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신호 발사 동시에' 뇌 닮은 반도체로 로봇 움직였다 [언박싱 연구실]
<64> 고려대 왕건욱 교수
뇌의 기억·신호 기능 한 소자에 구현
가위바위보 98.38% 정확도로 구분
판단 결과 로봇 손 움직임으로 연결
[파이낸셜뉴스] 고려대 왕건욱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양성욱 박사 공동 연구진이 하나의 반도체 소자로 사람 뇌의 기억과 신호 전달 기능을 모두 흉내 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연구진은 이 반도체의 작동 방식을 활용해 가위바위보 사진을 구분하는 인공지능(AI)을 만들었고, 가위·바위·보를 최대 98.38%의 정확도로 구분했다. AI의 판단 결과는 로봇 손의 움직임으로도 이어졌다.
이 기술은 데이터를 외부 서버로 보내지 않고 기기 안에서 바로 판단하는 AI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주변 상황을 스스로 판단해 실제 기계를 움직이는 로봇 기술에도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하나의 반도체 소자를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역할로 바꿔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다양한 AI 반도체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사람의 뇌에는 정보를 기억하는 시냅스와 전기 신호를 만들어 전달하는 뉴런이 서로 연결돼 있다. 이를 반도체로 흉내 내려면 두 가지 기능이 필요하다. 하나는 전원을 꺼도 정보를 기억하는 기능이다. 다른 하나는 전기 신호를 만든 뒤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기능이다. 기존에는 두 기능의 성질이 달라 각각 다른 재료나 부품으로 만들어 연결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연구진은 바나듐 산화물이라는 재료 하나로 두 기능을 모두 구현하는 방법을 찾았다. 산소가 있는 환경에서 550도로 60분 동안 열을 가해 반도체 내부 구조를 위아래로 다르게 만들었다. 위쪽에는 산소가 충분히 결합한 단단하고 촘촘한 층이 생겼다. 아래쪽에는 산소가 부족하고 미세한 구멍이 있는 층이 만들어졌다.
위아래 구조가 달라지면서 전기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졌다. 아래쪽의 구멍이 있는 층에서는 전기가 통하는 미세한 길이 만들어졌다가 끊어지면서 전기 상태를 기억할 수 있었다. 뇌에서 정보를 기억하는 시냅스와 같은 역할이다. 저장한 전기 상태는 상온에서 1만초 동안 유지됐다.
위쪽의 단단한 층은 일정 수준 이상의 전압이 걸릴 때만 전류가 흐르게 했다. 전압이 낮아지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뇌에서 전기 신호를 만들어 전달하는 뉴런과 비슷한 역할이다. 이 기능은 5000회 반복해서 작동해도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나의 소자를 기억 역할로 설정했다가 신호를 만드는 역할로 바꾸는 실험도 50회 반복했으며, 두 기능이 유지되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같은 소자를 가로와 세로 전선이 교차하는 16×16 배열로 만들었다. 두 개의 소자를 짝지어 한쪽은 정보를 기억하고 다른 한쪽은 신호를 만들도록 했다. 그러자 한쪽에 기억된 값에 따라 다른 쪽에서 나오는 신호의 횟수와 세기가 달라졌다.
이어 연구진은 이 반도체가 정보를 기억하고 신호를 만드는 방식을 AI에 활용해 가위바위보 사진을 구분하는 시험을 했다. AI에 손 모양 사진을 보여주자 가위·바위·보를 최대 98.38%의 정확도로 구분했다. 이어 AI의 판단 결과를 5개 손가락을 가진 로봇 손에 전달했다. 로봇 손은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구동 장치를 이용해 입력된 손동작을 이길 수 있는 반대 손동작을 만들어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에 8월 17일 온라인으로 공개됐다.
하나의 반도체 소자로 사람 뇌의 기억과 신호 전달 기능을 흉내 내고, 이를 활용한 AI의 판단을 실제 로봇 손의 움직임까지 연결한 연구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