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0년 영상 데이터, AI전환 심장 되다
AI가 산업 경쟁 질서를 다시 쓰고 있다. AI 혁신의 무게중심이 텍스트를 넘어 영상과 물리적 세계를 이해하는 다중양식·피지컬 AI로 확장되면서, AI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 역시 '어떤 데이터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는가'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해야 할 원천자산이 바로 방송영상이다. 수십 년간 축적된 방송영상에는 시대별 언어와 생활양식, 사회적 사건과 문화적 기억이 담겨 있다. 해외 영상을 학습한 AI가 우리 사극 같은 고유한 문화 요소를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송 아카이브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고유한 가치를 담은 국가적 자산이다.
글로벌 시장은 이미 콘텐츠 아카이브를 AI 시대의 전략 자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라이언스게이트는 AI 기업 런웨이와 맞춤형 영상 생성 모델을 개발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피지컬 AI용 월드 모델 '코스모스'도 대규모 영상 데이터를 학습했다. 영상 데이터가 콘텐츠 제작을 넘어 로봇·자율주행·제조 등 AI 핵심 자원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방송영상의 AI 데이터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4만여 시간의 방송영상 원본을 선별해 최종 2만 3천여 시간, 약 430만 개의 AI 학습용 데이터 세트를 구축했다. 올해는 이 가운데 117만여 건을 'AI 허브 안심구역'을 통해 국민에게 공개했다. 첫걸음이지만, 방송사가 보유한 방대한 원천자산을 고려하면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문제는 방송사가 대규모 방송영상 AI 데이터를 자체적으로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방송산업 매출은 감소하고 제작비는 상승하는 상황에서 AI 전환 필요성은 커지고 있으나 데이터 구축 투자까지 감당하기에는 현실적 제약이 크다. 방송사가 보유한 데이터의 가치가 산업 전체로 확산되도록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방송영상 AI 데이터는 제작 현장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아카이브 자동 검색, 하이라이트·숏폼 생성, 자동 편집, 다국어 자막·더빙 등을 통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AI 가상 간접광고, 고화질 복원, 버추얼 프로덕션 등과 연계해 새로운 서비스와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나아가 도심 환경과 인간의 움직임이 담긴 영상은 자율주행, 서비스 로봇, 휴머노이드 등의 공간·행동 학습에도 활용될 수 있다.
정부는 방송 아카이브가 AI 학습 및 산업 혁신에 활용될 수 있도록 데이터 발굴·정제를 지원하고, 저작권·초상권 등 권리문제를 해결할 기준과 안전한 활용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구축 데이터를 방송 제작 현장에서 실증하고, 제조·모빌리티·문화·관광·재난안전 등과 연계해 활용 가능성을 넓혀야 한다. 방미통위는 내년에도 방송영상 AI 학습용 데이터 구축 시범사업을 추진해 방송사의 자산과 역량이 산업 전반의 혁신으로 이어지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자 한다.
한 세기에 가까운 대한민국 방송 기록은 미래 AI 경쟁력을 높이는 자산이다. 방송영상 데이터에 대한 투자는 방송산업의 AI 전환을 촉진하고 우리 역사와 문화가 미래 AI에 반영되며, 그 성과가 다양한 산업 혁신으로 확산되는 국가 디지털 인프라를 만드는 일이다. 방송 영상 데이터는 AI 대전환과 '미디어 기본사회'로 나아가는, 작지만 의미있는 도약대가 될 것으로 믿는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