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에 어학원 간다" 워킹맘…밥 대신 '내 시간' 찾는 직장인들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이상혁 수습기자
"저는 워킹맘이라 아침에도, 저녁에도 시간이 안 나거든요. 점심시간을 활용해서 영어를 배워요."
11일 낮 12시 50분 직장인들의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워킹맘 오윤화 씨(48·여)는 식당이 아니라, 서울 중구 소재 모 어학원에서 나오고 있었다.
인근 직장을 다니는 오 씨는 점심시간을 쪼개 이곳에서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다. 어깨에 가방을 걸쳐 맨 오 씨는 "점심은 두유나 계란처럼 간단히 해결한다"며 "점심시간에 영어학원 오는 게 생활 루틴"이라고 말했다.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점심시간을 이용해 자기 계발과 취미생활을 하는 '점심형 인간'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한국인의 평균 일일 여가는 하루의 17.9%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밑도는데, 나를 위한 시간을 '점심시간'을 통해 도모하는 것이다.
어학·요가·헬스 '점심반'…"배우니 보람차고, 업무에도 도움 되죠"
점심시간을 이용한 어학 공부·운동은 점심형 인간들의 대표적인 시간 활용법이다. 이날도 점심시간이 되자 중구의 한 어학원 앞은 점심반을 수강하기 위한 직장인들이 바쁘게 오갔다. 이곳에선 영어, 일본어 등의 과목으로 정오부터 40~50분 코스로 수업하는 점심반을 별도 운영한다.
학원 관계자는 점심반 수강생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며 "열에 아홉은 직장인"이라고 짚었다. 이날도 일부 수강생은 한쪽 옆구리에 수업 교재를 낀 채 바쁘게 업무 전화를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박신혜 씨(44·여)는 자기계발 차원에서 점심시간을 활용해 주 2~3회 일본어를 배우고 있다. 이날 일본어 강의에 늦어 회사에서 급하게 뛰어온 박 씨는 "별도의 시간을 내는 것보다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점심시간을 활용해 배우니 보람찬 느낌이다"라며 밝게 웃었다.
이들이 한 시간의 점심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이유는 아침은 출근 때문에 너무 바쁘고, 저녁은 육아나 기타 일정으로 인해 시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일 밥 먹고 동료들과 잠시 이야기하면 끝이 나던 점심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단 보람도 크다고 했다.
점심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직장에서의 업무 효율은 높아졌단 직장인도 있었다. 워킹맘 오 씨는 "잠시 업무에서 벗어나 힐링도 되고, 시사 등의 각종 소식도 많이 접할 수 있어 좋다"며 "점심시간 영어 공부가 자기 계발에도 도움이 되지만, 지금 속한 부서가 해외사업부라서 더욱 잘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을 활용한 배움은 어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엔 광화문, 강남 등 직장들이 다수 분포한 지역에서 일대일 맞춤 운동(PT)부터 요가나 필라테스 수업까지 다양한 '런치 클래스'가 진행되는 모습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점심시간, 밥뿐 아니라 잠도 채워요"…'완전한 휴식' 택한 직장인들
점심시간을 활용해 '완전한 휴식'을 택한 이들도 있다.
10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한 상가, 식당가를 오가는 직장인들 사이로 유독 조용한 공간이 눈에 띈다. 바로 '수면 안마의자 카페'다. 점심시간이 되자 휴식을 청하려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날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이곳의 모든 방은 예약된 상태였다.
10여 개의 작은 방마다 안마의자가 비치된 이곳은 최소 10분부터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이용 가격은 10분당 최소 1500원으로 예약 시간이 길어질수록 분당 이용료는 낮아지는 방식이다.
카페 내부 복도에는 안마의자의 '푸쉬거리는' 작동음과 사람들의 '새근새근'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어두운 조명의 방 안에는 안마의자 1대 외에도 담요와 귀마개 등 취침을 위한 물품이 구비돼 있었다.
장연임(52) 씨는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이곳에서 매일 20~30분 취침을 취한다. 장 씨는 "평소 수면을 잘 못해 회사 동료와 매일 찾는다"며 "실제 오후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며 점심시간 수면의 유용함을 설명했다.
직장인 임 모(27) 씨 역시 "배가 안 고프거나 점심 약속이 없으면 이곳(수면 안마의자 카페)을 이용한다"며 "잠을 자지 않더라도 개인 공간에서 편하게 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쪼개 쓸 시간 더 주면 어떨까" 휴식권 활용 시 개인·기업 모두 효율
전문가들은 각양각색 점심시간 활용법이 여가가 부족한 직장인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사회가 복잡해지며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졌다"며 "시간을 쪼개 '자기 시간'을 만들어 자신에게 유익하게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직장인들이 자율적으로 점심시간을 활용하는 게 생산성을 높여 기업에도 좋다는 분석도 나왔다.
구혜영 한양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자에게 있어 휴식권은 굉장히 중요하다"며 "점심시간의 초점을 단순 식사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휴식이라는 권리로 인식하며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보충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기업들도 휴식권을 활용한다면 개인의 성장과 기업 효율 양 측면에 유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