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시총 300억과 상장사의 자격

파이낸셜뉴스
김병덕 증권부장
김병덕 증권부장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증시 급락 얘기가 아니다. 주가가 동전주 수준이거나 시가총액이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주식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정책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자칫 시장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상장사들은 너도나도 주식액면병합을 해 형식적으로나마 주가를 1000원 위로 올려놓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금융당국이 상장폐지 제도 개편을 발표한 지난 2월 12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나온 주식액면병합 공시만 280여건에 달하는데, 지난해 전체 사례가 12건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전가의 보도'가 된 셈이다.

상장사들을 패닉에 빠트린 금융당국 발표의 제목은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 방안'이다. 내용은 이렇다. 먼저 주가가 30거래일 연속 1000원 미만이거나, 시가총액이 코스피 300억원·코스닥 200억원 미만인 상태가 30거래일 연속 지속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이렇게 관리종목으로 지정된 상태에서 90거래일 이내에 주가 또는 시가총액 기준을 연속 45일 이상 상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물론 곧바로 증시에서 퇴출되진 않겠지만 일반적 상폐 사유에 비해 속도가 빠를 것이라는 게 업계 관측이다. 주가가 1000원을 밑돌거나 시가총액이 300억원 밑으로 떨어진 상장사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증시에서 쫓겨나게 된 판국이다.

급진적 정책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온다. 단순히 주가가, 시총이 적다고 퇴출시키는 것이 맞느냐, 또 흑자기업이 퇴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소기업 협·단체에서는 "말도 안되는 정책"이라며 반발한다고 한다.

애꿎은 희생양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우려에는 공감을 한다.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상장사들이 기존에 어느 정도나 주주·시장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한번 묻고 싶다. 거액의 공모자금, 높아지는 인지도, 긍정적인 신용등급 등 증시 상장의 단물만 빼먹고 이후에 주주·주가는 외면하지 않았었는지 궁금하다. 이익이 나는데, 흑자기업인데 왜 동전주이고 시가총액이 300억원도 안 되는 상태로 방치했는지, 최대주주나 경영진은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는지도 의문이다.

사실 상장사에 대한 기업가치 제고 요구는 수년 전부터 커져 왔다. 특히 2024년 발표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상장사들이 자발적으로 주가를 높일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공시하도록 했다. 2년여가 지난 상황에서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상장사는 코스피·코스닥을 합쳐 756개사다. 코스피·코스닥 상장사가 2650곳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1900곳 이상은 여전히 관심 밖인 셈이다. 상장폐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액면병합을 공시한 280여개사 중 밸류업 프로그램에 참여한 곳이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나왔던 당시에는 '사실상 기업 망신주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 리스트를 공개해 기업가치 제고를 강요한다는 논리였다. 여의도가 온통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난리가 났었지만 정작 "밸류업? 그런 게 있어요?"라고 되묻던 한 상장사 관계자의 발언이 다시금 기억난다. 망신을 당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외면했던 상장사가 부지기수였다는 얘기다.

망신과 증시 퇴출은 강도가 완전히 다른 만큼 온갖 위기탈출 방안이 속출하는 상황이다. 액면병합과 함께 부쩍 늘어난 것이 자사주 취득이다. 올 들어서만 코스닥에서 200곳 넘는 상장사가 자사주 취득을 공시했다. 순수한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이 중에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꼼수도 엿보인다. 진작 이런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주가는 자본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실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겠지만 그것만 가지고 설명되지 않는 것도 주식시장이다. 상장사이지만 비상장사와 다를 게 없다면 결국 주가와 시가총액은 계속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상장사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주가에도 반영된다. 이번 당국의 처방이 상장사들의 잠자던 본능을 깨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email protected] 김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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