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서 베일 벗은 이창동 '가능한 사랑'…"인간관계와 일의 의미를 묻다"
이창동 "조여정이 연기한 예지, 영화 만드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
[파이낸셜뉴스] "영화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가."
'버닝' 이후 8년 만에 신작 '가능한 사랑'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이 오랜 공백 동안 영화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다고 밝혔다.
'가능한 사랑'이 6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베일을 벗었다. 이날 '가능한 사랑' 공식 기자회견 유튜브 생중계에서 진행자는 이 감독의 영화가 줄곧 사회 속 인간관계를 다뤄왔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작품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고 기록하는 '영화인의 시선' 자체가 또 하나의 인물처럼 기능한다는 감상을 내놓았다. 지난 8년간 이 감독의 영화 세계와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물었다.
이 감독은 영화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8년 동안 우리의 삶이 아주 급격하게 변하는 것을 느꼈다"며 "그 과정에서 인간관계 자체가 본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시대에 영화가 과연 어떤 힘을 지닐 수 있는지,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이어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등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기로 만나 감춰진 욕망과 관계의 균열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 고민은 영화 속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조여정 분)를 통해 구체화된다. 예지는 자신이 촬영하는 사람들의 삶을 어떤 자세로 대해야 하는지, 카메라를 든 자신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 사이의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이 감독은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계속 질문하는 캐릭터"라며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마음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젊은 시절 소설가로 활동할 때부터 이러한 질문을 끊임없이 해왔다.
이 감독은 "노동자든 소수자든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학생들이든, 그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내가 과연 그들과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얼마나 그들의 입장에서 글을 쓰고 있는지를 늘 질문했다"며 "영화를 만드는 지금도 그 질문은 제 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지의 고민은 영화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 감독은 남의 삶을 취재해 전달하는 기자는 물론이고, 자신의 일에서 의미와 정체성을 찾으려는 동시대 노동자 모두에게 이어지는 질문이라고 봤다.
특히 이 영화는 대기업의 대규모 정리해고 사태에서 모티브를 얻어 발전한 이야기다. 이 감독은 앞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따라 정체성도 달라지는 만큼 노동의 변화가 인간의 정체성마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우리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일자리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과도 마주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 사라지거나 의미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사는 시대다.
이 감독은 "이 시대 모든 노동자의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돼 있다"며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살아남을 것인지, 어떻게 자아와 정체성을 찾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영화에 담아 관객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능한 사랑'은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이 감독이 베니스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은 2002년 '오아시스' 이후 24년 만이다. 설경구·전도연·조인성·조여정이 주연을 맡았다.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