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넘보지 못하는 '손기술'로…제본·금속공예 견습에 몰린 英 청년들
회계사·개발자 등 신입 화이트칼라 채용 위축 우려에 전통 기술 재조명
英 금속공예 견습 경쟁률 80대 1…수백년 된 제본 기술에도 20대 유입
[파이낸셜뉴스] 인공지능(AI)이 회계사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변호사 등 화이트칼라의 업무를 빠르게 대신하면서 취업시장에 뛰어든 젊은층이 수백년된 '손기술'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컴퓨터 앞에 앉는 대신 손으로 책을 묶고 금속을 두드리거나 무대 소품을 만드는 등 수백년 된 기술을 배우려는 것이다.
사람의 판단력과 손재주, 오랜 경험이 필요해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일명 'AI 프루프(AI-proof)' 직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은 '젊은 노동자들이 디지털 세계를 버리고 전통 공예로 향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최근 제본과 금속공예 등 전통 수공업 견습 과정에 젊은 지원자가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스물 일곱살의 에린 로울리(27)는 자신의 전공인 정치학과는 다른 길을 선택했다. 현재 영국 슈롭셔의 러들로 북바인더스에서 2년차 제본 견습생으로 일하고 있다.
작업 방식은 수백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제작된 압착기와 금박 인쇄기, 풀칠용 붓 등을 이용해 책 한 권을 대부분 손으로 완성한다.
로울리는 "화면을 너무 오래 바라보는 생활이 좋지 않았다. 항상 좀 더 실체가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사람이 직접 만든 것에는 본질적으로 더 가치 있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전통 기술은 AI 덕분에 새로운 인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영국의 전통 제본 기술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1950~70년대를 거치면서 관련 교육이 줄어들었고 1980년대 초 정식 견습제도마저 대부분 사라졌다.
러들로 북바인더스 최고경영자(CEO)이자 4대째 제본업을 이어온 폴 키드슨은 현재 영국에서 수작업 제본을 하는 업체가 50곳도 남지 않은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최근 젊은층이 유입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키드슨은 "요즘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데서 만족감을 느끼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금속공예를 비롯해 오랜 숙련이 필요한 직종에서도 젊은층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예술 금속공예 전문 디자인업체 콕스 런던은 지난해 견습 프로그램을 도입했고 올해 견습생 2명을 선발하는 데 160명이 넘게 지원했다. 경쟁률만 80대 1을 넘는다.
콕스 런던 공동창업자 니콜라 콕스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고 재료를 직접 다루면서 그것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며 "손으로 만든 예술 작품에는 AI가 따라잡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견습생 럭키 에머슨은 "AI가 창작 분야를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면서 "사람이 재료를 만지고 물건을 완성하는 물리적인 과정은 대체하기 어렵다"고 봤다.
런던 국립극장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곳은 IT부터 전통 가발 제작, 의상과 무대 소품, 금속공예까지 다양한 분야의 견습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일부 전통 기술은 숙련 인력의 고령화로 명맥이 끊길 위기를 맞았다. 현재 국립극장에서 일하는 금속공예 기술자는 모두 50대 이상이며 전통 가발 제작을 위한 숙련자는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소품 제작 견습생 사라 레이-돕슨(27)은 "지난 2년간 AI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대부분 재료를 다루고 제작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기는 폭발적이다. 과거에는 견습직 한 자리에 100명 정도 지원하면 인기 있는 자리로 평가됐지만 최근에는 한 자리에 무려 728명이 몰렸다.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다. AI를 피해 손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은 AI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