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사이클 이제 3회 말…규제 풀어 제대로 지원해야" [fn 인사이트]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 가운데 핵심으로 꼽히는 AI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상은 이 간극을 메우겠다는 선언이다. 정부 스스로 '전격전'이라 부를 만큼 속도를 강조한다. 하지만 부지 선정과 환경영향평가, 토지 수용, 용수·전력 인프라로 이어지는 기존 절차대로라면 공장 하나 짓는 데 10년이 걸린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에 1년10개월 만에 공장을 세운 것과 비교하면 너무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이낸셜뉴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사진)는 31일 파이낸셜뉴스 노동일 주필과 만나 "반도체는 규모의 사업이 아니라 타이밍의 사업"이라며 "정부가 기업의 요구를 받아 인프라를 깔아주는 방식으로는 항상 늦는다. 인프라를 먼저 깔아놓고 기업이 시장에 맞춰 들어오게 하는 '선(先) 인프라' 패러다임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5년 삼성전자 기흥공장에 입사해 40년을 반도체와 함께한 그는 현재의 AI 사이클을 "야구로 치면 이제 3회 말, 4회 초"라고 진단했다.
이번 대담은 파이낸셜뉴스 유튜브 채널 'fn 인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도체는 사이클 산업이라 과잉 증설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역사적으로 반도체는 3~5년 주기로 업다운을 반복했다. 그러나 평균은 늘 우상향이었고, 이번 AI 사이클은 그 주기 자체가 대단히 길다. 적어도 2030년까지는 메모리 공급 부족이 이어진다고 본다. 과거 다운턴이 왔던 이유는 인터넷, 스마트폰처럼 시장이 성장하다가 포화됐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코로나 직전 이미 포화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AI는 새로운 시장이 계속 생겨난다. 다운턴이 안 올 수도 있다고까지 예상한다.
―9회 야구로 치면 지금은 몇 회인가.
▲3회 말이나 4회 초 정도다. 지금까지는 학습(러닝) 위주로 성장해왔고, 이제 막 추론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여기에 AI 에이전트, 온디바이스 AI가 붙는다. 2030년이 되면 피지컬 AI라는 친구가 나타난다. 로봇과 자율주행이 본격 가동되면 모든 로봇과 자동차에 AI 가속기가 장착되고, 그 안에 우리가 잘하는 메모리가 또 들어가야 한다. 2040년이면 AI 석학들이 말하는 범용인공지능(AGI) 시대다. 시장이 계속 새로 열리는데 경기가 끝날 리 없다.
―빅테크들이 신경망처리장치(NPU)나 주문형반도체(ASIC)로 자체 칩을 만드는 흐름은 우리에게 위협인가.
▲오히려 기회다. 구글이 엔비디아 생태계에서 벗어나려고 텐서처리장치(TPU)를 개발했지만 거기에도 HBM이 들어간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되든 TPU가 되든 ASIC이 되든 메모리 없이는 동작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객마다 요구가 달라지면서 메모리가 다양해진다. 메모리를 100% 활용하자는 컴퓨트익스프레스링크(CXL), 낸드플래시를 수직으로 쌓아 용량과 속도를 함께 잡는 고대역폭플래시(HBF) 같은 제품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에는 중앙처리장치(CPU)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끌면 메모리가 따라가는 구조였는데, 이제는 메모리가 앞에서 끌어주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추격이 무섭다는 얘기도 나온다.
▲명확히 말하면 기술 격차는 최소 3년 이상이고, HBM은 더 벌어져 있다. 오히려 격차가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창신메모리의 웨이퍼 투입량이 월 30만장 수준으로 적지 않지만(삼성전자 65만~70만장, SK하이닉스 50만장대, 마이크론 40만장) 대부분 레거시 범용 제품이다. 우리는 그 범용을 다 만들 케파(생산 역량)가 없다. 범용은 그쪽이 하고 우리는 고성능·고부가가치로 가는 역할 분담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다만 격차를 유지하려면 3D D램이 관건이다. 2차원 배열이 물리적 한계에 왔으니 아파트처럼 위로 세워야 하는데, 2029년부터는 적용해야 한다. 만약 창신메모리가 먼저 양산에 성공하면 메모리 시장의 판이 통째로 바뀔 수 있다. 케파 투자만큼이나 3D D램 연구개발(R&D) 투자를 절대 실기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메가클러스터 특별법은 실효성이 있다고 보나.
▲아주 큰 효과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반도체 단지를 계획하면 환경평가를 하고, 단지로 지정하고, 토지를 수용한다. 토지 수용에만 4~5년이 걸린다. 잘 살고 있는 분들에게 나가라는 것이니 어렵고, 알박기 문제도 있다. 그 다음에야 용수와 전력 같은 인프라를 구축한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하니 10년이 걸린다. 구마모토는 환경평가를 하면서 부지를 조성하고 동시에 인프라를 깔아 1년10개월 만에 끝냈다. 모든 절차를 병렬로, 원스톱으로 진행하자는 것이 특별법의 핵심이다.
―가장 큰 난관은 결국 용수와 전력인데.
▲그렇다. 용인은 한강 수계에서 물을 끌어와야 하고, 전력은 당진과 서남권, 동해안에서 가져와야 한다. 수도권 인근을 통과해야 하니 지중화가 필요하고 주민 수용성 문제가 불거진다. 서남권 팹(공장)은 상대적으로 낫다. 영산강 수계 댐 높이를 올려 60만t 규모의 용수를 준비하고 있고, 전력도 인근 원전을 쓰거나 만약에 대비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를 함께 짓는 방식이 가능하다. 태양광은 반도체에 적합하지 않다. 반도체는 1초만 정전이 생겨도 어마어마한 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고급 전력이 필수다. SK하이닉스 4개 팹을 10년 앞당겨 2032년까지, 삼성전자 6개 팹을 2040년까지 짓도록 하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인데 결국 인프라 확보가 관건이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국민들이 반도체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팹 하나를 지으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엔지니어가 2000~3000명 들어간다. 그런데 장비가 고장 나면 즉시 고쳐야 하니 소부장 업체 인력 3000명가량이 24시간 상주한다. 팹이 가는 곳에 생태계가 반드시 따라간다. 문제는 국내 업체의 체력이다. 네덜란드 ASML의 매출이 연간 53조원,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가 40조원, 램리서치가 26조원인데 우리나라 대표 장비업체를 다 합쳐도 7조원이다. 영업이익률도 국내는 8% 수준인데 해외는 25% 이상이다. 이익이 적으니 R&D 투자가 적고, 그러니 격차가 벌어진다.
―그럼에도 국산 소부장이 필요한 이유는.
▲국산화라는 구호의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리스크의 문제다. 삼전닉스는 소부장을 사서 칩을 만드는 회사다. 코로나 때, 또 일본 수출 규제 때 우리가 얼마나 혼이 났나. 반도체를 제조하는 나라라면 공급망 리스크를 최소화할 국내 생태계를 반드시 가져야 한다. 다만 세계 최고 제품을 못 만들면 삼전닉스가 쓸 이유가 없다. 그래서 획기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저는 삼성전자 1조원, SK하이닉스 1조원, 정부 1조원을 출연해 3조원 규모의 '반도체 소부장 생태계 혁신 사업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매년 세계 최고 수준을 목표로 10개 과제를 발굴해 4~5년씩 개발하는 것이다. 수요기업이 돈을 넣고 직접 끌어주면 절반은 성공한다. 10년이면 100개 중 50개다. 그것만으로도 공급망 안정에 엄청난 기여를 한다.
―인력은 충분한가. 서남권은 지역 대학으로 감당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턱없이 부족하다.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팹 1기당 필요한 인력이 6000명 수준인데, 용인 10기와 서남권 4기를 합치면 14기다. 단순 계산으로 8만4000명, 사실상 10만명이 필요하다. 서남권만 해도 2만5000명 이상이다. 지역 대학 몇 곳으로 될 일이 아니라 전국의 우수 인력이 공급돼야 한다. 정부가 10년간 반도체 인력 10만명을 양성하겠다고 한 것은 숫자를 잘 예측한, 단추를 잘 끼운 정책이다. 다만 AI 수요 때문에 그 시점을 더 앞당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숫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이제는 질이다. 반도체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요구하는 분야이고, 단순 노동 인력이 아니라 숙련된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이론만으로는 안 되고 실습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그런데 실제 R&D·제조 공정 장비를 갖춘 기관이 많지 않다. 12인치 웨이퍼 공정 팹을 보유한 곳을 중심으로 집중적인 실습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학생들의 관심은 뜨겁다. 우리 대학의 SK하이닉스 계약학과인 반도체공학과는 올해 입학 성적이 서울대 자연대나 지방 의대보다 높았다.
―지역별 역할 분담도 강조했는데.
▲업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첫째가 타이밍이고 둘째가 역할 분담이다. 수도권은 R&D와 시생산, 제조를 함께 하는 곳이고 서남권은 해외 팹과 마찬가지로 생산기지가 돼야 한다. 장비와 일부 소재는 유지보수 때문에 팹 옆에 붙어야 하지만, 세라믹 같은 무기 소재는 굳이 수도권에 있을 필요가 없다. 원가를 낮추려면 지방이 유리하다. 그래서 구미를 국가첨단 반도체 산단으로, 부산을 전력반도체 특화단지로 지정한 것이고, 패키지는 청주와 천안·온양으로 간다. 대만도 북부부터 남부까지 기능이 나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가 새겨야 할 것은.
▲반도체는 타이밍 사업이라는 것, 그 하나다. 대만은 2년 반, 3년이면 공장을 짓는데 우리는 왜 10년인가. 게다가 기업이 요구한 뒤에 짓기 시작하면 이미 늦는다. 정부가 할 일은 인프라를 먼저 구축해놓는 것이다. 인프라가 깔려 있으면 기업은 수요와 공급에 맞춰 투자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그러면 오히려 다운턴을 피할 수 있다. 서남권 팹 구상은 그런 점에서 발상의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인프라 구축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 그것이 특별법에 담겨야 할 진짜 내용이다.
■ 박재근 교수 약력 △삼성전자 반도체·소재기술그룹 부장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재료공학 박사 △부산시 경제혁신분야 정책고문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
[email protected] 한영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