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안 마셨는데 왜?"…'침묵의 장기' 간이 이 보내는 SOS는? [헬스톡]
[파이낸셜뉴스] 우리 몸의 '화학 공장' 간은 웬만해선 소리 내어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 바로 '간부전'이다.
명지병원 박진우 간부전센터장은 "해독과 단백질 합성, 호르몬 조절 등을 담당하는 간은 상당 부분이 손상돼도 별다른 통증이 없다"며 "몸의 이상을 자각했을 땐 이미 간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된 '간부전(Liver Failure)' 단계에 들어선 경우가 많다"고 경고했다.
간부전은 특정 질환명이라기보다 간세포가 광범위하게 손상돼 간이 수행해야 할 기본적인 생명 유지 기능이 저하된 상태를 말한다. 체내 독소 해독, 영양소 대사, 담즙 생성, 혈액응고 인자 생성 등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전신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한 상태다.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비만과 당뇨병으로 인한 지방간, B형·C형 간염, 자가면역질환, 약물이나 건강기능식품에 의한 간 손상 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특히 급성 간부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약인성 간 손상'으로, 출처 불명의 민간요법이나 즙 종류, 과도한 영양제 조합, 소염진통제 과다 복용만으로도 급성 간부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부전은 평소 간 질환이 없던 사람에게도 갑작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 급성 간부전은 바이러스 감염이나 약물 등에 의해 수일에서 수주 만에 발생하며, 이때 황달과 의식 저하가 급격히 진행되기도 한다. 반면 만성 간부전은 만성 간염이나 간경변증을 오랜 기간 앓으면서 간이 점차 굳고 기능을 잃어가는 상태를 말한다.
증상으로는 피로감과 식욕 부진이 흔하게 나타나며, 황달과 짙은 소변, 복부 팽만, 다리 부종, 피부 가려움 등이 동반될 수 있다. 병이 진행되면 멍이나 코피·잇몸 출혈이 쉽게 발생하고, 손 떨림이나 성격·행동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간이 해독하지 못한 암모니아 등 독성 물질이 뇌에 영향을 미쳐 발생하는 '간성뇌증'의 증상일 수 있다.
특히 주의해야 할 신호도 있다. 황달과 함께 심한 졸림, 말이 어눌해지는 등 의식 변화가 나타나거나 사람·시간·장소를 혼동하고 깨우기 어려운 경우에는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토혈이나 검은색 변, 심한 어지럼증과 식은땀 등 출혈이 의심되는 증상도 마찬가지다. 간경변증 환자에게 발열을 동반한 복통, 갑작스러운 복수 증가, 소변량 감소 등이 나타났다면 중증 합병증 가능성이 있어 지체 없이 진료를 받아야 한다.
건강검진에서 간수치가 정상이라고 안심해서도 안 된다. 흔히 '간수치'라 불리는 AST·ALT는 간 기능 자체보다 현재 간세포의 손상 정도를 반영하는 지표로, 간경변증이 상당히 진행된 경우에는 오히려 정상 범위이거나 크게 높지 않을 수 있다. 박 센터장은 "간 상태는 빌리루빈·알부민·혈액응고 수치(PT/INR), 혈소판과 신장 기능 등을 함께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복부 초음파나 간섬유화 검사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며 "한 번의 검사 결과보다 검사 수치의 변화와 증상을 함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단과 치료는 원인을 찾는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핵심이다. 의료진은 기존 간질환과 음주·약물·한약·건강기능식품 복용력 등을 확인하고 혈액검사와 영상검사로 원인을 찾는다. 특히 급성 간부전은 수 시간 만에도 악화할 수 있어 의식·혈당·신장기능 등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필요한 경우 중환자실에서 집중 치료가 이뤄진다. 치료는 원인에 따라 해독제·항바이러스제·면역치료 등을 시행하고, 간성뇌증·출혈·감염·신부전 등 합병증을 관리한다. 박 센터장은 "시중의 '간 해독제'나 건강보조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원인을 찾아 신속히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간 기능 회복 가능성이 낮거나 간성뇌증이 빠르게 진행하고 신장·순환기 등 여러 장기의 기능까지 악화된 경우에는 간이식이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치료법이 될 수 있다. 박 센터장은 "급성 간부전이나 급성-만성 간부전(ACLF)은 짧은 시간에도 악화할 수 있어 소화기내과를 중심으로 외과·장기이식센터, 영상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와의 신속한 협진이 필요하다"며 "간이식이 필요한 경우 조기에 이식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므로 전문센터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예방을 위해서는 '간을 쉬게 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검증되지 않은 건강보조식품이나 즙, 약물의 오남용을 피하고 B형·C형 간염 검진 및 B형간염 백신 접종을 완료해야 한다. 만성 간 질환자나 지방간이 있는 경우에는 정기적인 간 초음파와 혈액검사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