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와중에 아군끼리 총격전 벌인 우크라 정보기관들 , 수면 위로 오른 권력 투쟁
SBU의 러 인사 구금 과정서 HUR와 충돌
젤렌스키 국정 장악력 떨어진 틈타, 정보기관 갈등 공개적으로 드러나
[파이낸셜뉴스]우크라이나의 양대 정보기관인 국가보안국(SBU)과 국방부 정보총국(HUR) 산하 특수부대가 수도 키이우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러시아와의 전쟁 장기화, 대통령 선거 미실시 등으로 국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정보기관들 간의 갈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SBU와 HUR의 특수부대는 1일 밤∼2일 새벽 키이우 도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소 3명의 HUR 대원이 다쳤다. 주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는 총격전이 펼쳐진 아파트 건물 외부의 핏자국이 선명하다.
두 기관의 충돌은 HUR 산하 부대에서 우크라이나를 돕던 러시아 국적자 겸 러시아 의용군단 소속 간부 스테판 칼푸노프를 SBU가 최근 약 1주일간 구금하면서 시작됐다. SBU는 1일 HUR이 임차한 키이우 도심 아파트까지 수색하려고 시도했다. 또 HUR이 해당 아파트의 수색을 막아서면서 총격전이 발발했다. 칼푸노프는 총격전 이후 풀려났지만 SBU가 그를 정확히 어떤 혐의로 구금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SBU와 HUR 간 총격전에 대해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우크라이나에서 총을 쏴야 할 대상은 러시아 점령군뿐"이라고 밝혔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강조하고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이 또 한 번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4년 5월 5년의 공식 임기가 끝났지만 전시 계엄령을 통해 대선 실시를 미루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과의 불화로 물러난 미하일로 페도로우 전 국방장관, 발레리 잘루즈니 주영국 우크라이나 대사(전 우크라이나군 총사령관) 등이 젤렌스키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
SBU와 HUR은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정보기관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1991년 설립된 SBU는 국내 방첩 업무를 중심으로 간첩 체포와 테러 방지 등 정보기관의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인원은 약 2만9000명이다.
반면 1992년 만들어진 HUR은 해외와 군사 정보 업무를 주로 다뤄 왔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남동부에서 러시아군 장교를 암살하는 등 각종 비밀 작전을 수행해 왔다. SBU에 비해 훨씬 베일에 싸인 조직으로 구체적인 인원 등이 알려져 있지 않다.
SBU가 미국의 FBI 역할을 한다면 HUR은 CIA 기능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뒤 SBU가 러시아 본토 대상 드론 공격과 암살 작전도 적극 진행하고, HUR 역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특수작전을 펼치면서 업무 구역이 과도하게 겹치게 됐다. 비밀 공작의 주도권, 서방의 정보 자원 배분, 전공(戰功) 경쟁이 심화되면서 알력 다툼이 격화됐단 평가도 나온다.
2020년 8월부터 2026년 1월까지 HUR을 이끌었던 키릴로 부다노우 전 국장은 올 1월 젤렌스키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다. 이후 올레흐 이바시첸코 중장이 새 HUR 수장이 됐지만 부다노우 실장은 여전히 HUR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부다노우 실장이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게 되면서 SBU 측의 불만이 커졌고, HUR과의 갈등 역시 깊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AP 뉴시스SBU와 HUR 간 총격전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상당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여론조사회사 '소시스'의 조사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잘루즈니 대사, 페도로우 전 장관과의 대선 결선투표 가상 양자 대결에서 모두 크게 밀렸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잘루즈니 대사는 가상 양자 대결에서 각각 33.8%, 66.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페도로우 전 장관의 대결에서도 각각 36.2%, 63.8%의 지지율이 나왔다.
우크라이나의 젊은 층에서는 특히 페도로우 전 장관의 인기가 높다. 1991년생으로 올 1월 우크라이나 역사상 최연소 국방장관에 올랐다. 특히 군사력이 우위인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드론 등 첨단 전술을 주도해 '국민 영웅'으로 부상했다.
[email protected] 이석우 국제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