이름이 필요해졌다. '호모 콰렌스'(Homo quaerens), 질문하는 인간이다. 콰렌스는 '묻다·찾다·탐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퀘어레레(quaerere)'에서 왔다. 중세 신학에도 등장했던 이 말이 수백년을 건너 스마트폰 화면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런 인간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다. 그가 AI를 활용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질문이다. 낯선 개념을 만나면 AI에 먼저 묻는다. "12세 아이에게 설명하듯 말해줘"라며 기초를 다진 뒤에는 "박사 수준으로 파고들어 줘"라고 다시 묻는다. 답을 얻는 것이 끝이 아니다. 다른 AI에도 물어 답을 비교한다. 그는 이 과정을 "의사 세 명에게 각각 진료를 받는 것"과 같다고 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젠슨 황이 AI를 '정답 기계'로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묻고, 어려우면 더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한다. 그런 뒤에는 더 깊이 파고든다.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지식의 깊이도 달라진다. AI 시대의 새로운 능력은 어쩌면 여기에 있다. AI가 무엇을 아느냐보다 내가 무엇을 물을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젠슨 황은 21세기형 '호모 콰렌스'의 전형이다.

젠슨 황에게 AI를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AI를 무시하는 사람이 되지 마라. 손해를 보는 것은 당신"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AI에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이라고도 했다.

이런 변화가 특히 주목받은 곳은 교육 분야다. 챗GPT가 세상에 나오기도 전인 2022년 여름이었다. 오픈AI CEO 샘 올트먼과 비영리 온라인 교육기관 칸아카데미 창립자 살만 칸은 AI를 교육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목표는 정답을 알려주는 기계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개인교사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AI 튜터 '칸미고'다. 살만 칸의 꿈은 알렉산더 대왕에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던 것처럼 모든 학생에게 개인교사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칸미고는 월 4달러다. 커피 한잔 값으로 언제든 물어볼 수 있는 개인교사가 생기는 것이다. 이용 규모도 빠르게 커졌다. 2024~2025학년도 칸미고에 접속한 학생은 전 세계적으로 200만명에 이르렀다. 다만 '적극 이용률'은 15%에 그쳤다. 개인교사가 있어도 모두가 매일 묻는 것은 아니다. AI 교육의 효율성만큼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질문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우리 공교육에서도 비슷한 변화를 시도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이 그것이다. 하지만 교육적 실험보다 정치적 공방이 앞섰다. AI를 학습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보다 AI를 학교에 도입할 것인가를 둘러싼 논쟁에 더 많은 에너지가 쏠렸다. 도입 과정의 졸속 논란이나 디지털 과몰입 우려를 떠나, 아이들이 AI에 묻고 답을 검증하는 새 학습법을 익힐 기회를 놓친 것이 아쉽다.

그렇다고 다음 기회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스마트폰을 켜고 AI에 물어보자. 쉽게 설명해 달라고 하고, 이해가 되면 더 깊이 파고들자. 다른 관점은 없는지, 반론은 없는지,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인지 캐물어보자. AI의 답을 받아 적는 대신 답을 검증하고 다시 질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호모 파베르는 도구를 만들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그 도구로 세계를 이해했다. 호모 콰렌스는 이제 질문을 통해 지적 능력을 확장한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모든 것을 아는 데 있지 않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고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데 있다. 스마트폰을 켜고 첫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이미 새로운 인간형의 문을 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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