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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게 만개한 순간 드러난 소멸의 그림자[이현희의 '아트톡']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안창홍 '맨드라미'

짙게 만개한 순간 드러난 소멸의 그림자[이현희의 '아트톡']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안창홍은 자신의 감각이 어두운 쪽을 향하고 있다고 느꼈고, 여러 사회의 사건들과 뒤엉키면서 자본주의 사회의 비극과 인간의 소외 등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안창홍이 날카롭게 담아낸 시선을 처음 마주하면 어딘가 불편하고, 낯부끄럽다.

안창홍이 보여주는 방식은 여느 작가의 작품들보다 다양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이어진 '인간 이후', '가족사진', '위험한 놀이'에서는 사회적 파편화와 공허함, 비극적 시대상을 과감하게 묘사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여장남자', '파리', '베드 카우치' 등을 통해 권력의 왜곡된 단면과 물질만능주의 세태를 비판하며 인간의 실존을 탐구했으며, 2010년대부터는 '아리랑', '맨드라미', '눈먼 자들' 등을 통해 생명의 처절함과 몰개성화된 인간의 초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 '맨드라미'(사진)는 식물을 메타포로 두어 다소 부드러운 어조로 한 걸음 물러서 있던 관람자를 화면 앞으로 끌어 놓는다. 경기도 양평의 작업실 앞마당에서 꽃밭을 일구며 관찰한 맨드라미에 대해 작가는 '꽃이긴 한데 동물적인 느낌이 있다'며 '자연의 생태는 거칠고 완고하면서도 섬세하고,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한날한시에 자리를 튼 맨드라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해를 쫓으며 높다랗게 솟아 저마다의 높이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생명의 절정을 향해 조금 더 높게, 조금 더 짙고 풍성하게 성장하는 사이, 자리를 내어주며 시들기도 하고 꺾인 채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동시에 일어난다. 맨드라미에게서 인간의 욕망, 생명력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생의 유한성을 느낀 안창홍은 물감을 겹겹이 쌓아 올려 맨드라미의 굴곡과 질감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묵직한 생동감으로 화려하게 피어난 붉은빛을 보여주고, 동시에 만개한 순간에 감춰진 소멸의 그림자를 함께 그려내 화려함 뒤에 숨겨진 상처와 쓸쓸함을 조명한다.

2018년에 제작된 작품은 130cm의 정사각형 캔버스에 붉은 맨드라미를 가득 채워 높은 밀도감과 원초적 에너지를 보여주며, 정중앙에 색이 다른 노란 맨드라미를 그려 넣어 상대적 아름다움과 이질적 상태의 긴장감으로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현희 서울옥션 아카이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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