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근경색 환자, 불필요한 약 하나 덜었다"…환자 부담 던 국제 공동연구 [헬스체크]
[파이낸셜뉴스] 심근경색 환자 6238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프랑스 공동 연구에서 베타차단제 복용을 중단한 그룹과 지속한 그룹의 3년 후 주요 심혈관 사건 발생률이 17.2%와 15.9%로 통계적으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타차단제는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고 혈압을 낮춰 심근경색 환자의 심장 부담을 덜어주는 약이다. 그동안 심근경색 환자는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한주용·최기홍 교수, 임상역학연구센터 강단비 교수 연구팀은 유럽 최대 규모 병원 그룹인 파리공공의료원(AP-HP) 산하 소르본대학 피티에-살페트리에르 병원 조안 실뱅 교수팀과 함께 이 같은 연구 결과를 세계 최고 권위 학술지 란셋(IF=109) 최신호에 발표했다.
파리공공의료원은 소르본대학 등 6개 대학병원 그룹과 협력하며 38개 병원을 둔 유럽 최대 규모 병원 네트워크다.
연구팀은 한국(SMART-DECISION)과 프랑스(ABYSS)에서 각각 진행된 무작위 연구를 통합 분석했다. 그 결과 심근경색 치료 후 안정기에 접어든 환자는 베타차단제를 중단하더라도 복용을 지속한 환자보다 건강상 문제를 더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기존 연구들은 대규모였음에도 인종과 지역, 분석 방법의 한계로 세계 표준이 되기에는 한 걸음씩 부족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프랑스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 이번 결과를 도출했다.
연구팀은 심근경색 발생 6개월이 지났고 베타차단제를 복용할 다른 이유가 없거나 심부전 등 심장 기능 문제가 없는 환자 6238명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을 치료 중단 그룹(3092명)과 치료 지속 그룹(3146명)으로 나눠 3년간 추적 관찰했다.
일차 평가 지표(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 심근경색, 뇌졸중 또는 심혈관 관련 입원)에 해당하는 사례는 치료 중단 그룹에서 17.2%, 치료 지속 그룹에서 15.9% 발생해 통계적으로 동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차 평가 지표(모든 원인으로 인한 사망, 심근경색 또는 심부전으로 인한 입원)에서도 치료 중단 그룹 6.5%, 치료 지속 그룹 6.4%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제1저자인 최기홍 교수는 "과거에는 심근경색 치료가 쉽지 않았던 탓에 베타차단제를 평생 복용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최근에는 스텐트 등 치료 방법이 개선되면서 심근경색 후 심장 기능이 회복해 안정적인 환자가 늘었다. 이런 환자에게 불필요한 약을 중단시킬 수 있으면 그만큼 환자 부담도 덜 수 있다"고 연구 의미를 강조했다.
삼성서울병원 연구팀은 지난 3월에도 의학 분야 양대 학술지인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NEJM)'에 심근경색 후 심장 기능이 안정적일 때 베타차단제 복용을 중단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 학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당시 연구는 국내 25개 병원이 참여한 무작위 임상 결과에 따른 것으로, 수십 년째 관행으로 굳어졌던 베타차단제 처방 기준을 재검토하자는 논의를 학계에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3월 열린 미국심장학회(ACC) 연례학술대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임상연구'로 선정된 것도 이 때문이다.
스마트 디시전 연구는 한주용 교수가 2021년 보건복지부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단'의 국가지원 과제 선정 이후, 5년간 심근경색연구회와 협업해 진행한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이다.
이번에 프랑스와 합작한 새 연구로 베타차단제 복용과 관련한 세계 심근경색 치료 가이드라인 변경 가능성도 한층 더 커졌다. 미국과 유럽 등 서구권 위주로 진행된 연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존 가이드라인을 한국인 의학자 주도로 새롭게 이정표를 세우는 셈이어서 의미가 크다.
유럽심장학회 역시 지난 8월 30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연례 학술대회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이번 공동 연구를 가장 주목받는 임상연구로 꼽았다.
한주용 교수는 "이번 대규모 국제 공동 연구를 통해 심근경색 후 환자가 안정적이라면 베타차단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는 치료 표준을 만드는 데 한 발 더 다가섰다"며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도 관심을 가져주어 기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에 따라 꼭 필요한 환자에게만 약을 쓰는 문화를 만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