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실외기 화재 부르는 '불법 혼합냉매'…"너무 싸면 의심"
소방청 냉매 추적 화재 36건 추적해 원인 규명
R-22로 속여 판 혼합냉매서 자연발화 물질 생성
냉매 추정 화재 2022년 1건→올해 7월까지 14건
철거·충전 중 사고 47%…작동 중 화재도 13건
정부, 해외직구·온라인 판매 차단 방안 검토
[파이낸셜뉴스] 불연성 냉매인 'R-22'로 둔갑해 온라인 등에서 판매된 불법 혼합냉매가 에어컨 실외기 내부에서 자연발화성 위험물질을 만들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이 최근 5년간 발생한 관련 화재를 추적한 결과 36건이 확인됐으며, 지난해 13건에 이어 올해는 7월까지만 14건이 발생했다. 정부는 해외 직구와 온라인 판매를 통한 불법 냉매 유통을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소방청은 2일 국립소방연구원과 서울·경기 화재감정기관, 경남소방본부가 공동 조사를 벌인 결과 불법 혼합냉매가 실외기 내부에서 자연발화성 물질인 '트리메틸알루미늄'을 생성하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제가 된 제품은 구형 에어컨 등에 쓰이는 R-22 냉매로 표시돼 있지만 실제로는 R-40(클로로메테인)을 섞은 불법 혼합냉매다.
R-22는 불연성 물질이지만 오존층 파괴 문제로 2023년 이후 생산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크게 올랐다.
이를 틈타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저가 혼합냉매가 온라인 쇼핑몰과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는 게 소방청 설명이다.
R-40은 높은 독성과 가연성 때문에 냉매로 사용되지 않는 물질이다. 하지만 불법 판매업자들이 이를 R-22 용기에 섞은 뒤 제품명은 R-22로 표시해 판매하면서 소비자가 육안으로 정품 여부를 구별하기 어렵다.
소방청 조사 결과 불법 혼합냉매에 포함된 클로로메테인은 에어컨 실외기 내부의 회전자나 배관 등 알루미늄 부품과 반응해 트리메틸알루미늄을 생성했다.
트리메틸알루미늄은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제3류 위험물인 자연발화성·금수성 물질이다. 공기 중에 노출되면 스스로 불이 붙을 수 있고, 물과 접촉하면 격렬하게 반응하면서 가연성 물질을 만들어낸다.
위험한 점은 냉매를 처음 주입했을 때에는 에어컨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어컨을 가동하는 동안 내부에서 위험물질이 서서히 만들어진 뒤 철거나 냉매 재충전을 위해 배관을 절단할 때 공기나 수분과 접촉하면서 발화할 수 있다는 게 소방청의 분석이다.
최근 5년간 에어컨 냉매가 원인으로 의심되는 화재는 모두 36건으로 집계됐다. 2022년 1건, 2023년 2건, 2024년 6건에서 지난해 13건으로 늘었고 올해는 7월까지 이미 14건이 발생했다. 애초 다른 원인으로 분류됐다가 냉매 관련 화재로 다시 검토된 사례도 11건이었다.
화재가 가장 많이 발생한 상황은 에어컨 철거·냉매 충전 과정으로 17건, 전체의 47.2%를 차지했다. 에어컨 작동 중 발생한 화재가 13건(36.1%)으로 뒤를 이었고, 미가동 상태 4건(11.1%), 원인 미상 2건(5.6%)이었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지난 7월24일 경남 진주의 한 주택 화재 현장에서 증거물을 수집하던 화재조사관은 실외기 냉매 인입부에서 불꽃이 튀면서 양손에 2도 화상을 입었다. 지난 6월 인천 강화에서는 실외기에 가스를 주입하던 70대 남성이 폭발로 크게 다쳐 닥터헬기로 이송됐다. 올해 6월 목포와 지난해 4월 서울에서도 냉매와 관련된 발화·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소방청은 지난 8월 14일 기후에너지환경부, 산업통상부, 한국소비자원 등과 첫 관계기관 회의를 열었다. 같은 달 25일에는 한국가스안전공사와 서울·경기 화재감정기관, 경남소방본부 등까지 참여해 해외 직구와 온라인 판매 차단 대책을 논의했다.
정부는 앞으로 불법 혼합냉매의 수입·온라인 유통을 차단하고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방침이다.
소방청은 정식 통관과 품질 검사를 거친 냉매까지 위험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만 시세보다 지나치게 저렴하거나 품질 인증마크가 없는 냉매는 피하고, 정식 등록업체를 통해 에어컨 냉매 충전과 수리를 받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영국 소방청 119대응국장은 "불법 혼합냉매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사용자가 위험을 인지하기 어렵다"며 "관계 부처와 함께 화재 발생 현황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추가로 확인되는 사항은 신속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이보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