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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JOB)스러운 기자들] "잔 하나에 20만원이라고요?"…금양 인터내셔날 와인샵, 소믈리에 생존기

박경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2시간 소믈리에 벼락치기 교육에 머리가 지끈
수백만원 호가하는 와인 포장하며 손이 덜덜
와인을 파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따르는 직업

지난달 14일 박경호 기자가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금양인터내셔날 와인컨시어지'에서 와인을 따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지난달 14일 박경호 기자가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금양인터내셔날 와인컨시어지'에서 와인을 따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박경호 기자가 직업체험의 일환으로 시음 와인을 따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박경호 기자가 직업체험의 일환으로 시음 와인을 따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뷔페를 즐기는 손님께는 범용적인 샴페인이나 샤르도네를 추천해 드리고, 스테이크에는 카베르네 소비뇽과 시라 품종을, 일식에는 깔끔한 소비뇽 블랑과 드라이 리슬링을 매치해 주세요."
황금연휴를 맞아 호캉스 인파로 북적이던 지난달 14일. 기자는 직업 체험 코너인 '잡(JOB)스러운 기자들'의 일환으로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 위치한 '금양인터내셔날 와인컨시어지'의 일일 소믈리에로 변신했다. 평소 와인을 즐겨 마시는 터라 스스로 와인의 '이응(ㅇ)' 자 정도는 안다고 자부했지만, 유니폼을 입고 마주한 소믈리에의 세계는 상상 이상으로 깊고 심오했다.

소믈리에는 단순히 병마개를 따고 술을 따르는 직업이 아니다. 포도의 품종과 등급, 맛은 기본이고 와인의 생산지, 더 나아가 그 한 병에 담긴 역사와 스토리까지 꿰고 있어야 고객에게 완벽한 페어링을 선사할 수 있다.

이날 기자의 사수로 나선 지현주 소믈리에는 "단순히 비싸고 유명한 와인을 권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선호도와 입맛, 와인 즐기는 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와인을 추천해주는 것이 소믈리에의 핵심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실전에 앞서 혹독한 속성 과외가 시작됐다.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레드, 화이트 와인과 샴페인의 차이부터 단맛과 떫은맛, 바디감을 표현하는 전문 용어, 그리고 음식과의 페어링 공식까지 쉴 새 없이 머릿속에 구겨 넣어야 했다. "고기엔 레드, 생선엔 화이트" 수준의 얄팍한 상식만 믿고 왔던 기자의 뇌에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리슬링' 같은 단어들이 쏟아지자 금세 머리에서 쥐가 날 것 같았다.

박경호 기자가 와인의 먼지를 닦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박경호 기자가 와인의 먼지를 닦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 화려함 뒤에 숨겨진 노력…수백만 원 와인 포장하며 '손이 덜덜'
오후가 되자 연휴를 즐기려는 투숙객들이 와인을 고르기 위해 와인컨시어지 워커힐점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전문 소믈리에들이 손님들을 응대하는 사이 기자는 와인 포장 업무에 투입됐다. 문제는 단가였다. 적게는 수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와인 병을 다루다 보니 완충재를 감고 쇼핑백에 넣는 손이 덜덜 떨렸다. '혹시라도 떨어뜨려 깨지면 큰일난다'는 생각에 조심 또 조심하여 포장을 했다.

포장을 마친 뒤, 본격적인 매장 관리 업무가 이어졌다. 우아해 보이는 소믈리에의 겉모습 뒤에는 와인 컨시어지 관리를 위한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있었다. 수십, 수백만원짜리 고급 와인병에 앉은 먼지를 부드러운 천으로 일일이 닦아내야 했고, 특히 한 잔에 20만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 와인잔을 세척하고 광을 낼 때는 행여나 얇은 유리가 깨질까 집중해야 했다.

또한 계절에 맞춰 새로 입고된 와인이 가장 잘 돋보일 수 있도록 무거운 와인 박스를 나르고 진열 위치를 끊임없이 바꾸는 작업도 이어졌다. 화려한 조명 아래 정갈하게 놓인 와인들은 결국 누군가의 땀방울로 만들어진 장식이었다.

박경호 기자 손님이 주문한 와인을 포장재에 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박경호 기자 손님이 주문한 와인을 포장재에 담고 있다. 사진=박경호 기자

■ 와인을 파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따르는 직업
마지막으로 기자가 맡은 업무는 디스펜서(와인 추출기)를 활용한 시음 서비스 제공이었다. 손님이 시음을 원할 때 정해진 용량만큼 깔끔하게 잔에 따라내는 일이었다.

지 소믈리에는 잔을 기울이는 기자의 손동작을 교정해주며 "손님이 와인의 풍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쪼르륵 따르며 와인과 공기와 최대한 넓게 접촉(에어링)하도록 하는 것이 와인을 잘 따르는 비결"이라며 "에어링을 통해 향이 풍부하게 올라와야 와인의 진짜 향과 맛을 마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하루, 무거운 병을 나르고 긴장 속에 포장을 하느라 허리와 다리는 뻐근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소믈리에는 단순히 술을 따르는 웨이터가 아니었다. 고객의 특별한 하루를 더 완벽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와인 병 속에 담긴 시간과 자연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직업이었다.
소믈리에 체험을 하며 와인의 넓고 깊은 세계를 엿본 만큼, 다음번에 와인 전문점에 방문해 소믈리에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맛있는 와인 주세요"가 아니라, "오늘 제 기분과 페어링할 음식에 어울리는 멋진 이야기가 담긴 와인 한 병 추천해 주시겠어요?"라고 말이다. 퇴근하는 길, 유니폼에 옅게 밴 와인 향기가 오늘따라 꽤나 근사하게 느껴졌다.

[email protected] 박경호 기자


#소믈리에 #금양인터내셔날 와인컨시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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