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視角] 그 많은 아파트는 어디 갔나
중식당 메뉴판을 열면 자장면 아래로 먹음직스러운 고급 메뉴가 줄줄이 이어진다. 그러나 메뉴를 고르고 주문을 넣었다고 배가 부를 리는 없다. 주방에서 웍질 소리가 나고, 냄새가 진동해도 마찬가지다. 진짜 밥을 떠 먹어야 배가 부르다. 부동산 정책의 영원한 숙제 '공급부족'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지난 10여년간 공급대책은 끊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수도권 30만가구 계획에 이어 전국 83만6000가구 규모의 2·4대책을, 윤석열 정부는 전국 270만가구를 약속했다. 그런데도 서울에서는 아직 새 아파트가 부족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답을 찾으려면 '공급'이라는 두 글자부터 뜯어봐야 한다. 발표된 숫자의 상당수는 완성된 집이 아니었다. 어떤 것은 부지 확보 계획이었고, 어떤 것은 인허가 목표였으며 착공 목표였다.
2·4대책의 83만6000가구는 2025년까지 확보하겠다는 주택 부지 규모였지, 그때까지 다 짓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270만가구는 2023∼2027년의 인허가 목표였다. 인허가를 받더라도 자금을 마련하고 착공해 공사를 마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그 시간도 만만치 않다. 3기 신도시의 첫 입주예정 단지인 인천 계양 A2블록은 오는 12월 입주를 시작한다. 계양신도시 계획이 나온 2018년 12월로부터 8년, 대통령 임기보다 긴 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재명 정부는 공급목표의 관리 기준을 바꿨다. 지난해 9월 발표한 '주택공급 확대방안'에서 2026∼2030년 수도권 135만가구를 착공 기준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인허가 물량이 실제 준공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정부가 인정한 셈이다.
서울은 신규택지로 개발할 가용지가 제한적이어서 재건축과 재개발에 많이 기댄다. 서울시가 제시한 신속통합기획 도입 후 정비사업 소요기간은 18.5년, 이를 12년으로 줄이는 것이 목표다. 목표대로 줄여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 긴 세월이다. 정비사업 물량은 따져볼 것이 하나 더 있다. 1000가구짜리 낡은 단지를 헐고 1500가구를 지으면 새 아파트는 1500가구지만 서울의 집은 500가구만 늘어난다. 서울시가 2031년까지 착공을 추진하는 정비사업은 253곳, 31만가구지만 멸실을 뺀 순증 추산치는 약 8만7000가구다.
서울에 집이 지어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서울시가 발표한 아파트 입주실적은 2023년 3만5815가구, 2024년 3만2672가구였고 2025년 준공실적은 약 5만가구다. 그동안 서울의 가구 수도 늘었다. 2019∼2024년 일반가구는 약 26만3000가구 증가했지만, 주택 수는 약 16만9000가구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주택 보급률은 96.0%에서 93.9%로 낮아졌다.
2022년 이후에는 사업여건까지 나빠졌다. 고금리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비용 부담이 커졌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위축됐다. 땅과 인허가가 있어도 돈을 구하지 못하거나 공사비 협의가 틀어지면 사업은 늦어진다.
정책 방향이 늘 같았던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 택지개발촉진법 폐지를 추진하며 도심 정비사업에 무게를 뒀고,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신규택지 공급을 확대했다. 윤석열 정부는 민간 주도 공급과 규제완화를 내세웠다.
주택사업은 이런 정책 변화 속에서도 여러 정부에 걸쳐 진행된다. 한 정부에서 정한 택지를 다음 정부에서 보상하고, 그다음 정부에서 입주하는 일도 생긴다. 준공물량만으로 어느 정부의 공인지 가리기 어려운 이유다.
과거 정부는 주택 부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에도, 인허가와 착공 목표에도 '공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작 몇 가구가 어느 단계에 와 있는지는 일일이 말해주지 않는다. 사람이 사는 것은 준공된 집이다. 종이 위 숫자로만 존재하는 집에선 살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