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일 칼럼] 호르무즈 파병, 불가피한 선택이다
명분없는 전쟁 우려 당연해도
도덕성이 국제정치 잣대 아냐
한미동맹 안정성 중요한 가치
항행의 자유 확보에 역할해야
경제적 필요성으로 파병 절실
진영논리보다 국익 우선 고려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 고조와 미국의 파병 요구는 우리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파병 반대'가 55%로, 찬성 32%를 웃돌았다. '파병 반대' 깃발은 선명하고, 대의명분이 존재한다. 현재의 미·이란전은 트럼프 대통령이 앞장선 미국의 일방주의 노선이 낳은 결과물이다. 국제사회가 지지하지 않는 군사행동에 동참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이란과의 관계를 훼손할 위험도 크다. 만에 하나 국군 장병들이 희생되거나, 우리 국민이 국내외 테러의 표적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도덕과 명분만으로 국제정치의 엄혹한 현실을 헤쳐 나갈 수는 없다. 국가의 안위와 경제적 생존이 걸린 지금은, 국익을 최우선으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선적 고려는 한반도의 안보 현실이다. 북핵 위협이 상존하고 동북아의 지정학적 유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우리 안보의 핵심 축인 한미동맹의 안정성은 무엇보다 앞선 가치이다. 과거 2004년 이라크 자이툰 부대 파병 당시 노무현 정부는 거센 반대 여론 속에서도 파병을 단행한 바가 있다. 한미동맹의 균열을 막고 한반도 안보상황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미국이 한국을 거론하며, 동맹으로서의 기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에서 이를 무시(거부)한다면 동맹 관계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이나 주한미군 감축 카드 등을 연계할 가능성도 상존한다. 아울러 대한민국은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안보 무임승차에서 벗어나 원유 수송로 '항행의 자유' 확보라는 국제질서 안정에 기여해야 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다소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신장된 국력을 증명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보면 파병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반도체나 자동차 등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미국의 엄포가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국과 원만한 통상 관계를 유지하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안보적 성의 표시가 불가피하다. 호르무즈해협은 대한민국이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 액화천연가스(LNG)의 약 30%가 통과하는 에너지 생명선이다. 매년 1200척 이상의 한국 선박이 이곳을 드나든다. 우리 배와 국민의 안전을 스스로 지키겠다는 것은 대한민국 군사자산 배치 명분으로 충분하다.
파병의 절차와 방식도 중요하다. 파병안을 제출, 국회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의견도 경청할 만하다. 법적·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국회 논의 과정을 통해 파병의 필요성을 공론화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권 내 이견으로 동의안이 장기 표류하거나 부결될 경우 미국과의 신뢰 관계가 파탄 나고 경제적 보복을 부를 위험이 크다. 기왕 파병하려면 실기하지 않아야 한다. 정부 결정으로 아덴만 유역의 청해부대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해협까지 넓히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다국적 해양안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좋다는 의견도 있고, 다국적군 참여는 이란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2020년) 청해부대 작전구역을 호르무즈까지 넓혔던 전례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군의 독자적 지위를 유지하며 우리 선박 통행안전과 수송로 확보에만 집중하는 형식을 취하는 게 이란과의 관계 차원에서도 나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파병은 '이란전의 희생양' 운운하는 의견도 있다. 계속해서 모호성을 유지하고, 미국의 압박에 못 이겨 파병하는 모양새를 취한다면 그런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동맹을 공고히 하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국격에 걸맞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파병한다는 능동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태세 전환을 고리로 관세위협 재발 방지, 원자력추진 잠수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권한 등 현안 해결에 활용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도덕적 우위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생존 조건을 냉정하게 계산한 '전략적 결단'이어야 한다. 도덕도 명분도 국가의 생존과 안보, 그리고 경제적 안정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지킬 수 있다.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은 69%가 파병에 반대했으나,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절반이 파병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야당 대표였다면 아마도 제일 먼저 '파병 반대'의 깃발을 들었을 것이다. 지금 깊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정파적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해야 하는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르무즈 파병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그리고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