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여보, 우리 애만 빌라촌 초등학교 보낼 거야?"… 7살 자녀 부부의 '영끌 학군지' 잔혹사 [얼마면 돼]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살 자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가 40대 부부들의 가장 아픈 딜레마가 되었다.
통계에 따르면 학급당 학생 수 격차는 '학군지 아파트'와 '빌라촌' 초등학교 간에 이미 뚜렷하다. 환경의 차이는 숫자로도 너무나 명확하게 드러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작성한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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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여보, 우리 애만 그 빌라촌 초등학교 보낼 거야?"

금요일 밤 11시, 40대 직장인 박태수(가명) 씨의 아내는 컴퓨터 모니터의 부동산 전세 매물 정보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박 씨 부부의 앞에는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7살 아들 준우(가명)의 학군 지도와, 차마 더 당길 수 없는 마이너스 통장 잔고가 놓여 있다. 그들은 대체 누굴 위해 이렇게 악착같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기)'을 고민하는 것일까.

◇ 학급당 학생 수부터 다르다… 통계가 증명하는 '환경'의 격차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연합뉴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연합뉴스

단순히 박 씨 부부가 유난스럽거나 씀씀이가 헤퍼서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지극히 객관적인 통계가 증명하는 환경의 격차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소위 '학군지'로 불리는 서울의 특정 구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인근 초등학교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25~30명에 육박하며 과밀 학급에 가깝다.

반면, 인근의 '빌라촌'이나 노후 주거지 인근 초등학교는 학급당 15~20명 수준으로 훨씬 한적하다. 표면적으로는 적은 학생 수가 교육 환경에 유리해 보이지만, 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과밀 학급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보장된 교육 수요와 커뮤니티'를 의미한다.

부모들은 학군지 아파트라는 인프라와 학원가, 그리고 무엇보다 비슷한 경제력을 가진 이웃들이 만드는 커뮤니티가 아이의 '평범한 환경'이 되기를 바란다.

1.5배 늘어나는 전세금을 감당한다고 해서 내 아이가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소득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한 '생산 유지비'처럼 학군지 입성은 필연적으로 치러야 할 자본주의적 생존 비용으로 인식된다.

◇ '학원 픽업 수당'과 출퇴근 차량 2대… 숨만 쉬어도 나가는 '보육 외주화' 비용

초등 학군지 입성은 단순히 전세금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가짜 소득'의 구조가 더 심화된다.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아이를 맡기고 학원 픽업을 전담하는 친정어머니께 드리는 수고비 150만 원은 학군지 입성 후 학원가가 더 멀어지며 '교통비 및 시간 외 외주비'로 형태를 바꾼다.

부모님 용돈이라는 명목을 띠고 있지만, 이 돈은 직장 생활과 학군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끊을 수 없는 절대적인 '고정 지출'이다.

여기에 출퇴근 동선이 다른 부부의 특성상 최소 2대 이상의 차량 유지비도 필수다. 영끌로 마련한 학군지 아파트 주택담보대출 이자까지 합치면, 이미 숨만 쉬고 살아도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 전체가 시작과 동시에 증발해 버리는 계산식이 완성된다.

◇ "밥 해 먹을 힘이 어딨어"… '타임 푸어'의 생존형 소비와 '기울어진 운동장'

더욱 뼈아픈 것은 '체력 방어 비용'이다.

직장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고 파김치가 되어 학군지 아파트로 저녁 7시 30분에 돌아오면, 냉장고 문을 열고 찌개를 끓일 에너지가 1%도 남아있지 않다.

결국 소파에 기대어 배달 앱을 켜고 최소 4만 원짜리 저녁 식사를 습관적으로 결제한다.

푼돈이라도 아껴보겠다고 밖에서는 5천 원짜리 식후 커피마저 끊고, 사무실 냉장고에 쟁여둔 음료수 한 캔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 40대 아빠다. 하지만 정작 퇴근 후에는 방전된 체력을 보상 받고 가사노동을 회피하기 위해 비싼 배달비와 외식비를 망설임 없이 결제하는 모순이 매일 밤 반복된다.

부족한 절대적인 '시간'과 '체력'을 '자본'으로 치환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타임 푸어(Time Poor·시간 빈곤자)' 현상이라 부른다.

◇ 부모의 역린을 건드린 '초등 주거 계급론'… "나라도 저렇게 결제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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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의 영수증은 안타까운 진실을 말해준다. 이들이 벌어들이는 월수입은 온전한 내 소득이 아니다.
일을 하러 나가기 위해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시터비), 일을 마치고 돌아와 방전된 체력을 배달 음식으로 보충하며(배달비), 일터로 향하기 위해(차량 유지비),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아 학군지 인프라(학원가)를 '결제'하는 비용이다.

"도대체 우린 누굴 위해서 이렇게 뼈를 갈아 넣고 있는 걸까?"

신용카드 명세서를 덮으며 박 씨의 아내가 내뱉은 한숨은, 2026년 가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3040 부모 모두의 실존적 현타를 대변한다.

"유난이다" 욕먹어도, 내 아이를 위해 '월수입의 쳇바퀴'를 풀악셀로 밟아야만 하는 40대들의 처절함. 이것이 대한민국 학군지 아파트와 빌라촌 초등학교 사이, 3040 부모들이 마주한 '쩐의 전쟁'의 민낯이다.

[email protected]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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