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마른 숲이 불쏘시개 됐다" 폭염·가뭄이 키운 대형 산불 [재난으로 온 기후위기③]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폭염 뒤 산불, 산불 뒤 폭우]
폭염·가뭄·강풍이 산불 확산 조건 만들어
기상청, 미래 기후 '산불기상지수' 높아져

[보고타=AP/뉴시스] 콜롬비아 보고타 북부 네모콘 인근 산불 현장에서 2024년 1월 23일 불길이 번지고 있다. 당국은 엘니뇨 현상에 따른 이상 고온으로 올해 8월초에도 수도 보고타와 여러 지역에서 수 십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며 항공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2026.08.25.
[보고타=AP/뉴시스] 콜롬비아 보고타 북부 네모콘 인근 산불 현장에서 2024년 1월 23일 불길이 번지고 있다. 당국은 엘니뇨 현상에 따른 이상 고온으로 올해 8월초에도 수도 보고타와 여러 지역에서 수 십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며 항공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2026.08.25.

기후위기는 폭염과 가뭄, 산불, 폭우를 생활권 안의 재난으로 끌어오고 있다. 마른 숲에서 커진 산불과 불탄 산지에 내린 비가 주거지·도로·하천 주변 피해로 번지는 과정을 살펴봤다.<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폭염과 가뭄, 산불, 폭우가 한 생활권 안에서 피해를 키우는 복합 재난으로 나타나고 있다. 고온·건조·강풍이 겹치면 작은 불씨도 대형 산불로 번지고, 불탄 산지는 집중호우 때 토석류와 하천 주변 피해로 이어진다. 국내외 사례는 재난 대응이 산불 진화에서 끝나지 않고 산지 사면과 계곡, 주거지 주변 관리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달 12일 북반구(한국과 중국, 일본, 유럽, 북미 등 적도 북쪽 지역) 여러 나라가 극심한 폭염과 지속적인 가뭄, 위험한 산불을 겪는 동안 다른 지역에서는 폭우와 홍수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난 7월은 2024년 7월과 함께 관측 이래 가장 더운 7월이었고, 전 세계 해수면 온도도 7월 기준 가장 높았다.

서유럽은 6∼7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기간을 보냈다. 프랑스와 스페인, 독일 일부, 영국 등에서는 봄부터 이어진 건조한 날씨가 7월에도 심해졌다. 같은 시기 WMO는 인도와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미얀마, 동남아 일부 지역에 폭우와 산사태, 급류 홍수 위험을 알렸다.

고온과 폭우가 함께 나타나는 배경에는 대기 흐름의 정체와 수증기 공급이 있다. 고기압이 오래 머문 곳은 뜨겁고 건조해지고, 저기압과 몬순·태풍의 영향을 받은 곳은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내릴 수 있다.

영남 산불 앞에 놓인 고온·건조·강풍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3월25일 산불이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마을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2025.03.25. /사진=뉴시스
경북 의성군 산불 발생 나흘째인 지난해 3월25일 산불이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마을 인근까지 번지고 있다. 2025.03.25. /사진=뉴시스

한국의 지난해 산불 피해도 고온과 건조, 강풍이 겹친 조건 속에서 커졌다.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위기대응위원회와 기상청은 지난 3월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한국에서 기록적인 폭염과 집중호우, 108년 만의 극심한 가뭄, 역대 최대 산불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21일부터 26일 사이 전국에서 5건의 대형 산불이 동시에 발생했다. 피해 산림은 10만5084.33ha였다. 축구장 14만7100개를 합친 면적보다 넓다. 이 기간 전국 평균기온은 14.2도로 해당 기간 중 가장 높았고, 경북 지역 상대습도는 평년보다 약 15%p 낮았다.

기온과 습도 수치는 산불이 커지는 조건을 설명한다. 기온이 높으면 낙엽과 가지, 풀의 수분이 빨리 줄고, 습도가 낮으면 산림 안의 작은 연료도 쉽게 마른다. 여기에 강한 바람이 더해지면 불길은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빠르게 이동한다.

지난해 3월 25일 일최대순간풍속은 안동 하회 27.6m/s, 의성 옥산 21.9m/s, 의성 단북 20.4m/s였다. 고온·건조한 공기가 강한 서풍을 타고 들어오면서 산불이 커지기 쉬운 조건이 만들어졌다.

경북 산불은 발화 149시간 만에 꺼졌고, 산불영향구역은 4만5157ha로 집계됐다. 안동과 영덕 등에서 24명이 숨졌고, 주택 등 시설 2412곳이 불에 탔다.

산불은 입산자 실화나 소각행위, 담뱃불 실화 등 사람의 부주의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피해 규모는 발화 원인과 별개로 산림의 건조 정도, 바람의 세기와 방향, 지형, 주거지와의 거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낙엽과 풀이 바싹 마른 상태에서 강한 바람이 불면 불길은 능선과 골짜기를 따라 빠르게 번진다.

산림과 주거지가 가까운 지역에서는 확산 속도가 곧 대피 시간과 연결된다. 불길이 능선을 넘어 마을과 도로 쪽으로 내려오면 주민은 연기와 열기, 통제되는 도로를 함께 겪게 된다. 고온·건조·강풍은 산불이 날 가능성뿐 아니라 불이 붙은 뒤 피해가 커지는 조건으로 작용한다.

로스앤젤레스 산불, 젖은 겨울 뒤 마른 바람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지난 2025년 1월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한 주택이 산불에 휩싸여 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날씨 채찍질'이 홍수와 가뭄을 부르면서 이번 산불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5.01.10.
[로스앤젤레스=AP/뉴시스] 지난 2025년 1월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퍼시픽 팰리세이즈의 한 주택이 산불에 휩싸여 타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날씨 채찍질'이 홍수와 가뭄을 부르면서 이번 산불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5.01.10.

해외에서도 비가 많이 온 계절 뒤 찾아온 고온·건조가 산불 위험을 키운 사례가 있다. 비가 충분히 내리면 산과 들에 풀과 관목이 빠르게 자란다. 이후 비가 끊기고 뜨거운 날씨와 건조한 바람이 이어지면, 늘어난 초목은 불길이 옮겨붙는 연료가 된다.

지난해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 산불은 이런 조건이 실제 피해로 이어진 사례로 분석됐다. 세계기상귀속(WWA) 연구진은 지난해 1월 공개한 분석에서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극단적인 산불기상지수 조건이 현재 기후에서 평균 17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이라고 밝혔다.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가 약 1.3도 낮았던 기후와 비교하면 이런 조건의 발생 가능성은 약 35% 높아졌고, 강도는 약 6% 커졌다고 분석했다.

산불기상지수는 피해 면적이나 피해액을 직접 계산하는 지표가 아니다. 기온과 습도, 바람, 강수 등을 종합해 불이 붙었을 때 얼마나 번지기 쉬운지를 나타낸다. WWA 분석은 로스앤젤레스 산불의 발화 원인을 기후변화로 단정한 것이 아니라, 불이 붙은 뒤 산불이 커지기 쉬운 기상 조건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산불 뒤 폭우가 덮친 마을

201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시토 한 주택 주변이 산사태 토사로 덮여있다.사진=연합뉴스
2018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시토 한 주택 주변이 산사태 토사로 덮여있다.사진=연합뉴스

산불이 꺼진 뒤에는 산지의 물길도 달라진다. 나무와 풀, 낙엽층이 줄면 빗물을 붙잡는 힘이 약해진다. 뿌리가 사라지거나 약해진 흙은 경사면을 따라 밀려나기 쉽고, 불에 탄 토양 표면이 물을 잘 흡수하지 못하면 빗물은 흙과 재, 돌을 끌고 아래로 흐른다.

이 때문에 산불 피해지는 첫 폭우 때 다시 위험해진다. 산에서 시작된 흙과 돌의 흐름은 계곡과 하천을 따라 내려가고, 협곡 입구나 완만한 지형에서는 주택과 도로 쪽으로 넓게 퍼질 수 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은 산불 이후 토석류가 물, 바위, 흙, 식생, 큰 돌이 뒤섞인 흐름으로 빠르게 내려간다고 설명한다. 경사가 급한 지역에서는 얕은 산사태가 물과 섞여 속도가 빨라지고, 최근 불탄 지역에서는 사면 침식이나 하천 바닥에서 토석류가 시작될 수 있다.

남부 캘리포니아 몬테시토는 산불 뒤 폭우 피해가 얼마나 빨리 닥칠 수 있는지 설명하는 지역이다. 2017년 12월 토머스 산불은 벤투라와 샌타바버라 카운티 일대 28만에이커(약 3억4277만평) 이상을 태웠다. 2018년 1월 9일 강한 비가 내리자 몬테시토에서는 토석류가 발생했다. 이 재난으로 23명이 숨졌고 주택과 기반시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조너선 갓 USGS 산사태위험프로그램 조정관은 USGS가 2018년 1월 공개한 자료에서 "산불 이후 토석류는 매우 짧고 강한 비에도 발생할 수 있어 특히 위험하다"고 밝혔다. 그는 토석류가 빠르고 큰 힘으로 움직여 식생을 벗겨내고 배수로를 막으며 구조물을 훼손하고 사람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도 반복된 폭염과 호우

한국의 지난해 여름도 폭염과 호우가 교차했다. '2025년 이상기후 보고서'에 따르면 북태평양고기압이 이르게 확장하면서 6월 말부터 한여름 날씨가 시작됐고, 7월 하순에는 티베트고기압 영향까지 더해졌다. 여름철 전국 평균기온은 25.7도로 1973년 관측 이후 가장 높았다.

무더위는 인명 피해로 이어졌다.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 운영기간인 5∼9월 온열질환자는 4460명이었고, 사망자는 29명이었다. 더위가 길어지는 동안 비는 짧은 시간 특정 지역에 몰렸다. 가평, 서산 등 15개 지점에서는 1시간 최다강수량이 100㎜를 넘었다. 국지성 집중호우로 인명 피해는 사망 24명과 실종 1명으로 집계됐고, 재산 피해는 1조1307억원이었다.

폭염과 폭우가 같은 여름 안에서 반복되는 동안, 일부 지역은 물 부족까지 겪었다. 서쪽 지역이 폭우를 겪는 동안 강원 영동에는 심한 가뭄이 닥쳤다. 영동 지역의 여름철 강수량은 평년의 34.2%인 232.5㎜에 그쳤다. 강릉 오봉저수지 저수율은 준공 이후 최저 수준인 11.5%까지 떨어졌고, 단계적 제한 급수가 시행됐다.

고탄소 시나리오 분석…'산불기상지수' 상승

캐나다 서부 지역에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웨스트켈로나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사진은 2023년 8월. 사진=연합뉴스
캐나다 서부 지역에 산불이 급속도로 확산하는 가운데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웨스트켈로나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사진은 2023년 8월. 사진=연합뉴스

폭염과 가뭄, 강풍이 반복되면 산불 위험을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진다. 기상청은 지난 6월 '온실가스 감축 없으면 미래 산불기상지수 증가' 자료에서 1㎞ 해상도의 남한상세 국가 기후변화 표준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산불기상지수의 현재와 미래를 분석했다.

산불기상지수는 최고기온, 상대습도, 강수량, 풍속 등 4가지 기상요소를 바탕으로 산불 발생 초기에 얼마나 빠르게 확산, 강화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수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20년인 2000∼2019년 한국 산불의 70% 이상은 2∼5월 봄철에 발생했다. 산불기상지수 상위 5%를 넘는 구간에서는 중위 수준 구간보다 산불이 2배 이상 많이 발생했다.

미래 기후에서는 이 지수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저탄소 시나리오에서는 한국의 봄철 평균 산불기상지수가 현재 약 4.35에서 21세기 후반기 약 5.62로 29% 증가했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는 고탄소 시나리오에서는 약 6.22로 43% 증가했다.

산불기상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은 고온과 낮은 습도, 적은 강수, 강한 바람이 겹치는 날의 위험이 커진다는 뜻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작은 불씨도 빠르게 번질 수 있고, 불이 지난 산지는 이후 폭우 때 토석류와 하천 주변 피해에 더 취약해진다.

이미선 기상청장은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의 상승에 따라, 미래에는 산불기상지수의 극한값이 나타날 가능성이 현재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한승곤 기자


#폭우 #이상기후 #산불 #재난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