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서는 혈당 조절, 뇌에서는 식욕 조절…인슐린의 '투잡'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인슐린은 도대체 뇌에서 어떤 일을 하는 걸까.
외곽 호르몬으로서의 인슐린은 혈중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넣어서 혈당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뇌에서는 아무리 인슐린을 쏟아 부어도 포도당 농도가 낮아지지 않는다. 또한 포도당을 뇌의 여러 신경세포와 핵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포도당 수송 단백질인 GLUT1과 GLUT3가 필요한데 이 과정에도 인슐린은 관여하지 않는다.
1979년 연구에서 실마리가 풀렸다. 개코 원숭이의 뇌실에 인슐린을 오랜 기간 직접 투여했더니 원숭이들의 식사량이 현저히 줄고 살이 쫙 빠진 것이다.
1991년 마못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마못은 겨울에는 동면을 하고 여름에는 왕성하게 먹는 습성을 가졌는데 여름 시즌에 이들의 뇌실에 인슐린을 장기간 투여하자 식사량이 줄고 살이 빠졌다.
이것은 인간에게 인슐린을 정맥주사했을 때에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결과다. 혈중 인슐린 농도는 인간의 식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1998년 호주 로열아델레이드 의대 연구진은 공복 상태인 젊은 남녀 14명에게 인슐린을 여러 용량으로 정맥주사한 후 30분 동안 뷔페 식당에서 먹고 싶은 만큼 먹게 하였다. 그 결과 이들이 먹은 양과 인슐린 용량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인슐린이 몸에서는 식욕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로지 혈당을 낮추는 기능만 하지만, 뇌에서는 혈당과 관련이 없고 식욕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만약 이 원리를 다이어트에 이용한다면 우리는 혈당이 내려가는 것에 대한 걱정 없이 식욕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실제로 2012년 독일 뤼벡 대학 신경내분비학과 연구팀은 식사를 마친 여성들의 비강에 인슐린을 주입하여 간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낮추고 간식의 섭취량을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 이때 비강으로 주입된 인슐린은 혈장 포도당 농도를 살짝 낮추기는 했지만 혈중 인슐린 수치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 방법이 실제로 다이어트에 적용될 수 있다면 저혈당을 조심하면서 살을 빼야 하는 당뇨 환자들에게 엄청난 희소식이다.
결국 인슐린이 뇌에서 하는 일은 식욕을 억제하는 것이다. 인슐린은 몸에서는 혈당이 너무 높지 않게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뇌에서는 지나치게 먹지 않도록 식욕을 누르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식욕에 작용하는 것은 인슐린뿐만이 아니다. 지방세포에서 분비되는 렙틴, 위에서 분비되는 그렐린도 뇌의 식욕 관리 시스템에 작용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강력한 식욕 자극 시스템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도파민 보상 시스템이다. 도파민 보상 시스템은 우리가 배고픔을 해결하고 포만감을 느낄 때 기쁨과 희열을 안겨준다. 이것이 학습 및 동기부여가 되어 배가 고플 때 열심히 먹을 것을 찾아다니게 한다.
그런데 2021년 독일 튀빙겐 의대 당뇨대사질환연구센터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인슐린이 도파민 보상 시스템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정상체중인 10명의 건강한 남성에게 비강을 통해 인슐린을 주입하고 뇌의 변화를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했다.
그 결과 선조체의 도파민 수치가 줄어들면서 뇌의 활성 회로가 바뀌는 것이 관찰되었다. 어쩌면 인슐린은 도파민 보상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식욕을 억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슐린이 뇌에서 렙틴과 그렐린에 상호작용하는 방식도 식욕에 영향을 끼친다. 렙틴은 지방세포, 그렐린은 위에서 분비되지만 표적세포는 똑같이 시상하부의 궁상핵이다. 렙틴은 포만감을 느낄 때 분비되어 궁상핵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러면 궁상핵이 여러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을 뇌 곳곳으로 보내 식욕을 억제하고 체온과 혈압을 올리고 세포대사율을 증가시킨다. 렙틴이 이렇게 그만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주기 때문에 적당히 먹으면 포만감을 느껴 숟가락을 내려놓을 수 있다.
반대로 그렐린은 위창자길에 음식이 하나도 없을 때 분비되어 궁상핵에 있는 수용체와 결합한다. 그러면 궁상핵은 여러 신호전달단백질과 호르몬을 분비하여 허기와 식욕을 느끼게 만든다. 동시에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세포대사율이 감소한다.
렙틴과 그렐린은 반대 기능을 하지만 서로 길항작용을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렙틴은 포만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호르몬이라기보다 지방의 양과 식욕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호르몬이다.
반면 그렐린은 배고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곧바로 사라지는 호르몬이다. 선천적으로 렙틴 유전자가 없는 사람은 포만감을 느끼지 못한다. 늘 허기에 시달리고 계속 먹어서 심각할 정도로 살이 찐다. 또한 렙틴이 없으면 시상하부에서 분비하는 생식샘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이 잘 분비되지 않아 성욕도 발달하지 못한다. 반면에 그렐린 유전자는 오베스타틴이라는 또 다른 호르몬과 함께 인코딩되어 있다.
신기하게도 그렐린이 배고픔을 호소하며 먹을 것을 원할 때 오베스타틴은 덜 먹을 준비를 한다. 음식이 소화되는 속도와 위장을 비우는 속도를 지연시켜서 그렐린 분비를 멈추게 한다. 선천적으로 그렐린 유전자가 없으면 키가 매우 크고 비만이 된다. 이 호르몬이 시상하부에서 성장호르몬방출호르몬의 분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