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영구임대서 공공재개발까지 35년…필요한 건 '많이' 아닌 '제대로' [누구를 위한 어떤 '공공' ④·끝]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장기공공임대 143만가구로 성장…주거비 절감·도심 공급 확대 성과
장기거주 끝 갈등·소유권 요구 등 과제 발생…공공성·개인 권리 충돌
"민간이 못하는 영역에 집중"…수요 맞춰 공급·주거사다리·출구전략

서울 영등포구 신길제2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조감도. /사진=영등포구 제공
서울 영등포구 신길제2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조감도. /사진=영등포구 제공

[파이낸셜뉴스] 1989년 영구임대주택이 등장했을 당시 '공공의 집'이 해야 할 역할은 명확했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에게 싼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35년이 흐르면서 공공주택의 역할은 꾸준히 확장됐다. 국민임대가 생겼고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행복주택이 등장하더니 서울 등 각 지방자치단체는 장기전세주택 등을 만들어 제공했다.

공공은 임대를 넘어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토지는 공공이 갖고 건물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주택부터 지분적립형·수익공유형 공공분양까지 등장했다. 민간만으로 사업이 어려운 낙후지역에는 공공재개발과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 들어왔다.

'공공의 집'이 취약계층의 임대주택에서 주거복지·내 집 마련·도심정비·주택공급까지 담당하는 거대한 정책수단으로 변했다. 역할이 넓어진 만큼 각자의 취지에 맞는 기능을 수행했지만, 서로 다른 정책목표는 '공공'이라는 한 단어 안에서 충돌하기 시작했다.

공공임대 143만가구…커진 만큼 역할도 복잡해졌다

성과는 분명하다. 한국도시연구소가 국토교통부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 재고는 2024년 143만3000가구로 전체 주택의 6.2%를 차지했다. 서울은 30만1000가구로 비중이 7.7%에 달했다.

공공임대는 실제 주거안전망 역할도 했다. LH토지주택연구원이 지난 2023년 공개한 '공공임대주택 거주 실태조사' 내용을 보면 임대료는 유사 민간임대보다 30~70% 낮았고 영구임대는 주변 시세의 약 15% 수준이었다.

공공의 기능은 임대를 넘어섰다. 민간 재개발이 장기간 멈춘 지역에 한국주택토지공사(LH),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 등이 참여해 사업성을 높이고 공공임대를 확보하는 공공재개발이다.

이용주 LH 수도권정비사업특별본부 차장은 "규제 완화를 통해 양질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픽=챗GPT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픽=챗GPT

올해도 이재명 정부는 8·13 주택 공급대책에서 2026~2030년 수도권 공공택지 공급 목표를 37만2000가구로 제시했고 올해 공공주택 착공도 6만2000가구로 계획했다.

신보연 세종대 부동산AI융합학과 교수는 "공공임대는 주거비를 낮추고 장기거주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가장 직접적인 주거복지 수단이고, 토지임대부 주택은 초기 분양가를 낮추는 대신 토지 임대료 부담과 시세차익 제한이라는 반대급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공공개발은 부지 확보와 기반시설 조성, 밀도 조정을 통해 공급 총량을 늘리는 데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영구임대주택이 나오고 30년을 훌쩍 넘긴 현재, 각자의 상황에서 공공이 만든 혜택을 누구에게 어떤 조건으로 제공해야 하느냐를 두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같은 주거사다리는 없다

지난달 22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열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현황과 미래’ 특강./사진=서윤경 기자
지난달 22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열린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현황과 미래’ 특강./사진=서윤경 기자

그렇다면 공공주택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달 22일 세종대에서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의 현황과 미래'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한 신 교수에게 물었다.

신 교수는 "공공주택이 정당화되려면 명확한 수요 타깃과 합리적인 가격, 재정 지속가능성이 전제돼야 한다. 공공주택은 '많이 짓는 정책'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에게 맞게 제공하는 정책'이어야 한다"며 수요자를 정교하게 나눌 것을 제안했다.

실제 LH토지주택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공공임대라도 거주가구의 형태에 따라 소득도, 원하는 미래도 제각각이었다. 일단 공공임대 가구의 평균소득은 일반 가구의 58.5%였지만, 영구임대와 행복주택으로 세분하면 각각 44.6%, 82.5%로 차이가 컸다.

여기에 영구임대 거주자의 85.8%는 다시 공공임대 거주를 희망한데 비해 행복주택 거주자의 상당수는 내 집 마련을 원했다.

공급하는 집의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는 필요성도 제기됐다. 가령 비아파트 공공주택을 원룸 위주로 공급하기보다 가족이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방 2~3개를 갖춘 주택 등 실수요형 품질을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임대 아니면 분양' 사이에 계단을 놓는 것도 필요하다. 임대와 완전한 소유 사이에 중간 단계를 만드는 것이다. 정부도 8·13 대책에서 지분적립형 공공분양을 내놨다.

처음에는 주택 지분 25%만 구입하고 이후 20~30년에 걸쳐 나머지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제시한 예시는 5년마다 20%·20%·20%·15%를 추가 취득하는 구조다. 수익공유형도 있다. 주택도시기금의 저리자금을 활용하는 대신 향후 주택 매각이익의 일부를 공공과 나누는 구조다.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픽=챗GPT
/자료=국토교통부, 그래픽=챗GPT

신 교수는 "임대와 완전한 소유 사이의 다양한 단계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소득·자산·가구원 수에 따라 임대, 보증금 지원, 주거바우처, 공공분양을 세분화하고 직장·학교·교통과 가까운 곳에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개발의 성과를 공급 가구수와 사업기간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나왔다. '얼마나 빨리 지었느냐'보다 공공이 개입함으로써 민간 개발이 어떤 사회적 편익을 만들었는지로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

모든 공공주택에는 처음부터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안도 했다. 20년 만기를 앞둔 서울시의 장기전세주택1(시프트) 입주자들은 서울시에 재계약과 단계적인 분양전환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가 도입하는 보편형 공공임대도 기본 6년, 출산 등에 따라 최장 20년 거주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입주자가 자산을 축적해 주택을 살 수도 있지만 고령이나 실직 등으로 계속 공공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입주 이후 소득·자산 변화에 따라 다른 공공임대로 이동하거나 지분적립형·공공분양을 거쳐 민간시장으로 자립하는 경로를 처음부터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공공지원을 받아 주택을 소유한 경우에는 실거주와 전매제한, 이익공유 등을 통해 지원이 단기 시세차익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신 교수는 "저렴한 취득이 단기 시세차익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공공성 장치를 병행해 '주거 지원'이 '투기 통로'로 변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mail protected]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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