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팔미환은 의원에게도 신양(腎陽)을 강하게 명약이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한 의원이 있었다. 그 의원은 타고난 체질이 본래 허약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신허(腎虛)의 병이 있어 귀가 울리고 허리가 아팠으며, 다리가 약하고 무릎이 차가웠다. 그리고 손바닥이나 발바닥에 번열이 있었고, 잠잘 때 땀을 흘렸으며 담이 끓고 기침을 하였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할 때면 상을 미처 치우기도 전에 곧 쓰러지듯 누워 혼곤하게 잠들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게을렀다. 또한 체증(滯症)이 매우 심해 고통스러웠다.
의원은 생각하기에 '이는 기(氣)가 약하고 정(精)이 부족한 소치로다.'라고 여겼다. 그래서 신정(腎精)을 보하고자 대보음환(大補陰丸)과 청상보하환(淸上補下丸) 같은 약을 복용하였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의원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대개 이는 비(脾)와 신(腎)이 모두 허한 증상이었는데, 한량한 약과 담을 치료하는 약은 표(標)만 치료하고 근본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육미지황환(六味地黃丸)을 복용하여 오장(五藏)이 함께 손상된 것을 보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여겼다.
숙지황은 위기를 약하게 하고 체기가 생길까 염려되어 생강으로 법제하여 사용하였다. 이렇게 반 제(半劑)쯤 복용하자 여러 증상이 눈에 띄게 절반 이상 줄었고, 체증은 갑자기 없어졌다.
의원은 숙지황을 복용하면서도 체기가 나타나지 않아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그래서 이후 신허(腎虛)하면서 음식이 체하는 환자들이 있을 때마다 곧 이 처방을 권하였다. 희한하게도 사람들은 소화시키지 못할까 걱정하고 의심했는데, 도리어 대변을 순조롭게 하고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문제가 없었다.
의원은 '황산곡(黃山谷)이 토사자(兎絲子)를 복용하였더니 음식을 소화시키는 효과가 마치 뜨거운 물을 눈 위에 붓는 것과 같았다.'라고 한 구절이 떠올랐다. 신(腎)을 보하니 더불어 소화가 잘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경험은 자신도 그렇고 환자들도 신허증에 의한 증상들이었고, 숙지황이 잘 맞는 체질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의원의 원래 걱정대로 위가 약한 체질은 숙지황을 복용하면 반드시 체기가 생기고 설사를 한다. 수치를 하면 덜하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다.
의원은 그 뒤로 때때로 육미환을 복용하면서 자하거(紫河車) 두 구(具)를 넣고, 맥문동, 오미자, 지모, 황백 같은 약을 더하여 모두 네다섯 제 정도 복용하였다. 비록 특별히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고 느끼지는 못했으나, 대체로 음식을 잘 먹고 몸이 건강하여 다른 병이 없었다.
그러나 약을 끊고 몇 년이 지나면 여러 증상이 다시 심해지는 듯하였고, 특히 명치가 답답하고 체증이 나타나는 것이 몹시 괴로웠다. 그래서 떡이나 꿀로 만든 과자는 전혀 입에 대지 못하였다.
보통 이런 증상이면 위장을 돌보는 처방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다시 앞선 숙지황이 들어간 처방을 복용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증상이 멎었다. 이 처방을 복용하면서 소변색도 맑아졌다. 의원의 평소 소변의 색은 짙은 붉은색이었고, 소변을 본 직후에는 곧 혼탁해져 누런 흙탕물과 같았다. 그런데 처방을 복용하면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소변은 맑아지고 찌꺼기가 아래에 가라앉았다.
이렇게 시간이 흘렀다. 의원은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입술이 마르고 타는 듯한 증상이 어김없이 생겼다. 그리고 평소 사계절 내내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열이 있었다.
어느 날 친구 의원이 "자네는 매년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을 하는데, 원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내 증상은 신수(腎水)가 부족한 것이 원인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소변을 볼 때 힘이 없고 소변 줄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면 혹시 신수(腎水)보다는 이와 함께 신양(腎陽) 부족이 원인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의원은 "그러고 보니 나는 때로 아랫배와 음경 속이 은은하게 마비된 듯한 느낌이 있는 것을 보면 콩팥의 진양(眞陽)이 허하여 생긴 것이 분명하네. 그래서 정력도 약해져 있는 것 같네."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그럼 팔미환(八味丸)을 복용해 보는 것이 어떤가? 이제 자네 나이도 60세면 신양(腎陽)이 부족해졌을 것이고 여기에는 팔미환보다 좋은 약은 없을 것이네."라고 했다.
의원은 친구 의원의 말대로 팔미지황환 본 처방에 따라 동변(童便)에 담가 법제한 큰 부자(附子)와 매운 육계(肉桂)를 각각 한 냥씩 넣어 환약을 만들어 복용하였다. 그러자 소변 색이 옅은 황색으로 변하였고, 소변이 힘 있게 흘러나오는 소리가 뚜렷하게 생겼다. 여러 증상도 줄어드는 듯하였으며 신기(腎氣)가 크게 좋아져 젊었을 때와 비교해도 못하지 않을 정도였다.
의원은 친구 의원에게 "팔미환으로 이렇게 좋아지는 것을 보니 지금껏 내 증상은 신양(腎陽)이 허(虛)하였기 때문이었네. 고맙네."라고 했다. 친구 의원은 "자네의 증상은 겉으로는 비록 열증처럼 보였지만 신양이 허했기 때문에 계지와 부자 같은 뜨거운 약을 복용하니 도리어 소변이 맑아질 수 있었던 것이네."라고 했다.
의원은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팔미환을 복용하면 그 증상은 다시 사라졌다. 의원에게 팔미환은 환자를 살리는 처방이 아니라 자신을 살리는 기사회생의 처방이 되었다.
팔미환(八味丸)은 흔히 신기환(腎氣丸) 또는 금궤신기환(金匱腎氣丸)으로도 불린다. 신장의 음과 양이 모두 허해 허리와 무릎이 시리고 약하며, 손발이 차고 기력이 떨어지거나 소변이 잦고 시원하지 않은 증상 등에 사용한다. 특히 노인 남성의 몸이 허하고 냉하면서 배뇨기능이 약해진 경우 신양(腎陽)을 북돋우고 신기(腎氣)를 회복시키는 대표적인 처방이다.
<역시만필> 余稟賦素弱, 少時有腎虛病, 耳鳴腰痛, 脚弱膝冷, 五心虛煩, 寢汗痰嗽, 陰弱精乏, 每朝臨食, 未及撤床, 輒頹臥昏睡, 懶於動作, 且滯症甚苦, 服大補陰丸ㆍ淸上補下丸之屬, 少無寸效, 盖脾腎俱虛之症, 寒凉之劑ㆍ治痰之藥, 治標而不理本故也, 欲服六味地黃丸, 補五藏之齊損, 治血虛發熱, 水泛爲痰, 而恐其地黃之泥滯, 薑製用之, 服至半劑, 諸症顯減太半, 滯症頓無, 余甚奇之, 每逢腎虛食滯者, 輒勸用之, 則頗疑助滯, 反能順下消食, 此則黃山谷之服兎絲子, 能爲消食, 如湯沃雪者, 信不誣矣. 其後, 往往服六味丸, 入紫河車二具, 麥門冬ㆍ五味子ㆍ知母ㆍ黃栢之屬, 合四五劑, 則雖不知有奇功, 而盖善食体健, 無他疾, 而停藥數年, 則諸症似劇, 痞滯尤苦, 餠物蜜果, 切不近口, 而又服右藥, 則未久必止, 此腎氣怯弱, 眞元衰削, 飮食不化, 譬之鼎釜之米, 無火不熟也, 平日, 小便色深赤, 旋卽渾濁, 如黃泥水, 移時溺澄渣沉, 且每冬末, 唇焦之症, 如期而作, 通四時, 手足掌熱, 此盖腎屬水旺冬, 而虛未能旺, 故脾土來侮, 而津枯唇焦也, 其手足掌熱者, 此腎經眞陰虛而發熱也, 至於臨溺無力無聲, 或有小腹及陰莖中, 隱隱若麻痺狀, 此腎經眞陽虛而作麻者也. 近六旬時, 始服八味丸, 依本方, 入童便泡製大附子, 刮去麤皮, 辣肉桂各一兩服之, 則便色淡黃, 顯有溺注聲, 諸症似減, 腎氣頗勝, 不減於少時, 此腎之陰陽俱虛, 故外雖似熱, 服此桂附熱劑, 而反能淸便者, 豈異於虛瘧人發熱, 欲坐井中, 尿色如血者, 服大劑參芪, 而後能離却者乎, 只用一劑, 而于今三四年, 未能更服, 諸症漸復, 良可歎也. (나는 타고난 체질이 본래 허약하였다. 젊었을 때부터 신허의 병이 있어 귀가 울리고 허리가 아팠으며, 다리가 약하고 무릎이 차가웠다. 오심번열이 있었고, 잠잘 때 땀을 흘렸으며 담이 끓고 기침을 하였다. 음기가 약하고 정이 부족하였다. 매일 아침 식사를 할 때면 상을 미처 치우기도 전에 곧 쓰러지듯 누워 혼곤하게 잠들었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게을렀다. 또한 체증이 매우 심해 고통스러웠다. 대보음환과 청상보하환 같은 약을 복용하였으나 조금도 효과가 없었다. 대개 이는 비와 신이 모두 허한 증상이었는데, 한량한 약과 담을 치료하는 약은 표만 치료하고 근본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미지황환을 복용하여 오장이 함께 손상된 것을 보하고, 혈허로 열이 나는 것과 수기가 넘쳐 담이 되는 것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지황이 점니하여 체하게 할까 염려되어 생강으로 법제하여 사용하였다. 반 제쯤 복용하자 여러 증상이 눈에 띄게 절반 이상 줄었고, 체증은 갑자기 없어졌다. 나는 이를 매우 기이하게 여겼다. 이후 신허하면서 음식이 체하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곧 이 처방을 권하였다. 사람들은 오히려 체기를 더할까 의심하였으나, 도리어 대변을 순조롭게 하고 음식을 소화시킬 수 있었다. 이는 황산곡이 토사자를 복용하였더니 음식을 소화시키는 효과가 마치 뜨거운 물을 눈 위에 붓는 것과 같았다고 한 것이 참으로 거짓이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때때로 육미환을 복용하면서 자하거 두 구를 넣고, 맥문동·오미자·지모·황백 같은 약을 더하여 모두 네다섯 제 정도 복용하였다. 비록 특별히 기이한 효험이 있었다고 느끼지는 못했으나, 대체로 음식을 잘 먹고 몸이 건강하여 다른 병이 없었다. 그러나 약을 끊고 몇 년이 지나면 여러 증상이 다시 심해지는 듯하였고, 특히 비만과 체증이 몹시 괴로웠다. 떡이나 꿀로 만든 과자는 전혀 입에 대지 못하였다. 다시 앞의 약을 복용하면 오래지 않아 반드시 증상이 멎었다. 이는 신기가 겁약하고 진원이 쇠약해져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솥 속의 쌀이 불이 없으면 익지 않는 것과 같다. 평소 소변의 색은 짙은 붉은색이었고, 소변을 본 직후에는 곧 혼탁해져 누런 흙탕물과 같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소변은 맑아지고 찌꺼기가 아래에 가라앉았다. 또 매년 겨울이 끝날 무렵이면 입술이 마르고 타는 듯한 증상이 어김없이 생겼다. 사계절 내내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열이 있었다. 이는 대개 신은 수에 속하여 겨울에 왕성해야 하는데, 허하여 왕성하지 못하므로 비토가 도리어 업신여겨 진액이 마르고 입술이 타는 것이었다. 손바닥과 발바닥에 열이 나는 것은 신경의 진음이 허하여 열이 발생한 것이다. 소변을 볼 때 힘이 없고 소변 줄기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데 이르렀고, 때로는 아랫배와 음경 속이 은은하게 마비된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는 신경의 진양이 허하여 마비가 생긴 것이었다. 나이가 거의 육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팔미환을 복용하였다. 본래 처방대로 동변에 담가 법제한 큰 부자의 거친 껍질을 긁어 제거하여 쓰고, 매운 육계를 각각 한 냥씩 넣어 복용하였다. 그러자 소변 색이 옅은 황색으로 변하였고, 소변이 힘 있게 흘러나오는 소리가 뚜렷하게 생겼다. 여러 증상도 줄어드는 듯하였으며 신기가 크게 좋아져 젊었을 때와 비교해도 못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는 신의 음과 양이 모두 허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비록 열증처럼 보였지만 계지와 부자 같은 뜨거운 약을 복용하고도 도리어 소변이 맑아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어찌 허학을 앓는 사람이 열이 심하여 우물 속에 들어가 앉고 싶어 하고, 소변 색이 피와 같은 경우에 인삼과 황기를 대량으로 복용한 뒤에야 그런 증상에서 벗어나는 것과 다르겠는가. 다만 한 제만 복용하였을 뿐이고, 지금까지 삼사 년 동안 다시 복용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증상이 점차 다시 나타나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