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유전 '국가 자본주의' 실험, 성공할까
[파이낸셜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 최대 원유 부존량 국가인 베네수엘라에서 자신의 '국가 자본주의' 실험을 본격화하고 있다.
바베이도스에 본사를 둔 사실상의 국영 기업인 '노스 아메리칸 블루 에너지 파트너스(NABEP)'를 통해 세계 2위 국영 석유 기업을 운영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타당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과 함께 미국이나 베네수엘라 정권이 교체되면 백지화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민간 기업들이 참여를 꺼리고 있다.
CNBC는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에서 국가 자본주의를 실험하고 있다면서 베네수엘라와 합의가 성공적일 경우 미 국방부는 엑손모빌보다 더 많은 원유 자원을 통제하는 민간 석유기업의 대주주가 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미 특수부대를 보내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미국으로 압송하고, 델시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 체제를 베네수엘라에 구축한 지 8개월 만이다.
로드리게스 정부는 바베이도스에 본사가 있는 NABEP에 100년 동안 베네수엘라 유전 17개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다. NABEP 최고경영자(CEO) 알레한드로 베탕쿠르는 돈세탁, 부패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은 적이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와 베네수엘라 간 합의에 따라 NABEP는 국방부 전략자본국(OSC)에 무상으로 35% 지분을 헌납했다.
대공황이나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대침체 같은 비상시기를 제외하면 이처럼 행정부가 민간 기업 지분을 대규모로 확보한 적은 없다.
트럼프의 국가 자본주의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양국 합의로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확인된 원유 매장량 650억배럴에 대해 과반 통제권을 갖는다. 베네수엘라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산되는 3030억배럴의 약 20%를 미 정부가 통제하게 된다는 뜻이다.
에너지 정보업체 인버러스(Enverus)의 글로벌 인텔리전스 담당 이사 패트릭 러티는 백악관이 발표한 숫자가 맞다면 NABEP는 확인된 원유 매장량 기준으로 사우디아람코에 이어 세계 2위 석유 기업이 된다고 말했다. NABEP의 석유 자원 규모가 미 최대 석유 메이저인 엑손의 약 4배 수준에 이른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오와대 석유산업 역사학자인 타일러 프리스트는 미국과 베네수엘라 간 석유 합의는 유례가 없는 규모라면서 과거에도 이 같은 시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프리스트에 따르면 2차 대전 기간 미국은 사우디 석유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다 업계 반대 속에 계획을 철회했고, 1976년에는 국영 석유 기업을 설립할 뻔했지만 의회에서 법안이 아슬아슬하게 부결돼 계획이 무산됐다.
프리스트는 부패의 역사로 점철된 베네수엘라에서 미 정부가 직접 사업에 개입하려 하고 있지만 이는 상당한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 정부는 국방부의 35% 지분 외에 NABEP가 생산하는 석유에 대한 통제권도 갖게 된다. 국무부가 NABEP 원유 20%를 생산원가로 구매할 권리와 더불어 나머지 80% 생산량에 대해서도 우선 구매권이 있다.
또 미 정부는 NABEP 이사 임명에 대해 거부권도 갖고 있다. NABEP는 이사 과반을 반드시 미 시민권자로 채워야 하고, 모든 거래는 미 법률의 통제를 받는다. 사법 관할권도 미국에 있다.
케이토(Cato) 연구소의 국제무역법 전문가 스콧 린시콤은 "이는 그냥 국영 기업"이라면서 "사실상 원가로 생산물 100%를 통제한다는 것은 이 기업을 소유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시장 가격이 아닌 생산 원가로 베네수엘라 석유를 구입해 전략비축유(SPR)를 채운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군용 및 민감한 용도로 이 석유를 활용하기로 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부 장관은 2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CNBC와 인터뷰를 통해 NABEP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민간 기업을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며 미 정부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운영하거나 생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NABEP를 내세운 것은 미 석유 메이저들이 투자를 꺼려서라는 것이다. 석유 메이저들은 2007년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 국유화 트라우마가 있다.
유일하게 베네수엘라에 잔류한 셰브론만 70억달러를 투자해 2031년까지 생산량을 두 배 넘게 끌어올리겠다고 지난주 발표했을 뿐이다.
대런 우즈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는 앞서 1월 트럼프에게 베네수엘라는 "투자가 불가능한" 곳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라이언 랜스 코노코필립스 CEO는 2월 베네수엘라 복귀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NABEP CEO 베탕쿠르의 전력도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 관계자는 NABEP와 손잡은 것은 베탕쿠르 CEO가 "과거 미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좋은 석유 사업가"여서라고 설명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은 없고, 본인도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돈세탁, 부패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미 국영기업이 도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뜻이다.
법적, 정치적 불확실성도 문제다.
조 바이든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제경제보좌관을 지낸 피터 해럴은 "지분 문제 외에 트럼프 행정부는 법적인 문제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미 정부의 발표도 혼선을 부르고 있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합의를 발표하기 전인 지난달 28일 국방부 대변인 션 파넬은 "OSC는 민간 기업 지분을 취하지 않는다"면서 "OSC의 역할은 규정에 따라 대출, 대출 보증, 또는 기술 지원의 형태로 자본 지원을 보조하는 것으로 엄격히 제한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흘 뒤인 31일 합의에 따라 OSC가 NABEP 지분 35%를 갖는다고 백악관이 확인하자 파넬 대변인은 하루 뒤인 이달 1일 기자들과 통화에서 "지분 구조는 OSC에 부여된 법적 권한과 부합한다"고 말을 바꿨다.
정치적 불확실성도 문제다.
래피던 에너지의 밥 맥낼리 사장은 민주당이 오는 2028년 대선에서 승리하면 이번 베네수엘라 합의는 실행이 최소한으로 위축되거나 아예 전면 폐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공화당이 재집권해도 미래 베네수엘라 정권이 이 합의를 엎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맥낼리는 "미국의 목표는 민간 장기 투자의 위험을 낮추는 것이지만 미국과 베네수엘라 양국의 심각한 정치적 위험으로 인해 계획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송경재 기자
[email protected] 송경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