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더 많은 사람에게 바둑의 매력을 알리겠다"…새 임기와 함께 밝힌 미국 바둑의 변화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파이낸셜뉴스] 조나스 에이커스(Jonas Acres)가 미국바둑협회(American Go Association·AGA)의 신임 회장으로 선임돼 미국 바둑의 새로운 길을 이끌게 됐다. 그의 임기는 2026년 9월 14일부터 시작된다.

취임을 앞둔 그의 첫걸음은 세계 각국의 바둑인들이 모인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제46회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가 열린 문경새재스포츠센터의 한 카페에서 필자는 에이커스를 국제 바둑계 인사들과 함께 만났다. 지역 바둑 공동체에서 성장하고 미국 최대 바둑 축제의 운영을 맡았던 그가 미국 바둑의 새로운 지도자로서 국제무대에 자신을 알리는 자리였다.

에이커스는 취임을 석 달 앞둔 지난 6월 14일 미국바둑협회 이사회의 심사를 거쳐 2026∼2028년 임기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후보에는 에이커스를 비롯해 구루지트 칼사(Gurujeet Khalsa) 현 회장과 데빈 프레이즈(Devin Fraze)가 이름을 올렸다. 이사회는 후보자 면접과 종합적인 검토를 거쳐 에이커스를 새로운 회장으로 선택했다.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이사회가 특히 높이 평가한 것은 그가 오리건주의 비영리단체인 바이크팩 오브 오리건(BikePAC of Oregon)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며 쌓은 조직 운영 경험이었다. 풀뿌리 조직을 이끌고 자원봉사자들을 조정한 경험뿐 아니라 포틀랜드 바둑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미국 전역의 바둑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온 점도 중요한 선임 배경이 됐다.

에이커스는 2024년 7월 포틀랜드주립대학교에서 열린 제40회 미국바둑콩그레스(U.S. Go Congress)의 공동대회장을 맡았다. 이 행사에는 미국은 물론 한국·중국·일본 등 여러 나라의 프로기사와 바둑 애호가 약 550명이 참가했다. 수십 명의 자원봉사자가 1년 넘게 대회를 준비했으며, 에이커스는 프로그램 기획과 자원봉사자 관리, 참가자 지원, 지역 바둑계와의 협력 등 대규모 행사의 전 과정을 이끌었다.

미국바둑콩그레스는 단순한 전국대회가 아니다. 각종 대국과 강연, 복기, 프로기사 지도기, 친교 및 문화 프로그램이 함께 열리는 미국 최대 규모의 바둑 축제다. 공동대회장 경험은 에이커스에게 지역 바둑클럽과 미국 전역의 선수, 프로기사, 해외 참가자를 하나로 연결하는 전국 단위의 조직 운영 역량을 갖게 했다. 미국바둑협회 역시 포틀랜드 대회를 성공적으로 조직한 경력을 회장 선임의 주요 자격 가운데 하나로 평가했다.

신임 회장이 제시한 과제는 분명하다. 체계적인 자원봉사 조직 구축, 지역 바둑클럽과의 관계 강화, 후원 기반 확대, 미국바둑협회 브랜드의 현대화다.

그의 목표는 넓은 미국 대륙 곳곳에 흩어진 바둑 공동체를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고, 변화하는 미디어와 기술 환경을 활용해 젊은 세대와 더 많은 대중에게 바둑을 알리는 것이다.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그는 취임을 앞두고 "미국바둑협회가 기술이 가져온 변화에 발맞추고, 더 많은 사람에게 바둑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의 구상은 단순히 바둑의 전통을 보존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새로운 기술과 소통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바둑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온라인에서 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을 실제 지역 바둑 공동체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미국바둑협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는 '챕터(chapter)'라고 불리는 지역 조직망이다. 챕터는 사람들이 모여 바둑을 두는 비공식 모임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바둑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풀뿌리 조직으로서 미국 각 지역의 바둑 보급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미국바둑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오리건주에는 포틀랜드 바둑클럽을 포함한 5개의 등록 챕터가 있다. 미국 서부·동부·중부 전역에서는 150개가 넘는 미국바둑협회 공인 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포틀랜드 바둑클럽은 정기 모임과 지역대회를 통해 오리건주 바둑계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포틀랜드는 2008년에 이어 2024년에도 미국바둑콩그레스를 개최했다. 에이커스가 포틀랜드 바둑계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2024년 대회를 조직한 경험은 회장으로서 자원봉사 네트워크와 지역 챕터와의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에이커스에게 미국바둑협회가 '기술 변화에 발맞춘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다.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분야는 온라인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을 오프라인 지역 바둑클럽과 연결하는 일이다. 강한 아마추어나 프로기사가 온라인 대국을 복기하고 그 내용을 바둑 공동체가 함께 공유한다면, 온라인 이용자들이 지역 클럽을 직접 찾게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레이팅 시스템의 편의성과 신속성을 높이는 것도 그의 주요 구상 가운데 하나다. 현재도 선수들이 대국 결과를 제출할 수 있지만, 에이커스는 이 과정을 더욱 자동화해 누구나 쉽고 빠르게 결과를 입력하고 레이팅에 즉시 반영할 수 있도록 개선하고자 한다.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그는 지역 챕터가 대회를 더욱 쉽게 개최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료와 운영 수단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어디에 살든 가까운 곳에서 곧 열릴 대회를 언제나 찾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다.

기술은 그가 구상하는 변화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온라인 이용자를 지역 클럽으로 연결하고, 다시 지역 클럽을 미국바둑협회의 전국적인 네트워크로 이어주는 수단이다.

미국의 바둑 인구 규모에 대해서는 정확한 통계가 없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에이커스는 미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바둑을 두어본 사람이 약 5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미국바둑협회 역사상 공식 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해외에서 미국오픈 등 주요 대회를 찾은 방문객을 포함해 누적 약 2만5천 명으로 보고 있다. 현재 여러 대회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적극적인 경쟁 선수는 약 2천500명으로 추산한다.

그는 이 수치들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통계는 아니며 실제 규모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바둑계의 전체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참가 기록과 지역 활동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축적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한국 프로기사들과 미국 바둑인들 사이에도 다양한 교류가 이어져 왔다. 미국바둑협회 관계자들은 미국바둑콩그레스에 참가해 다면기와 복기 등으로 현지 바둑인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한 도은교 프로와 김지석 9단 등의 활동을 반갑게 회상했다.

미국바둑콩그레스에도 참가했던 정연우 프로는 현재 문경의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장에서 심판으로 활동하며 세계 각국 선수들의 원활한 대국 진행을 돕고 있다. 이러한 프로기사들의 활동은 한미 바둑 교류를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에이커스는 영어권 바둑인만을 위한 조직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한국어·중국어·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된 안내 자료를 확대해 해외에서 미국을 찾는 방문객과 이민자들이 미국 바둑 공동체에 더욱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언어의 장벽 없이 지역 바둑클럽을 찾고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미국 바둑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국제 바둑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조나스 에이커스 신임 미국바둑협회장, 문경에서 세계 바둑을 만나다[세계바둑산책 16]

에이커스를 주목하게 하는 것은 대회 조직가로서의 경험만이 아니다.

그는 정보보안 분야에서 일하면서 BMW 오토바이를 즐겨 탄다. 바이크팩 활동을 통해 오토바이 이용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관련 법률과 공공정책을 개선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동시에 고등학생 딸을 둔 다정한 아버지이자 주변 어린이들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지역사회 활동가다.

그의 가족도 바둑과 가까운 인연을 맺고 있다. 대회장에서 문경시가 제공한 지역 특산물 오미자차를 맛본 그는 가족 이야기를 꺼내며 딸도 이 차를 매우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은 바둑을 두는 것뿐 아니라 바둑 행사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에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바둑을 단순한 승부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활동으로 바라보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올해 제46회 세계아마추어바둑선수권대회에는 53개 국가와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문경에 모였다. 한국에서 이 대회가 열린 것은 2014년 경주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바둑을 알리고, 바둑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며 오랜 친구와 다시 만나는 것."
에이커스가 강조하는 바둑의 매력이다. 그에게 문경은 각국의 바둑 보급 현황을 직접 살펴보고 국제 바둑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문경대회에 이어 그는 일본에서 열리는 나고야 페어바둑대회에 참석해 세계 여러 나라의 바둑인들과 교류를 계속할 예정이다.

대회 점심시간에는 에이커스와 함께 경기장에서 멀지 않은 고모산성을 걸었다. 삼국시대 격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성에 오르자 멀리 주흘산이 보였다.

산성을 걷는 동안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로 이어졌다. 에이커스는 미국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산성에서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마주치기도 했다.

옛길의 주막촌에서는 이 길이 과거 영남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던 길이었으며 여행자들이 쉬어가던 장소였다고 설명했다. 대화는 다시 그의 BMW 오토바이 이야기로 이어졌고, 마침내 오토바이를 탄 주인공과 호랑이가 함께 달리는 웹툰을 만들어보자는 흥미로운 구상으로 발전했다.

수백 년 전에도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졌던 고모산성의 옛길 위에서 우리의 대화는 바둑의 미래와 사람을 이어주는 바둑의 힘으로 향했다.

지역 바둑 공동체에서 성장하고 미국 최대의 바둑 축제인 미국바둑콩그레스를 조직한 뒤 미국바둑협회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에이커스에게 문경 방문은 새 임기의 상징적인 출발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바둑계를 연결하고, 지역 클럽이 더 많은 대회를 개최하도록 지원하며, 여러 언어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바둑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날 수 있게 하겠다는 그의 구상은 이제 막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문경에서 국제 바둑인들을 만난 에이커스는 곧 일본 나고야 페어바둑대회로 향한다. 문경에서 시작된 그의 여정이 미국 바둑을 한 걸음 더 성장시키고 세계 바둑계와의 연결을 더욱 넓혀가기를 기대한다.

최채우 한국기원 이사
최채우 한국기원 이사

#조나스 에이커스 #미국바둑협회장 #세계 바둑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