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AI시대에 더 비싸지는 것들

파이낸셜뉴스
조윤주 정보미디어부장
조윤주 정보미디어부장

"GPU(그래픽처리장치)는 돈을 주면 살 수 있지만 20년 동안 운영된 조선소와 반도체 공장에 쌓인 운영 경험과 데이터는 하루아침에 살 수 없다."

지난 9일 'AI월드 2026' 기조강연에 나선 윤송이 프린시플벤처파트너스(PVP) 매니징 파트너의 말이다. 이날 여러 강연을 들었지만 포럼을 마친 뒤 유독 이 말이 오래 남았다. 인공지능(AI) 경쟁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GPU보다 오히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윤 파트너는 지금을 '지능이 풍부해지는 시대'라고 했다. 지금까지 복잡한 문제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고 코드를 짜는 일은 오랜 교육과 경험을 쌓은 전문가가 필요했다. 변호사의 법률 검토, 개발자의 코딩, 컨설턴트의 분석처럼 고도의 지적 능력은 결국 한정된 사람의 시간에 묶여 있었고 그만큼 비쌌다. 그런데 AI 시대로 접어들며 이 비용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일정 수준의 분석과 추론, 코딩과 글쓰기를 필요할 때마다 AI를 불러 쓸 수 있게 되면서 지능을 사용하는 비용 자체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윤 파트너의 지적이었다.

이렇게 지능의 가격이 내려간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과연 어디에서 갈릴까. 그 단서는 포럼 곳곳에 있었다. HD현대는 50년 넘게 조선소에서 쌓은 설계와 생산 데이터, 숙련자의 노하우를 AI가 활용할 수 있는 자산으로 바꾸고 있었다. 목표는 단순한 업무 자동화가 아니라 현장의 지식을 가진 '조선 명장 에이전트'다. AI 시대에 오래된 산업의 경험이 낡은 유산이 아니라 새로운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AI에 일을 맡기기 시작하면서 전혀 다른 문제도 등장했다. AI가 기업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하고, 이메일을 보내며, 스스로 여러 단계의 업무를 처리한다면 어디까지 권한을 줄 것인가. 누가 결과를 확인하고, 잘못된 판단에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포럼의 AI 거버넌스 논의가 모델의 성능보다 권한과 통제, 책임으로 향한 이유다.

AI가 생산성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 비영리 연구기관 METR의 실험에서는 AI 도구를 사용한 숙련 개발자들이 자신이 20% 빨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실제 과제 완료 시간은 19% 늘었다. 제한된 환경의 실험이지만 한 가지는 흥미롭다. AI를 많이 쓰는 기업과 AI로 일을 잘하는 기업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 기업들의 AI 전환 논의에서는 기술 못지않게 '운영 모델'이 등장한다. AI에 무슨 일을 맡기고 사람은 무엇을 판단할지, 업무와 조직을 어떻게 다시 구성할지를 함께 결정해야 실제 성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AI가 좋아지는 속도만큼 기업이 일하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와보면 'AI가 흔해질수록 비싸지는 것들'의 윤곽도 조금 달라진다. 데이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장에서 수십년간 쌓인 시행착오, 숙련자의 판단, 고객을 이해하는 방식, AI가 일할 수 있도록 조직을 바꾸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AI가 만들어주는 것은 지능의 평준화이지 기업 경쟁력의 평준화가 아니다.

한국에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 글로벌 빅테크를 상대로 GPU의 숫자와 모델의 크기만 겨루면 불리한 싸움이다. 그러나 우리의 반도체·자동차·조선의 생산 현장에는 오랜 시간 쌓아온 데이터와 경험이 있다. 이는 다른 나라가 단기간에 투자한다고 그대로 따라잡을 수 있는 종류의 자산이 아니다. 동시에 우리가 오래 제조업을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저절로 AI 경쟁력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그것을 단순히 가지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를 AI가 읽고 활용할 자산으로 바꿀 수 있느냐인 셈이다.

AI의 보편화는 기술격차를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술을 생산성과 새로운 사업으로 바꾸는 격차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AI 시대의 다음 경쟁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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