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광장]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선 한반도

파이낸셜뉴스

트럼프가 띄운 北美 정상회담
2000년 협상 '데자뷔' 될까
美 본토에 근접 중인 북한 ICBM
제재해제·핵보유국 카드 든 북
 
급변하는 동북아 구도 속에
한미 조율·국제 공조 챙겨야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맥도널드와 코카콜라 가운데 어떤 쪽이 평양에 먼저 입성할까. 대형 광고판을 평양 거리에 어느 회사가 먼저 세울까."

미국과 북한의 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수교 논의가 진행되던 2000년. 서울과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런 예측과 논의들이 심심치 않게 오갔다.

그해 10월 11일. 북한 군부 실세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군복 차림으로 워싱턴의 백악관을 찾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했다.

다음 날 두 나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적대 관계 종식을 선언했다. 전면적인 관계 개선과 주권 존중 등을 확인했고, 정전체제를 한반도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이를 위한 4자 회담에도 합의했다. 클린턴 정부는 경제교류 확대와 인도적 지원,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등을 당장이라도 단행할 듯 전향적이었다.

그달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으로 날아가 2박3일 동안 김정일과 2차례 회담을 갖고 클린턴의 북한 방문과 평양·워싱턴에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상호 연락사무소가 곧 양국 수도에 문을 열고, 수교가 다가올 듯 기대를 키우던 상황은 공화당으로의 정권 교체 등 임기 말 급박한 정치 일정과 우라늄 농축 핵개발 논란 등의 벽을 못 넘었다.

20년 가까이 표류하던 양국 관계는 트럼프 집권 1기 때야 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고, 두 정상은 관계 개선과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 노력 등에도 합의했다. 그러다 2019년 2월에 열린 하노이 정상회담은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 등 상응 조치를 둘러싼 입장 차로 합의 없이 종료됐고, 북미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도 대치 국면으로 얼어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한미 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면서 얼어붙은 상황을 흔들었다. 그는 다음 날 북미 대화 요청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응답이 있었다고 밝혔다. 대화 단계에도 "매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또 한발 더 나아가 19일 북한이 "57개의 매우 강력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면서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는 듯한 유화 자세를 보였다. 핵군축 협상을 겨냥하던 북한이 기대하던 발언이었다.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기시킨 북한은 "비핵화 논의는 더 이상 없다"며 핵보유국 인정을 국제사회에 요구해 오던 차였다.

트럼프는 김 위원장과 올해 안에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북미 대화를 빠른 시일 안에 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외신들도 트럼프가 올가을 김 위원장과 회담 재개를 위해 참모진을 재촉해 왔다며 다음 아시아 방문 때 그와의 대면회담 방안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11월 중국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유력한 계기로 지목됐다.

한미 연합훈련 대폭 축소와 북한 핵 보유에 대한 사실상 인정 등의 '당근'을 던진 트럼프에게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19일 "평할 가치도 없다"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며 정상 간 소통을 부인했다. 이어 20일에는 단거리탄도미사일(SRBM)을 무더기로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벌었다. 그러나 이런 반응들도 북한이 대면협상 재개에 앞서 몸값을 높이려는 조치들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0년 가을 손에 잡힐 듯 다가왔던 북미 수교협상. 이번 가을에는 다시 가시화될 수 있을까. 놓친 20여년의 세월 속에서 북한은 핵 역량을 키웠고 우크라이나전 파병, 북중러 연대 강화 등으로 동북아의 국제 구도도 달라졌다.

하와이를 지나 미국 본토에 더 근접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사거리도 시간은 북한 편이라는 우려를 키웠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가 ICBM으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지 않는다는 북한의 '모라토리엄 선언' 같은 선거용 성과에 집중할 가능성도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올 초부터 각종 통로로 북한의 닫힌 문을 두드려 올 정도로 대북 관계 정상화를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공을 들여왔다.

자칫 '평양의 맥도널드·코카콜라'를 위해서, 트럼프의 거래적 외교정책으로 인해 한국의 이익이 훼손되고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게 됐다. 북미 대화 재개가 급물살을 탈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 목소리가 실종되지 않도록 한미 조율과 국제공조를 어느 때보다 더 챙기고 이를 위해 더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동북아 구도의 급변과 균열 속에서 우리는 다시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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