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12%라길래 냉큼 가입했는데" 6만원 이자에도 사람들 몰리는 이유
[파이낸셜뉴스] "수익률만 보면 주식이랑 비교할 수 없죠. 하지만 대신 마이너스는 안 나니까요."
직장인 강선화(37·가명)씨는 최근 한 은행의 고금리 적금 특판 상품에 가입했다. "최고금리를 받기 위해 신규 카드를 발급받는 등 우대 조건을 채워야 하는 점이 번거로웠다"면서도 "주식 투자를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비교하면 감당할 만하다"는 게 강씨의 설명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기본금리 2~3%에 거래 실적에 따른 우대금리를 얹는 방식의 특판 적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KB카드쓰담적금'(최고 12%), 신한은행의 '신한 적금 9단'(최고 9%), 우리은행의 '우리의 소원 적금'(최고 8.29%), 하나은행의 '오늘부터, 하나 적금'(최고 7.7%)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품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뚜렷한 자금 흐름의 변화가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 집계에 따르면 예금은행의 원화 정기예금 잔액은 올해 1월 말 1095조2512억원에서 6월 말 1132조5026억원으로 37조 넘게 불어났다. 이달 들어서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정기적금 잔액은 같은 기간 63조4640억원에서 62조6589억원으로 오히려 8000억원 넘게 줄었다. 목돈을 한 번에 맡기는 예금에는 자금이 밀려드는데, 매달 조금씩 넣어야 하는 적금은 외면받고 있는 셈이다.
은행 입장에서 적금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지는 자금 조달 수단이다. 그러나 적금 가입이 급여이체, 카드 결제, 자동이체 같은 다른 거래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고금리 특판을 통해 고객 록인(Lock-in)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은행들이 예금금리 인상과 함께 고금리를 내건 특판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이유다.
KB국민은행이 최근 내놓은 'KB카드쓰담적금'의 표시 금리는 최고 연 12%다. 시중은행 정기적금 평균 금리가 3~4%대인 걸 감안하면 3배 가까운 숫자다. 그런데 이 상품에 매달 최대 한도인 30만원씩 6개월간 납입해 우대조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해도, 만기에 손에 쥐는 이자는 세전 약 6만3000원, 세후로는 5만원대에 그친다.
핵심은 적금의 이자 계산 구조에 있다. 예금은 목돈을 한 번에 맡기기 때문에 원금 전체에 표시금리가 그대로 적용되지만, 적금은 매달 나눠 넣은 돈마다 이자가 붙는 기간이 다르다. 첫 달에 넣은 돈은 만기까지 전체 기간 이자가 붙지만, 마지막 달에 넣은 돈은 단 한 달치 이자만 받는다. 이 때문에 통상 적금의 '체감 금리'는 표시금리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
더구나 '최고금리'는 모든 우대조건을 100% 충족했을 때만 적용되는 상한선이다. KB국민은행은 최근 6개월간 카드 이용 실적이 없는 고객이 새 카드를 발급받아 일정 금액을 써야 우대금리 6%포인트(p)를 주고, 계좌 평균잔액·급여 첫 거래 조건을 채우면 각각 2%p씩을 추가로 준다.
신한은행 역시 최근 6개월간 예·적금이나 주택청약을 보유하지 않았거나 신한카드를 일정 기간 사용해야 최고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조건을 하나라도 놓치면 기본금리(2~3%대)만 적용된다. 심지어 전북은행의 'JB 슈퍼씨드 적금'처럼 추첨에 당첨돼야 우대금리가 붙는 상품도 있다.
금융위원회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특판 예·적금 가입 시 우대금리 지급조건을 확인하지 않고 최고금리만 보고 가입했다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분쟁으로 이어지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소비자들에게 상품설명서의 우대조건을 꼼꼼히 따져볼 것을 당부했다.
이자 액수만 놓고 보면 가성비가 떨어지는데도 특판 적금은 출시와 동시에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신한은행의 '신한 적금 9단'은 출시 2주 만에 20만좌 한도 중 10만좌가 팔렸고, NH농협은행의 'NH농심천심 적금'은 출시 이틀 만에 1만좌 한도가 소진됐다. 여기에는 단순한 이자 수익을 넘어서는 몇 가지 구조적 요인이 작동한다.
대표적인 것이 증시 변동성에 지친 안전자산 회귀 심리다. 상반기 반도체·레버리지 ETF 랠리를 타고 증시로 흘러갔던 자금이, 최근 변동성이 커지자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는 흐름이 뚜렷하다. 실제로 증시 대기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이 100조원 아래로 줄어드는 동안 5대 은행 정기예금은 9영업일 만에 14조원 넘게 불어난 사례도 있었다.
손실 없이 100% 이자 보장이라는 무위험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도 있다. 세후 5만원이라는 액수 자체보다, 원금 손실 위험이 전혀 없다는 확실성이 소비자에게는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롤러코스터 같은 증시에 지친 투자자일수록 '얼마를 버느냐'보다 '잃지 않는다'는 확신에 더 크게 반응할 수 있다.
짧은 만기도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판 상품 대부분이 6개월~1년의 단기 만기인데, 목돈을 오래 묶어두기 부담스러운 이들에게는 반가운 조건이다. 투자 대기자금 성격의 돈을 굴리기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금리 특판 적금은 목돈을 불리는 수단으로는 한계가 뚜렷하지만, 증시 변동성이 큰 시기에 여윳돈을 안전하게 굴리며 저축 습관을 유지하는 재테크 방법으로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email protected] 김희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